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벽화에 나타난 불교적 요소다. 널방 천정에 그려진 만개한 연꽃, 묘주와 부인의 초상화에 그려진 탑개의 연꽃 장식 등이 그 예들이다. 묘주와 부인이 들어앉아있는 탑개의 윗부분과 네 모퉁이를 각기 만개한 연꽃과 연꽃 봉오리로 장식한 것이다.
학자들 중에는 연꽃이 고분벽화에 나타났다고 해서 곧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수긍하기 어렵다. 불교의 영향이 아니라면 왜 굳이 연꽃을 그렸겠는가. 이는 분명히 불교와 불교 문화의 수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교가 고구려에 공식적으로 들어온 때는 소수림왕 2년(372), 즉 안악3호분이 축조된 357년보다 15년이나 늦다. 따라서 불교는 실제로는 공식적인 문헌상의 기록보다 훨씬 전에 이미 부분적으로 고구려에서 수용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안휘준, 2007,『고구려 회화 : 고대 한국 문화가 그림으로 되살아나다』, 효형출판, 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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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조치원을 오가는 기차 안에서 안휘준 선생님의 최근 저작인『고구려 회화 : 고대 한국 문화가 그림으로 되살아나다』를 완독했다. 고구려 회화라고 해도 고분벽화를 주로 하는 연구이기 때문에 전호태 선생님의 연구성과와 비교해서 솔직히 말해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미술사적으로 혹은 회화사적으로 고분벽화를 재해석하고 그 연구대상에 대해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재정립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런데 책을 읽는 중 위의 내용이 적혀 있어 잠깐 주인장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어째서 안휘준 선생님은 연꽃이 반드시 불교와 관련되어 있다고 자신만만하신 것일까? 아마도 불교가 공식전래되었다는 372년보다 앞서 고구려에 전래되었고 불교문화가 이미 고구려에 퍼져있었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위와 같은 자신에 찬(?) 발언은 문제가 조금 있지 않을까 싶다. 불교와 연관이 깊기는 하지만 연꽃은 불교와 상관없이 각 문명권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불교 전래 이전의 한중일 삼국, 이집트 등이 그러하다.
서정록은 그의 저서인『백제금동대향로 : 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확인되는 연꽃은 수련과(科)의 님파이아속(Nymphaea屬)으로 불교에서 숭배되는 수련과 넬룸보속(Nelumbo屬) 붉은 연꽃(Rakta-patmaya)과 다르다고 적고 있다. 물론 그가 재야사학자이긴 하지만 이러한 연구성과가 나왔기 때문에 안휘준 선생님은 연꽃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론을 준비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서정록은 연꽃에 대해서 상당히 새로운 주장을 하면서 적지 않은 연구성과들을 참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장 또한 연꽃을 무조건 불교와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렇게 따지면 사자도 불교와 무조건 연결시켜야 하고, 머리 깎은 사람이 나와도 무조건 불교와 연결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런지.
주인장은 개인적으로 안휘준 선생님의 연구성과를 다수 접하고 미술사 관련 공부를 할때 기본 텍스트로 삼기도 하였다. 하지만 위와 같은 단정적인 저술은 후배에게나, 혹은 선생님 자료의 도움을 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겨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