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스밴드 시절 동기생 갑철이와...
레인보우악단 연습실에서
5년제 고등전문학교시절 브라스밴드 생활을 3년간 했다. 지금 기억나는건 배고픈 시절, 행사 끝나고 먹던 짜장면의 황홀한 맛, 허구헌날 원산폭격에 방망이 줄빳다 맞은 것 뿐이다. 처음엔 클라리넷을 불었다. 그런데 아무리봐도 나무막대기 같은 새까만 악기가 영 시원찮아 보였다. 게다가 누가 가르켜주는 선배도 없어 피리불듯 혼자 불어야했으니 결국 밴드부의 기본곡인 애국가조차 연주 할 수 없었다. 그냥 악기 들고 행사 따라다니는 정도였던 거다. 맨날 기합만 받는데다 재미까지 없으니 차차 발걸음이 뜸해졌다. 어느날 호마이카 선생 - 대머리 밴드부 샘 별명이다- 이 가만 부르더니 트럼펫을 해보라고 꼬셨다. 당시 트럼펫은 밴드부의 꽃이었고 트럼펫 주자인 선배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트럼펫? 대번에 맘이 바뀌었다. 아, 그날 호마이카 선생의 한마디는 결국 내 운명을 결정짓고 말았으니....
하지만 졸업 후 바닷생활을 하느라 아쉽게도 트럼펫을 놓아야 했다. 그러다 2008년경 다시 음악을 시작했다. 무려 35년여만에 다시 연주생활을 하게된거다. 군산에 적을 둔 레인보우악단은 가요와 팝 등 경음악을 주로 연주했다. 그런데 과거 브라스밴드 경험은 있었지만 막상 경음악단 입단무렵은 초보나 다름없었다.
3년쯤 지나자 쉬운 가요정도는 따라 할 수 있었지만 연주나 악보보기 모두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몇 년 악단 생활을 하다 2011년 전주 하나임오케스트라에 들어갔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클래식 연주였다. 경음악단 생활을 3년이나 했으니 내딴에 초보티는 벗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경음악은 곡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불어대지만 클래식은 50마디, 많게는 7, 80마디를 쉬다 들어가는게 다반사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한 음 한 음 정확히 어택해야하고, 여리게 혹은 강하게 앙상블을 이뤄야한다. 물론 이 점은 경음악도 마찬가지지만 클래식은 더욱 섬세하고 정확히 연주해야 한다.
레인보우악단 정기연주회
첫 연주는 슈베르트 <교향곡 제 8번 '미완성'>이었지만 입단 초기 6개월여는 거의 피스를 입에도 대지 못한채 전주, 군산을 오갔다. 안 하려는게 아니라 실력이 딸리니 할 수 없었던 거다. 그렇게 3년여동안 하나임, 라모니오케스트라를 거쳐 군산에 적을 둔 칸투스오케스트라가 창단된게 2014년이다.
과거 하나임, 라모니 시절은 세컨 파트였고, 칸투스에서는 퍼스트를 맡았다. 세컨 파트때는 연주를 제대로했다기보다 엉거주춤 퍼스트를 따라 한 정도였다. 무엇보다 박자가 자신없었고, 간혹 퍼스트와 같은 선율을 연주할때조차 얹혀가는 정도였다. 그러니 칸투스에서도 실력은 과거 세컨 때나 별 차이가 없어 자존심이 상했지만 2회 연주까지 객원 연주자들에게 의지해야했다.
트럼펫을 시작한지 어느덧 45년여, 내 나이 64세가 돼서야 드디어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자신있게 퍼스트 역할을 한게 지난 해 3회 연주가 아니었나싶다. 7년전 처음 오케스트라 입단 때 슈베르트 <교향곡 8번>을 연주했는데 공교롭게도 작년 정기연주회도 같은 곡이었다. 그밖에 를로이 앤더슨의 소품곡도 몇 곡했지만 자신 있었고 큰 실수 없이 연주한 편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칸투스오케스트라 창단은 잘한 결정이다. 우선은 전주까지 멀리 다니지 않아도 되고, 라모니 때와 달리 퍼스트를 맡다보니 어데 숨을데가 없어 발전 속도가 빨랐다. 잘하나 못하나 트럼펫 선율을 책임져야하는 퍼스트는 결과적으로 홀로서기를 하는데 일등공신이었던 셈이다. 당연히 연습량도 따라 많아졌다. 또 하나는 시향에 계신 G선생한테 1년정도 레슨한것도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 맘 같아서는 2, 3년 더 했다면 좋을것을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이제 올 9월이면 4회 정기연주회다. 연주곡은 모차르트 서곡 <티토의 자비>, <피아노 협주곡 제 20번>을 비롯해서 메인 곡으로 드보르작 <교향곡 제 9번' 신세계'>. 연습 시작한지 어느덧 8개월여가 흘렀다. 나름 연습을 열심히 한 때문인지 비록 수준있는 연주는 불가능해도 당장 연주회를 할 수 있을정도는 된다. 남은 3개월여, 연습에 더욱 박차를 가해 이번만큼은 최상의 연주를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