지난 주말에 산책삼아서 인천 자유공원과 챠이나 타운을 둘러보았습니다.
나의 집은 강동구 상일동인데 여기에서 지하철을 타고 인천까지 가지요.
상일동이 5호선 종점이라 신길역까지는 앉아서 갈 수 있고 또 신길역에서도 주말에는 거의 자리를 잡아서 인천까지 갈 수 있습니다.
사실 목적지인 인천도 중요하지만 가고오는 길에 책을 읽는 즐거움이 또 좋습니다.
그 날도 배낭에 피천득의 수필집 1권과 쇼펜하우어 1권을 넣고 출발하였습니다... 요즘 다이어트중이라 필수품이던 비스켓이 빠진 것이 못내 아쉽네요.
이 중구 자유공원과 조계지역에 대하여는 정말 할 말이 많은데... 이 지역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 어울리기가 쉽지를 않군요.
그래도 이 지역의 역사에는 관심없는 분들도 챠이나 타운의 짜장면에는 관심이 있으셔서 다행입니다...^.^
오늘은 자유공원 뒷쪽의 언덕에 있는 기상대(이 자리에 1905년도에 세워졌으니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중앙에 보이는 작은 섬이 작약도죠. 바닷물이 빠진시간이군요.
그런데 이 기상청 입구 근처에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들인 <언더우드>와 <아펜셀러>를 기리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은 관심이 있으실 것인데 왼쪽의 모습이 언더우드 목사이며 오른 쪽의 모습이 아펜셀러 목사의 모습입니다.
언더우드 목사는 새문안 교회를 세우고 당시의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기도 한 분이며 아펜셀러 목사는 정동교회와 인천의 내리교회를 세운 분입니다.
이 두분이 1985년 4월5일 같은 배를 타고 제물포항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나는 자유공원에 올 때 마다 이 조형물을 둘러보곤 하는데 오늘따라 언더우드 목사의 기도문이 유난히 마음에 걸리더군요.
이 나라가 힘 있고 복된 감화의 두 팔을 내밀어서 한 팔로는 중국을, 다른 팔로는 일본을 껴안아, 세 나라가 다 기독교국가가 되어 모두 손에 손 잡고 한 큰 원을 그리어......
언더우드 목사와 그 3대의 자녀들은 모두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잠들어 그들이 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스스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의 커다란 꿈, 한국이 잠에서 깨어나 "동방의 등불을 든 자" 로서 중국과 일본을 끌어안는 꿈이라니....
우리는 스스로 알죠. 아직은 우리가 그러한 능력과 힘을 가지지 못했음을. 일본과는 최근에 크게 불거진 독도의 문제로 껄끄러운 현실이라 언더우드 목사의 바램이 더 미안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공원 벤치에 앉아 단골 아주머님한테 커피를 사 마시며 책을 좀 읽다가.... 공원아래의 외국인 구락부(100년이 넘는 건물이지요. 좋습니다.)를 들렸습니다.
여기에 일본문화를 알리는 전시회가 소박하게 차려져 있더군요. 독도로 시끄러운 중에도 이러한 중용이 고마울 뿐이지요.
일본의 전통적인 인형, 소품, 완구류와 의상들이 전시되어있는데 과연 일본적(的)인 아기자기함이 보기에 좋더군요.
그런데 벽을 보니 우타카와 히로시게의 그림이 몇 점 걸려져 있었습니다.(물론 사본이지요)
아타케의 다리에 내리는 소나기
이 그림은 전에도 접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림을 바라보니 새삼 감탄이 나옵니다.
나는 소나기 내리는 정경을 이토록 잘 묘사한 그림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림앞에 서면 소나기 소리가 들리고 한기마져 느껴집니다.
과연 고흐가 흠뻑 빠져들만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지요... 인연이 되면 히로시계의 작품세계를 좀 더 깊이 알고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유공원에 오면 들려보는 작은 명소... <인천근대박물관>을 빼어놓을 수 없죠.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계단은 각국 조계지의 경계역할을 하였는데 이 계단을 바라보면서 우측은 일본조계, 좌측은 중국조계였습니다.
중국조계(챠이나타운)방향으로 약간 올라가면 자그마한 박물관... <인천근대박물관>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관장님이 사비를 털어 수십년간 모아온 인천의 역사유물들이 모여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이 전시물들이 인천박물관이나 근처의 일본조계지의 제일은행이나 18은행을 개수하여 만든 전시장보다 훨씬 내용물이 알찹니다.
짜장면의 원조라는 공화춘에서 쓰던 집기도 있고 지금의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자리에 있던 제물포의 랜드마크, 그 아름답던 인천각에서 쓰던 용품도 남아있습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골동품들을 찬찬히 바라보노라면 그 시대의 인천이 눈앞에 펼쳐지지요.
거울과 서랍이 달려있는 이 장식장은 이 박물관의 자랑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인천역앞 파라다이스 호텔(예전의 올림프스 호텔이죠) 자리에 있던 영국 영사관에 있던 장식장인데 이 곳 관장님이 당시에 집 한채 값을 주고 구입했다고 합니다.
영국 영사관의 유품은 보기 어려운데 이런 큰 장식장이 거의 훼손도 되지않고 남아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이군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이 동네는 찾아올 때마다 빈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