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진아를 보려면 내면으로 향하라.
우린본래 부처입니다 내가 말했듯이 거울 때문이죠.
볼록 거울 때문에 모두가 다르게 보이고 괴물처럼 보입니다. 수많은 거울이 있고 각각의 거울이 다른 형상을 보여주죠 거울을 지날 때면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매번 우리가 태어나서
윤회할 때마다 인간이나. 동물. 악마나 귀신. 여자나 남자가 되죠. 다양한 거울을 통과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진아)는 그대로 똑같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우린(진아)을 되찾아서 진정 평범한 자아를 보아야 합니다
거울을 보는 대신에요. 어떤 거울을 지나쳐 상관없으니 그건 보지 마세요. 그냥 이 방향을 보면 그 형상들이 우리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걸 보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더 영리한사람이 진아를 알고서 그 거울이 우릴 속인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어서 사실을 알려줘도 즉시 그 말을 믿지를 못합니다.
왜 일까요? 거울에서는 우리가 못생겨 보여도 재미있죠. 거울을 지나칠 때면 각각의 거울들이 다른 형상을 비추면 완전히 거기 빠져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고 또 보는 겁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형상을 계속 보는 거죠 마치 지금 이 세상과 자신을 보는 것 처럼요. (이해됩니까?)
세상은 거울이고 우린 거울에 비친 형상일 뿐입니다
이제 거울이란 환상에서 벗어난 한사람이 말해줍니다
고통 받을 필요 필요는 없습니다. 거울 속에 형상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돌아서서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면 여러분이 누구인지 알거에요
이글을 보고 천천히 보기 시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보고 싶지 않다면 그는 우리에게(여기요. 여기 보세요.거울이 여기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는 우릴 유혹하려고 아름다운 걸 쓰겠죠. (여기요 여길 봐요.이쪽으로 오세요) 그는 이 방향으로 우리 주위를 계속 끌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영적수행자들도 이와 같이 많은 경지를 지날 겁니다. 조금씩 더욱더 유심히 바라보면 우리는 우리의 진아를 볼 겁니다. 따라서 우리의 진아를 곧 바로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머리나 얼굴을 볼 수 없을지는 몰라도 발과. 손. 다리. 그리고 가슴은 볼 수 있게 되어서 난 정상적인 사람이다 란 걸 스스로 알겁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최고의 경지를 묘사할 수도 명확히 설명할 수도 없죠.
그저 알 뿐입니다. 예를 들어 내 머리를 볼 수 없지만 머리가 있다는 걸 알죠.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대강은 압니다. 내 이미지에 정상적인 반영을 보고 싶다면 정상적인 거울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마법의 거울을 들여다봐서는 안 되죠. 적어도 내 (진아. 자아)에 반영 체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진아)를 현혹하는 이미지죠?
사람은 왜 관음법문을 수행해서 깨달은 후에는 달라질까요?(아세요?) 그건 또 다른 거울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진아를 아직 보지 못했거나 단지 작은 부분만 보았다해도 들여다 볼 다른 거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
예를 들어 그는 계율을 지키고 채식을 하고 매일 명상하여 이 세상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이 환상에 집착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정상적인 거울이니 지금 들여다보면 우리도 정상적으로 보입니다.
이 세상에 여전히 살고 있고 아직도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해도 이 환상은 더욱더 정상이 되죠
그러므로 사람이 영적수행을 하고 도덕적이고 물론 계율을 지킨다면 그의 삶은 수행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보일 겁니다 그의 삶은 참 순수하고 정연하고 평탄합니다.
수행하지 않는 이들의 삶은 왜곡되어 모든 게 고통이고 모든 게 곤란하고 화나게 되죠.
이건 그들이 다른 거울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더 정상적인 거울을 봅니다.
정상적인 거울을 본다는 건 영적수행을 하는 것과 같죠.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평탄한지 바라보고 태도와 도덕성을 바라봄으로써 지혜가 있는지 분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서히 이 환상이 정상적인 환상에서 우리자신을 인식할 수 있죠
따라서 영적수행에서 계율이 필요 없다거나 영적 수행자는 계율을 초월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건 사실이 아이에요 더 높은 경지에선 계율이 초월해 있지만 이 세상에선 아직 분명히 계율을 지키고 사회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의 이미지의 반영은 추하게 보이겠죠
그럼 우리가 그 이미지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하여 내가 왜 이리 못생겼지 내 머리가 왜 이렇게 작고 내 배는 나왔고 내손은 왜 이렇게 일그러지게 보이지하고 의아해하죠 (알겠습니까?) 어떤 이가 아름다우면 천사처럼 달 요정인 창이처럼 달과 별처럼 아름답다고 말들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말하죠. 아름다운 사람을 소나. 말. 사람처럼 묘사하나요? 이게 진짜 마야에 생각입니다 회의론자는 석가모니 부처명성에 손상이가는 방법을 생각할 수가 없어서 농담거리를 이용해서 그를 조롱했습니다.
나중엔 우린 무지하고 미신을 믿고 아무도 어떤 걸 말해주지 않으니 그저 무턱 되고 소와 말에 이목구비를 믿고 계속 암송하는 거죠 그래서 부처를 그처럼 말하는 겁니다 이건 정말 석가모니부처에겐 불공평합니다 그에게 정말 불공평 하다는 게 동의하죠?
우리가 부처가 된 후에도 전처럼 똑같이 보입니다.
물론 더 아름답게 보이겠죠? 사람들을 매우 편안하게 만드는 매력과 아름다움이 있을 겁니다 우리를 보면 볼수록 더욱더 편안해지고 우리를 보고 싶어 합니다
우리를 보고나면 우릴 떠나고 싶어하지 않고 바라보는 게 전혀 싫증나지도 않죠 그래서 경전에도 석가모니 부처가 살아생전에 대중 앞에 나타 날 때마다 그에 제자들은 합장하고서 그를 줄곧 응시하고 있다고 쓰였습니다 그들은 그를 보는 게 좋았고 평소에도 좋았고 좋았기 때문에 다른 곳은 보지 않습니다
이건 그에 무형의 아름다움 때문이죠 우리처럼 보통 사람인 경우 배우자를 매우 사랑한다 해도 그이를 너무 오래 바라본다면 싫증나기도 할 겁니다 너무 오래보면 눈이 피곤할 거예요 우리가 부처가 되었거나 도를 얻어서며 우주와 하나가 된 누군가와 바라보면 절대 싫증나지 않지만 그 이유를 모를 겁니다. 그저 그를 바라보고 가까이 있는 게 좋고 밤낮으로 그를 응시하고 싶지만 그 이유는 모릅니다. 그가 무엇을 하더라도 그를 바라보기만 해도 그걸로 충분하죠.
(알겠어요?) 그것은 그의 무형에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에 겉모습은 많이 바뀌지 않았서 겉보기에는 여전히 똑같이 보입니다. 우리 동료 입문자의 몸도 입문 후에 바뀝니다. 여러분 자신과 남을 비교 해 본다면 알게 될 겁니다 우린 온순해지고 표현이 더 온화하며 피부가 밝고 희고 더 부드러워지죠. 전처럼 어둡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부처가 되어서 환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유일한 길이 있죠. 거울을 바라보는 대신에 내면을보고 (진아)를 봐야합니다 다른 방법을 둘러봐야 하는 거죠
먼저 발과. 무릎. 다리. 손. 배. 가슴과 어깨를 본 다음 우리가 다르다는걸 알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많은 몸이 있죠. 전에 말했던 것처럼 이 육신은 가장 바깥에 몸 입니다 육신과 똑같이 보이는 무형에 또 다른 몸이 있는데 이걸 (아스트랄체)라고 불러요 죽고 나면 누구든 이 영체를 받을 수 있는데 영적으로 수행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까지 그렇습니다 그건 그들이 더 멀리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코앞만보고 거기서 멈춰서 단지 아스트랄 세계에 그치게 되는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 영적수행자들이 부지런히 수행하지 않고 높은 수준에 이르기 전에 죽는다면 우리 또한 아스트랄 세계에 가게 됩니다. 그래도 상관없긴 해요 그곳에도 깨달은 스승이 있어서 우리가 부처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우릴 가르칠 겁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 우리가 이완을 구하고 가르침을 받고 믿음을 줄 깨달은 스승을 찿지 못한다면 영체를 얻은 후에도 우린 이 육신으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이건 우리가 멀리보지 못해서 자기 발취와 발자국에 매달리기만 해서죠. 그럼 우린 다시 거울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거기 까지는 아주 가깝죠. 제 말은 여러분이 거길 보고 그 다음에 여길 보고 다시 거길 본다고요 그래서 자신이 몸 전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유사하게 우리 영적수행자들에게도 깨달은 스승은 여러 몸이 있다고 말해주고 단계적으로 그것들을 보는 방법들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우리의 수준이 점점 높아질수록 우린 이전과 달라지는 겁니다.
이건 여러 신체 또한 우리 자신이 여러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영역들이 우리자신이 창조한 세계인거죠 모든 우리에 신체를 갖는데 우리자신을 반영한 거죠 사실 그렇게 많은 존재들이 있지는 않죠. 그래서 모든 것 들이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점점 더 높아질수록 우린 마침내 서서히 진아를 알게 되겠죠. 우리가 최고의 수준에 이르면 더 이상 그것을 묘사할 수 없습니다 그건 마치 자기머리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은데 머리가 거기 있는 건 알지만 볼 수 없잖아요? 그걸 볼 수 있다면 그건 진짜가 아닙니다.
(이해하겠어요?) 거울로 머리를 봐야 내 머리가 이렇게 생겼구나하고 말하죠. 내 머리를 직접 볼 수는 없잖아요? 거울 없이는 머리를 묘사할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부처가 되는 것도 일종에 환상입니다. 하지만 그건 가장아름다운 환상이죠. 그러므로 부처가 된 후에 우리가 한 단계 더 올라가면 부처가 아닌 상태가 돼서 무지해 보이는 현자가 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걸 압니다. 우린 어떤 것도 할 필요도 없지만 모든 걸 할 수도 있죠. 함 없이 하고 함 없이 압니다. 이건 불성보다 더 높은 수준입니다 부처가 되는 것은 보통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아서 자신의 머리와 발. 몸. 전체를 볼 수 있는 거죠
나의 진아는 이와 같구나 라고요. 이것이 바로 자신을 알라 자신의 본 모습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단계죠.
수프림 마스터 칭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