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안와사와 짜장면
- 우리말이 살아날 길 -
우리말 바로쓰기 모임 김 정 섭
구안와사와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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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로쓰기 모임 김 정 섭
들머리
말은 입에서 태어나서 입심으로 자라고 입심으로 힘을 키운다. 힘 있는 말이란 많은 사람이 그 말을 쓴다는 뜻이다. 잉글리시(영어)는 온 누리 온갖 말 가운데서 가장 많은 사람이 쓰기에 누리말(세계어) 자리를 차지한다. 나라말도 여러 한뜻말(동의어) 가운데서 대중말(표준말)을 가려잡을 때는 어느 말을 더 많이 쓰느냐를 잣대로 삼는다. 입심은 말을 만들고 말을 키우고 말소리와 말뜻을 바꾸고 다른 나라 말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말이 입에서 놀면 살고 멀어지면 죽는다. 입에서 사라진 말은 옛말 또는 죽은 말(死語)이라 한다.
2. 대중말(표준말)과 들온말(외래어)
국어원에선 몇 해 전부터 ‘표준국어대사전’을 깁고 더하면서 묵은 대중말을 버리고 새 대중말로 바꾸기도 한다. 이번에 눈에 띄는 것은 지난번 ‘자장면’과 ‘짜장면’에서 한 것처럼 ‘구안괘사(口眼喎斜)’와 ‘구안와사’ 한뜻말로 삼은 일이다. 이는 참으로 뜻밖이고 정말 놀랄만한 생각이다. 다만, 짜장면과 구안와사를 겹대중말이 아닌 들온말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이 말은 대중말 아닌 들온말에서 다루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안괘사를 한의사들도 구안와사라 하는데 이는 한문글자를 몰라서 일어난 일이다. 이 한자말의 한문글자 뜻과 소리는 ‘입 구’, ‘눈 안’, ‘입 비뚤어질 괘’, ‘기울 사’인데 여기서 ‘괘(喎)자’는 자주 쓰는 글자가 아니므로 아는 사람이 드물고 ‘와(渦, 煱, 煱)자’와 생김새가 비슷하여 누군가 ‘구안와사’라 잘못 읽은 것이 오늘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우리말사전도 거의 다 구안와사로 올라 있고 ‘괘(喎)자’도 웬만한 ‘옥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글자다.
3. 구안와사
이번에 ‘구안괘사’와 ‘구안와사’를 겹대중말로 삼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구안와사라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구안와사를 구안괘사로 바로잡겠다고 애를 썼지만 끝내 입심을 이기지 못 했다. 어쩔 수 없이 생각해 낸 잔꾀가 둘 다 대중말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억지 같은 이 일에서 우리는 뜻하지 않게 참으로 놀랄 만한 한 줄기 빛을 보았다. 애타게 찾아 헤매든, 우리말이 한문글자, 한자말에서 풀려날 길, 우리말이 나아갈 길을 여기서 찾은 것이다.
아직도 한문글자를 쓰자는 사람들이 많다. 한문글자 팔아서 돈을 버는 장사치와 한자말을 우리말이라 하고 한문글자를 우리글자라고 우기는 국어학자, 교과서에 한문글자를 넣지 못해서 안달하는 교육부다. 이들은 무슨 핑계로든 발목을 잡으려 들겠지만 ‘구안와사’는 이제 한문글자가 비집고 들 틈새가 없다. 들온말로 받아들여서 우리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한자말, 한문글자라는 그렇게 굳고 높았던 돌담 한 귀퉁이를 무너뜨린 것이다.
여기서 미리 밝혀둘 일은 들온말(외래어)의 뜻이다. 들온말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국어학자들이 그렇다. 뿌리는 ‘다른 나라 말(외국어)’이나 우리 삶 속에 녹아 들어 우리말로 탈바꿈한 것이 들온말이다. 겨레말과 들온말은 우리말은 이루는 두 기둥이다. 들온말은 언제 어디서 들어왔건 우리말이다. 그리고 우리말은 한글로 적도록 ‘국어 기본법’에 명토 박아 놓았다. 이제 누구도 ‘구안와사, 짜장면’를 한문글자로 쓸 수 없다.
4. 오늘날 우리 말글살이 모습.
여든 해 가까이 우리말글살이를 바루려고 갖은 애를 다 썼건만 좋아지기는커녕 오리려 더욱 헝클어지고 비뚤어졌고, 글자마저 한문글자, 로마글자, 무슨 ‘암호’ 같은 것도 섞어 쓴다. 읽을 수조차 없는 글자만 줄줄이 이어진다. 문화부와 국어원은 하루빨리 비뚤어진 입과 한쪽으로 기운 눈을 바르게 고치고 우리 말글살이가 어떤 모양인지 제대로 보고 느껴야 한다. 왜 엉망진창이 되었는지 까닭을 살펴보아야 한다. ‘들온말 사정’을 하지 않은 탓이 크다.
우리 겨레말은 한자말에 치여서 많이 사라졌고, 말글살이 뒷전으로 밀려나 사전에 실린 것으로 겨우 목숨을 이어 간다. 우리말을 갈고 닦아야 할 사람들이 한자말에 목을 맨 탓이다. 우리말 가운데 한자말이 열에 일여덟이라는 사람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한자말을 우리말이라는 분은 붙박이생각(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자말은 우리말이 아니다. 한자말을 주인 자리에 앉히고 겨레말은 토씨로만 쓰는 것은 예부터 써 온 우리말투가 아니다. 왜놈들이 ‘일본말만 쓰기(국어 상용)’로 겨레 머릿속을 물들인 뒤에 생긴 말버릇이다.
5. 마무리
우리는 ‘구안와사, 짜장면’에서 다른 나라말을 우리말로 들여오는 길을 보았다. 이제부터는 망설이지 말고 ‘들온말 사정’에 나서야 한다. ‘들온말 규정’에 따라 쓸모 있는 말을 골라 들온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말을 살리는 길이고 우리말을 살찌우는 길이고 우리말이 나아갈 바른 길이다. ‘표준어 사정 원칙’ ‘제1장 제2항에 외래어(들온말)는 따로 사정한다.’고 못을 박아놓았다. ‘겨레말 큰 사전’을 만들기에 앞서 국어원과 한글학회, 교육부에서는 서로 손 잡고 ‘들온말 규정’을 만들어 ‘들온말 사정’을 서두르기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