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시편 1:1~6]
한 해가 시작이 되는 2014년 첫 주, 신년감사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첫 주를 출발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볼 오늘의 말씀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책 중에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장은 역시 시편일 것입니다. 시편은 총 150편으로 현재는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모세 오경처럼 다섯 권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각 권의 끝에 있는 특별한 송영 구절이 있음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제1권은 1-41편, 제2권은 42-72편, 제3권은 73-89편, 제4권은 90-106편, 제5권은 107-150편까지입니다. 이 다섯 권들을 시편 성립의 역사와 그 내용에 따라 또 세부분로 나눌 수가 있는데요, 제1부는 제1권에 해당하고, 제2부는 제2권과 3권에, 제3부는 제4권과 5권에 해당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 세 부분은 각각 특징들이 있습니다. 1부는 주로 다윗의 시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2부는 약간의 다윗의 시 외에 아삽과 고라의 자손들의 노래로 구성이 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3부는 다윗의 시 외에 무명작가의 시가 많은 것과 ‘셀라’와 같은 음악적 용어가 적다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이 처럼 시편에는 다양한 특징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제1권은 전부 다윗의 시로써 시편 전체의 서론이고 표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시는 그 성질상 여러 가지 처지에서 각자의 특별한 정서를 노래한 것이지만 시편 전권을 통틀어 관찰하면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의 중심의 소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 1편은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가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만나 무력한 존재가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사실은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행복한 사람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복 있는 자로 살아간다는 사실들을 입증하는 내용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편은 시편 전체의 서문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즉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는 것이지요. 자격입니까? 조건입니까? 아니면 상식입니까? 어쨌든 복 있는 사람을 말한다는 것은 그와는 반대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렇다면 복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창1장 22절의 말씀을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이 성경에 나오는 복의 첫 번째 단어입니다. 여기에서 복이란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첫 번째 복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 3절에서는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복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비록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한 복을 받았다 할지라도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처럼 거룩해지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지요.
또 다른 구절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왜 복을 주실까요? 결국 같은 내용입니다. 복 있는 자의 이름이 창대해 지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내게 복을 주신 하나님은 복 있는 나를 통해 그분이 거룩해 지고 창대케 되어 충만해 지는 것을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의 내용들을 비추어 볼 때, 진정한 복을 설명하셨던 주님의 음성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산상보훈 말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은 무엇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구약의 복은 주로 물질적인 충만함이라면, 신약의 복은 영적인 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확증이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기록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진정한 복을 받는 자는 시편 1편의 말씀처럼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를 둘러싼 악인들이 가득하다 하여도 우리는 결코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죄인들의 형통함이 좋아 보여도 그들과 함께 걸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오만한 자가 우리를 격멸하고 무시하며, 유린해도 오만한 자의 자리는 절대로 앉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복 없는 사람과는 확실히 달라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만 해야 합니다. 복은 그렇게 오는 것입니다, 복은 그렇게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잠시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악인의 속삭임이 음악처럼 들려와 “주일 날 놀자!”, “주일 예배는 대충 드리고 즐기자!”고 하여도 그 속삭임에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면 그는 진정 복 있는 사람이라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악인의 속삭임과 죄인의 행위와 조롱하는 자의 소리가 세상을 성공적으로 만든다 하여도 그들과는 상관없이 성경 말씀만 우리의 즐거움이요, 자랑이요, 기쁨이 되어야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즐거움이요, 기쁨이 될 때 무엇이 복이 되는 것입니까?
3절은 그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에 힘이 되는 말씀은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다 형통케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살아가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4절을 보십시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결국 악인의 모습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한 때,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하여도 결국은 풍전등화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바람 불면 없어질 것을 복이라 하겠습니까? 잘 나가다 한 번의 시련에 없어져 버리는 것이 복입니까? 진정한 복은 심판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복이 심판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켜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복 있는 자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복 있는 사람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베드로전서 3장 14절을 봅시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한 절을 더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복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과 어떤 여건이 주어진다 하여도 두려워하거나, 근심해서는 아니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위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영이 동행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우리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지키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편 121편 3절의,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하신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형통해 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복 없는 자의 점진적으로 진화해가는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악인이었습니다. 그러다 죄인으로 진화합니다. 그리고 오만한 자로 발전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들의 모습은 이렇게 단계적으로 멸망의 사람으로 발전해 가지 않습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다가 나중에는 습관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순종하기를 아무것도 아닌 양 범하게 되면, 그는 순간부터 오만해 지는 것이고,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자리로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죄를 좇다 보면 죄에 서게 되고, 죄의 자리에 서 있다 보면 결국은 죄의 자리에 앉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심판을 만나면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자의 절차를 본받지 맙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디모데전서 1장 1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구약에서 복의 개념은 번성하고 창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신약에 와서는 복의 개념이 영적인 면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육적인 면의 복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영적 축복이 더해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진짜 이유는 복음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인 말씀을 통해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진짜 복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멘교회의 금년 표어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교회입니다. 복 있는 교회가 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우리가 본 받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속성이 신실하시고 진실하시며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해야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신 7:9).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삼상 26:23). 신실은 착실함을 말합니다. 믿음직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 145:18). 하나님이 누구와 가까이 하신다고 했습니까?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라고 하셨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하나님은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복 있는 사람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새해 첫 주, 우리는 기억합시다.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자신을 복 없는 사람들과 구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에 전부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