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싸가지 / 박영보
촌티. 조국을 방문할 때마다 겪게 되는 나의 어수룩함. 이로 인하여 형제 자매에게 항상 조바심을 안겨주기가 일쑤인 나의 실제 모습이기도 하다. 초행길이었다면 한 가닥 변명의 여지라도 있었겠지만 매번 반복되는 나의 실수에 더 이상의 기대를 할 수가 없겠다는 판단이 서있는 것 같다. 내가 집을 나가게 되면 마치 객관식 문제의 해답을 원하듯 질문을 해대신다.
마을 버스의 번호, 전철은 몇 호선, 행선지, 갈아타기 등에 대하여 물으신다. 집에 돌아오는 순서와 방법까지도 문답 형식으로 최종 확인을 해야만 마음이 놓이는가 보다. 나는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메모지에 적어가며 버스나 전철 안에서도 시험공부를 하듯 암기를 해둬야만 나 자신도 마음이 놓인다. 팔 십대 중반을 향하고 있는 형님이 칠십을 넘긴 유치원생을 밖에 내보낼 때의 걱정 때문이리라. 이런 형님이나 동생의 모습, 제법 귀여운 광경이 않겠는가.
길눈이 유난히 어두워 항상 헤매야 하는 나는 형님을 안심시키게 해 드리기 위해 수시로 전화 연락을 드려야 한다. 전철은 제대로 탔으며 갈아타기, 목적지에 도착, 되돌아 올 때도 수시로 보고를 하듯 연락을 드리게 된다. 무사히 돌아와서는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잘 다녀 왔습니다”라며 뻐기고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웃기는 이야기 같지만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 아니겠는가.
머리 색깔이 좀 하얗다는 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얼굴은 아직도 팽팽한데~. 전철 안에서 가끔 겪게 되는 일이다. 한가한 시간, 승객이 별로 많지 않아 빈 자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출입구 근처에 서게 된다. 의자 가까이에 다가가 서면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일들 때문이다. 중고등 학생 정도의 젊은이들이 일어선다면 고맙다며 못이기는 체 앉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것마저도 거북하다. 삼 십대 중반이나 그 이상으로 보이는 분들이 자리양보를 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다 보고 있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속으로는 ‘내가 벌써 자리 양보를 받을 만큼 늙은이가 돼가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라는 말. 고맙기도 하지만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친절에는 알밤이라도 먹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도 이러한 아름다움이 간직돼 있다는 사실을 생각을 해본다. 고마운 일이다. 형님 댁에 머물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문이 열려 이웃들이 타거나 내릴 때도 그냥 드나드는 것이 아니다. 꼭 인사가 따르는 광경들. 가뭄에 찌들어 마음까지도 메말라 있는 상황에서 청량음료를 마시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게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따뜻한 고향의 온기가 느껴진다.
몇 달 전 우리 부부가 일주일간의 계획으로 두 아들과 함께 뉴욕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뉴욕 양키스와 로스앤젤레스의 엔젤스 팀과의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전철을 타게 되었다. 개막시간이 가까워진 시간의 전철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그럴 때 삼 십대쯤으로 보이는 백인 커플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호텔에 돌아올 때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똑 같은 양보를 받게 되었다. 갈 때나 올 때 습관처럼 “괜찮다. 고맙다”라는 말로 사양은 했지만 어깨를 끌어 당기며 앉혀주는 것이었다. 이들이 혹시 국제화,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는 한국으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의 모양새를 표절해 간 것은 아닐까.
미국인의 싸가지. 그곳 생활 사십 년이 돼 가는 나와 아내에게는 어느 정도 그곳 생활에 익숙해져 있고 한때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지 오래이지만 또 다른 발견을 하게 된 것 같았다. 자유 분망하며 개인 이기주의가 팽배한 나라의 젊은이들로만 여겨오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존중하고 존중 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처럼 남을 존중할 줄도 알고 베풀 줄도 아는 사람들. 내가 남으로부터 불편을 겪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만큼 남에게도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사상이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에 우리 스스로가 딴지를 거는 이들도 없지 않았겠지만 또다시 움 돋는 아름다운 싹들을 보게 되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배부른 소리 같지만 한가지 아쉬움도 있다. 그냥 꾸벅 하고 고개만 까딱하기만 할게 아니라
“안녕하세요”라거나 “좋은 하루 되세요”라며 생끗 웃으며 한마디씩 해준다면 무더운 한 여름 팥빙수 한 술을 입에 넣는 느낌이 들 것도 같은데. 사실 그런 분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