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의 한글사랑] 국어독립운동 길에 들어선 이야기_ 7.
한글날마다 세종대왕 동상에 꽃을 바치다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이대로
세종대왕은 어떤 분인가? 전제 군주시대 임금이지만 민주주의 시대 정치인들보다도 더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잘 살게 하려고 온갖 애쓴 진보 정치인이고 학자요 개혁자다. 먼저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게 하려고 남쪽 바다에서 이 땅에 들어와 노략질을 하는 왜구를 막으려고 대마도를 정벌했다. 왜놈들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때까지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는 말할 것이 없고 황해도와 강원도까지 바닷가에 자주 몰려와 우리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리고 북쪽 오랑캐를 압록강과 두만강 밖으로 몰아내고 나라 땅을 거기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들이 잘 살게 하려고 산업과 과학과 문화와 예술을 일으켰다. 모두 백성을 사랑하고 튼튼한 나라를 만들려는 일이었다.
세종은 한 시대의 한 임금, 한 사람으로서 엄청난 업적을 남겨서 후세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그 훌륭한 업적 가운데 우리 글자인 한글을 만든 것은 우리뿐만 인류 역사에 길이 빛날 큰일이다.
한글은 세계 글자 가운데 가장 훌륭한 글자로서 오늘날 우리가 문화 강국으로 가는 밑거름이고 우리 자주문화를 새로 만드는 으뜸 도구요, 세계 문화경쟁에서 승리하게 할 최신 무기다.
그런데 이 훌륭한 글자를 우습게 여기고 500여 년 동안 쓰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자가 빛나지 못했고 우리 또한 그 덕을 보지 못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우리 젊은 대학생들이 일어나 한글운동을 하면서 해마다 한글날에 덕수궁 세종대왕 동상에 꽃을 바치며 고마운 절을 했다.
덕수궁에 세종대왕 동상을 세운 1968년부터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빠진 1990년까지 23년 동안 해마다 그 행사를 하면서 세종대왕의 업적과 정신을 이어받아 한글을 빛내고 힘센 나라를 만들자고 외치며 다짐했다. 그럴 때마다 신문과 방송이 우리의 활동을 보도해주었고 한글을 지키고 걱정하는 한글단체와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그 때 그에 대한 반대 세력이 일어났다. 1969년에 일본 식민지 교육에 길든 왜정 때 경성제국대학출신 이희승, 이숭녕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중심으로 일본식 한자혼용 세력이 ‘어문회’란 모임까지 만들어 박정희 정부의 한글전용 정책을 가로 막으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1970년 초에 국어운동대학생회 창립 1세대인 나와 서울대 국어운동학생회장 이봉원 군들이 모두 학훈단 장교로 군에 입대하고 그 해에 한글학회 최현배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된 틈을 타 친일세력인 김종필 총리와 민관식 문교장관을 등에 업은 일본식 한자혼용 세력은 박정희 대통령을 압박해 그의 한글전용 정책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내가 1972년 군대에서 제대해보니 우리가 대학생 때 나서서 이룬 업적이 물거품이 되었었다. 그래서 학생운동 출신들이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를 조직하고 내가 회장이 되어 다시 한글 지키기 운동에 나섰다. 먼저 각 대학에 국어운동학생회 창립을 도와주어 전국에 16개 대학에 모임을 조직하고 활동을 지도하면서 한글학회와 한글단체들과 함께 한글운동을 하게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행하려고 한 전면 한글전용 정책을 물거품이 되었지만 정부는 국어순화운동이란 이름으로 우리말과 한글을 살리겠다는 정책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1979년 박 대통령이 갑자기 세상을 뜨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군사독재가 더 심해져서 한글문화운동을 하는 국어운동학생회 활동도 통제가 심했다. 그러니 후배들이 독재투쟁활동에 가담하게 되고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활동도 중단되었다.
다행히 한글날마다 덕수궁 동상 앞에서 꽃 바치는 행사는 할 수 있어서 선후배가 만나고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흔들리기 시작한 1986년부터 동문회도 다시 힘차게 출발하고 재학생 활동도 활발하게 되면서 국어운동학생회가 전국에 30 개 대학으로 늘어난다.
전두환 독재정권 10여 년은 한글사랑 운동까지 잠재웠고 그 사이에 한자혼용 세력은 친일 기업과 신문의 도움을 받으며 착실하게 세력을 키워서 교과서와 학술서적을 온통 일본식 한자말과 말투로 바꾸고 한글날까지 공휴일에서 빼버린다. 영어와 중국어는 우리말과 어순이 다른데 일본어는 우리말과 어순이 같아서 그대로 일본 한자말은 쓰고 일본 글자로 된 토씨만 한글만 바꾸면 되니 왜정 때 일본식 한자혼용 세력이 계속 힘을 썼다. 영어와 중국말은 어순이 “나는(주어) 먹는다(동사) 밥을(목적어)”인데 일본말은 우리처럼 “나는(주어) 밥을(목적어) 먹는다(동사).”이기에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들여다 쓰면 되니 일본 한자말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되었다.
거기다가 일본어는 삼국시대에 우리말이 건너가 뿌리 내린 것이라 우리가 배우고 쓰기 편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왜정 때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한자혼용 말글살이를 버리지 못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계속 주장해서 수십 년 동안 그 싸움을 계속하게 되었고 국민과 국어생활만 혼란하게 된 것이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와 야합한 친일 정치인 김종필, 김영삼 들과 친일 신문인 조선일보와 보수 세력을 등에 업은 한자혼용단체는 한글전용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도 내고 하늘을 뚫을 기세로 일어나니 젊은 나는 자연스럽게 이들과 맞서는 그 싸움판 맨 앞에 서게 된다. 세종대왕과 한글이 살아야 이 겨레와 나라가 살기에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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