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즐통신 29 장마와 상추와 잡초
두어 차례 서울에서는 소나기가 내려 내 밭은 그럭저럭 가뭄이 해갈되었다. 이제는 장마 걱정이다. 왜냐하면 장마 오면 상추는 끝이다. 세찬 비에 상추 같은 채소는 금방 떠내려가고 꽃대가 올라오면 야채는 생명을 다했다고 한다. 6월은 날씨가 더워지면서 야채가 수확되는 시기라 가장 야채가 싼 달이라고는 하지만 이번은 가뭄 탓에 꼭 그렇지도 않은 것만 같다.
한 달 동안은 고소한 상추 먹는 재미로 살았다. 설거지하다 접시를 깨 상추 담는 용으로 큼지막한 상추용 접시도 하나 사서 새 접시에 내가 기른 쌈채소를 담아놓고 먹었다. 그런데 이번 달은 밭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바빴다. 메르스 때문에 사람이 안모일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임에도 나가고 그 길에 영화도 보고 그릇도 사고 가을에 입을 옷도 모처럼 샀다. 저녁 모임 식당에서는 나오다 보니 우리밖에 없었다. 예약하기 어려운 식당이었는데 다 취소되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옷을 사러 들어갔더니 인상 쓰고 있던 주인이 내가 사가지고 나올 때까지 얼굴을 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웃어 주었다. 혹시 내가 유일한 손님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가만히 있어도 월급 나오는 무슨 공단 직원, 가만히 앉아서 일안하고 몇 억씩 받는다는 무슨 기관 감사 등등이 아니다. 메르스도 무섭지만 굶어 죽을까봐 더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래저래 죽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무 일 벌어지지 않고, 하는 일없고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모아 새 아파트 청약이나 하러 다니면 좋은 팔자일까? 5월 20일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왔다고 하니 이제 한 달이 됐다. 한 달 동안 가만히 있기도 힘들다. 더구나 하루 일당 벌지 못해 내몰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옷가게주인 얼굴표정을 안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언젠가 벼룩시장에 팔 물건을 가져가느라 아침 일찍 택시를 탔다. 그런데 그날 매출이 택시 값이 나오지 않았다. 보통은 나오는데 말이다. 그 날 중간에 들린 지인이 내 얼굴을 보더니 ‘얼굴이 왜 그래요?’ 하고 물었다. 얼굴을 찡그리며 ‘밑져서 그래요’라는 대답이 순식간에 나왔다. 보통은 나오는 하루 매출?이 그 날 안 나온 것이다. 다른 날은 교통비는 나오는데 그날 딱 하루만 그랬다. 그래서 그날 기분이 내내 안 좋았다. 그 기분이 얼굴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한 달 내내 사람이 안 오는 가게를 지키며 가게세, 전기료 등등을 생각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상상이 간다.
누군가 우리 경제는 20대와 영세자영업자의 희생으로 굴러간다고 했던가. 임대료가 인상으로 가던 식당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다시 누가 다시 세 들어 인테리어를 고치고 또 나가고 또 인테리어를 다시하고 그러면서 도시는 새 모습을 유지한다. 자기가 버는, 재산이 좀 있는 한 부인이 말했다. ‘세금은 나라를 위해 낸다고 생각하고, 없는 사람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내지만 건강보험료는 좀 아까워요’ 직장에서 내주지 않는 자영업자들은 자기가 버는 하루하루 매출이 생명이다. 그 자영업자들이 세금, 건강보험료 등등을 낸다. 메르스는 특히 사람이 다녀야 장사가 되는 자영업자들에게 타격을 입힌다. 지역가입자로 불리한 상황에서 돈은 매달 내야하는데 말이다. 메르스는 전염병이고 재앙이다. 그런데 우리가 내는 건강보험료는 아무 관계가 없나 모르겠다.
이제야 메르스가 발병한 병원을 일단 폐쇄한다고 한다. 너무 길어져 하도 답답해 메르스 외국사례를 읽어봤더니 베트남이 성공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사스감염율이 낮아 나라를 깨끗하게 지켰던 것은 의료진들이 사스발생 병원을 즉시 폐쇄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니나라에서도 어떤 동네병원 의사가 메르스 의심환자를 시설이 있는 병원으로 보내고 자신의 병원은 자진해서 휴업했다고 한다. 그 지역은 한동안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전염병같은 무슨 일이 벌어지면 의료진이 즉시 폐쇄하고 대응해야한다. 결정해야한다. 배의 선장이나 마찬가지이다. 메르스가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 말이다.
나중에 뽑아야지 하고 내버려뒀던 잡초가 가뭄에도 자라 무성하다. 뽑으려니 뿌리가 깊게 자리 잡혀 안 뽑힌다. 이파리라도 뜯어본다. ‘나중에 잡초를 어떻게 잡으려고 그래요’ 걱정하던 이웃 말이 맞았다. 처음 잡초 싹이 나왔을 때 싹 없애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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