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에 젖다
나 금 숙
이태규 시집『그리움으로 가는 파도』
명성서림
이태규 시인은 모 단체에서 꽤 오래 같이 활동한 인연이 있다. 모임에서 시인은 항상 다정하시고 잔잔한 유머가 넘치는 분이셨다. 어느 해 연말에는 연하장을 보내주시고 직접 전화까지 하셔서 오랜 환자인 우리 남편 안부를 물어보셔서 감동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좋은 기억은 우리의 남은 날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며 영양가 있는 에너지원이지 않을까? 어쨌든 이태규시인은 사람만큼이나 시도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서울 끝자락 청계산 옛골에서 자신만의 독락당인 지녹당을 지어놓고 한유와 분주함을 나름 즐기는 시인께서 어느 가을, 시인들을 초대하셔서 일박을 누린 적이 있다. 시 속에 등장했을 귀한 꼬꼬닭이 마당에 내걸린 가마솥에서 귀한 손님들을 위해 장작과 잡목들에 의해 삶아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나 보던 정겨운 풍경이라 지금도 어제 본 듯 인상적이다. 밭에서 손수 가꾸신 채소를 뜯으라고 하셨는데 원래 일을 잘 못하는 나를 나무라셨던 것 같기도 하다. 선생님의 시집을 읽기 전에 펼쳐지는 추억의 후경들은 시 속에 쉽게 빠져들게 해 주었다.
역시 이태규 시인의 시는 낮은 생 울타리 너머 들리는 옛 친구의 휘파람소리처럼 낯익고 정겹고 예스럽다. 주로 문 밖을 나서야 보는 풍경들이지만 울안의 작은 가축들, 곤충들, 미물들에까지 애정 어린 시선이 깊다.
다음과 같은 시를 읽어보면 시인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 눈높이에 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리를 키우다가
오리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보았다
누가 상상이나 할 법한 일인가?
부화한지 한 달쯤 되었을까
닭장 안 오리새끼에게 물통 하나를 넣어주고
물을 채워 주었다
이튿날 아침의 일이다
오리 새끼 두 마리가 익사 한 것이다
물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밤새 물 위에 떠 있다 보니
기력이 빠졌던 것 같다
오리가 물에 떠 있는 것은
그대로 떠 있는 것이 아니고
계속 발을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ㅡ「눈에 보이지 않는 힘」전문
계속 발을 움직여야 하는 오리였구나! 우리의 눈에 우아한 자태만 보여주어서 이런 줄 몰랐다. 가엾은 아기오리는 물에 너무 빨리 들어갔다. 물에 사는 오리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여실히 느껴진다. 물에 떠 있으려면 발을 계속 움직여야 된다는 깨달음처럼 시인은 자연과 생활에서 얻은 지혜를 시 곳곳에서 맛깔스러운 팥 앙금처럼 장치해 놓았다. 시들은 또한 연륜만큼 혈육들에 대한 생 체험을 들려주고 있다. '아무리 좋은 낫이라도 옥갈면 아무 데도 쓰지 못한다'면서 서툰 낫 갈기를 바로잡아주시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식들에게는 "너희들이 그저 바라만 봐주어도 고맙단다"라고 소박한 부정을 그리고 있다. 이렇듯 힘을 들이지 않고 주변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을 나직나직 들려주는 시들이 허황되지 않고 생생하다.
산길을 가는데/ 나뭇지가 툭 건드린다/ 산짐승도 지나갈 때 건드렸겠지/ 추운 겨우내내 얼마나 쓸쓸했니?/ 그래 미안하다(하략)
이 시에서도 그냥 지나쳐버릴 일 개 나뭇가지와 대화하며 거친 산짐승까지 길 지나는 과객으로 만드는 큰마음을 부려놓고 있다. 전 편의 시들이 짧지만 한 초점을 잡아내어 이야기 시로 풀어놔서 선명하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다음과 같은 시는 정말 신선하지 않은가? 비를 노래하는 많은 시가 있지만 참 포근하게 안겨오는 시이다. 아마도 시인에게 보슬비는 우주 속에 깃들인 가장 잘 어우러진 음양의 기운이 아닐까? 그러기에 "속옷까지 벗어던지고 맞고 싶은 비"라고 노래하는 것일 게다. 이 한 구절로 마른 고목 가지에 새 순이 돋듯 우리 모두를 한 방에 회춘시킨다. 다시 돌아 온 첫사랑 맞이하듯이 보슬비를 반기는 품이 참 넉넉하다. 왕성한 시 농사로 다음 시집에서도 풍수가 엄청 좋을 지록당 주변 산천을 등불처럼 내 걸어주시길 부탁드린다.
맞아야 할 비가 보슬비다
맞지 않으면 억울할 비가 가을 보슬비다
속옷까지 벗어던지고 맞고 싶은 비다
지구를 돌고 돌다가 수십 년 만에 내게 온 행복이다
누가 이 부드러움에 취하고 싶지 않을까
ㅡ「보슬비」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