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적 환원을 위한 투쟁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독일의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은 원래 라이프치히, 베를린, 비엔나에서 물리학, 천문학, 철학을 즐겨 공부하던 수학자였다. 그는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마친 후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인 마자릭(Thomas Masaryk) - 후일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 됨 -의 권고로 대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브렌타노의 강의를 들으면서 철학으로 돌아서게 된다. 브렌타노는 단연코 후설이 평생의 직업으로서 철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철학을 가장 엄밀한 학문의 정신 속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후설이 살았던 19세기 말 시대의 변화는 자연과학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와 함께한다. 18세기의 칸트가 뉴턴으로 거슬러갈 수 있는 자연과학의 발전에 대해 낙관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19세기의 후설은 현실 그 자체보다 가정과 모델을 중심으로 한 과학적 탐구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특히 그는 물리적 영역에 한정된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에 대응하려는 세기말의 다양한 시도들을 문제 삼았다.
공교롭게도 형이상학의 모든 가능성을 종결지었던 니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1900년 후설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저작 『논리연구』의 제1부를 출간하여 ‘현상학’이라는 20세기의 철학을 제시하였다. 제1부와 제2부로 나누어 출판된 이 기념비적인 저작에서 후설은 논리학의 본질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알고자 하는 주관성과 알고 있는 내용의 객관성의 관계를 파고듦으로써 새로운 ‘순수 논리’와 ‘인식 이론’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그는 어떤 특정한 형이상학에 몰두하려는 니체보다는 지식이 가능한 조건을 추구했던 칸트적인 성향을 가지고서 논리학의 위상과 과학적 지식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특히 그는 이 과정에서 논리학을 심리학으로 환원시키려는 경험주의 심리학자들의 여러 범주적 오류를 발견하였다. 요컨대, 그들 심리학자들은 논리학의 법칙을 특징짓는 이념성, 의심의 여지없는 확실성, 비경험적 타당성으로서 선험성과 같은 요소들이 사실적이고 경험적인 심리 본성에 의거하여 결코 해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근대과학에 대한 후설의 비판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 전반에 대한 실증과학의 의미상실과 과학의 자연주의를 겨냥하고 있다. 그는 근대인의 거의 모든 세계관이 실증과학에 의해 규정되고 실증과학으로 이룩된 ‘번영’에 눈이 멀어 있다고 규탄한다. 이를 위해서 과학자는 가치와 관련된 모든 입장을 배제하고 더구나 주관적인 모든 것을 추상화한다. 사실에만 마음을 두는 학문은 단순히 사실만을 챙기는 사람들을 양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설은 실증주의적 동기가 궁극적으로 “철학의 목을 베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과학은 더 이상 절대적인 진리와 타당성의 문제들에 대해 대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과학이 단순한 실증적인 사실에만 스스로를 국한시킴으로써 가치와 의미의 문제를 다룰 수 없거나 직면하기를 꺼려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있어서 학문의 위기와 인류 전체 위기의 근원인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후설은 과학적 객관주의 학문과 초월적 주관주의 학문을 엄격히 구분한다. 후설에게 있어 객관학문은 논리 실증주의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우리에게 경험을 통해서 미리 주어진, 즉 자명한 세계의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반면에 초월적 주관주의 학문은 과학 이전에 경험하는 삶의 성과물을 다루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초월학문은 과학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인간의 활동과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의 활동에서 발생하는 이론적 타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후설은 철학의 영역에서 위대한 혁명이 과학적 객관주의 학문을 초월론적 자아와 세계에 대한 순수 정신적 접근에 입각한 초월학문으로 변형시키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후설은 모든 서구의 진리 역사를 객관학문과 초월학문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의 역사로 파악한다.
후설은 18세기 영국의 흄과 독일의 칸트가 초월적 진리 추구를 향한 미래의 길을 활짝 열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유럽에서 자연과학의 급성장이 오히려 이러한 객관학문 또는 객관주의적 철학의 세력을 부추겼고, 다시금 실증과학으로 그 세를 더욱 키워왔다고 주장한다. 근대 실증과학에 뿌리를 두고 우리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편견들의 힘은 우리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의 영혼에까지 그러한 편견들이 주입되고 있다. 그래서 후설은 편견을 없애려는 추상적인 일반의지만으로 좀처럼 이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매너리즘과 ‘심리주의’의 수렁에 빠지기 쉬운 우리 인간의 주관성을 지속적으로 경계할 수 있는 초월적 인식론을 어떻게 발전시키는가에 있다. 그것은 알려고 하는 주관성이 단순한 기술이나 공허한 상태로부터 벗어나려는 초월적인 동기에 달려 있다. 후설은 이러한 본래적인 동기가 철저한 판단중지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후설은 우리가 지옥과 같은 판단중지를 통해서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철학에 이르고 이를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천국의 문으로 뛰쳐나가려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현상학적 사유는 이와 같은 데카르트적인 전회와 칸트적인 전회의 대립 사이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설에 의하면, 칸트는 사실 모든 과학적이고 선과학적인 전통으로부터 철저한 해방에 의해서 얻어지는 진정한 출발점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즉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 의미와 타당성에 따라 구성하는 ‘절대적인 주관성’으로 파고들지 못했던 것이다.
이 둘 사이에서 궁극적인 전회를 제시하고자 하는 후설에게 있어서 칸트 이래 초월론적 전환을 위한 투쟁은 결국 진정한 초월적 환원을 위한 투쟁이었다. 여기서 칸트의 방식이 “신비적으로 구축하여 추론하는 방법”이라면 후설은 “철저하게 직관적으로 해명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진정한 초월적 환원을 통해서 도달한 초월학문이야말로 후설이 추구하고자 하는 엄밀한 학문(a rigorous science)으로서의 철학이다.
하지만 후설이 수립하고자 하는 엄밀학은 무엇보다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는 자신의 생활세계적 통찰에 기초하고 있다. 일상생활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행위야말로 아직 불확실한 계획을 더 확고하게 만들고 동시에 부분적으로 성공한 실행을 더 명확하게 한다는 것이다. 무릇 모든 과학의 토대는 논리가 아닌 행위에 있으며, 그리고 전문적 지식이 아닌 일상 지식임을 후설은 보여주고자 하였다.
후설 현상학의 위업은 한마디로 “단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경시되어 왔던 “일상지식(doxa)”을 역사상 처음으로 과학적 토대로 수립하고자 했던 점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객관적 인식의 궁극적 토대는 생활세계의 밑거름이라 할 수 있는 단순한 경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후설은 그 경험을 통해서 “직관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진리에 대한 믿음을 복원하기 위한 새로운 길은 객관적인 인식과 우리가 단지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이는 일상지식 간의 투쟁이다.
이러한 후설 현상학은 근본적이면서 동시에 비판적이다. 그의 사상이 근본적이라 함은 우리 경험에 기원을 두고 있는 범주와 개념에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고자 한다는 점이고, 그의 사상이 비판적이라 함은 여러 경험적, 합리적 인식론들이 어떤 이론이 전제하고 있는 범주와 개념을 적절히 해명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점에서이다.
후설 현상학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시대(1933-1945)에는 철저히 외면당하였다. 심지어 전후 프랑스에서도 후설을 하이데거의 시선으로 읽는 불행한 관행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20세기의 후설 현상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주요 사상가들로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슈츠, 레비나스, 리쾨르, 앙리, 데리다를 들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상학에 기초한 이들 사상가들이 자신만의 철학적 고유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대체로 후설을 비판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후설의 주요 강의와 다수의 미간행 원고들이 출판되어 이제는 후설과 그의 계승자들의 사상적 영향관계를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후설의 현상학적 전통의 영향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의 제일인칭 관점의 생활세계 현상학은 계량적 사회연구의 대안으로서 질적 연구의 사상적 토대가 되고 있고, 의식의 수동성에 대한 그의 정교한 기술은 최근 인지과학이론과 신경과학을 통해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으며, 그의 초기 산술철학과 논리연구 역시 영미 분석철학자들로부터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심각하게 계승해야 할 후설 현상학은 초월의식의 발생현상학(genetic phenomenology)이다. 의식의 시간성과 역사성에 기초한 발생 현상학은 대상의 발생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관적 활동, 초월적 삶, 나아가서 본래적 의미의 공동체 형성과정을 기술하려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후설을 더 알고 싶다면
후설의 현상학적 개념들을 최초로 소개한 그의 초기 대 저작 『논리연구』는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다. 후설의 사회과학적인 통찰과 몸에 대한 통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II』(이종훈 번역, 한길사)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내재적이지 않은 후설을 잘 담고 있다. 메를로-퐁티는 이 저작을 통해서 자신의 몸 철학을 분석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후설 초월적 현상학의 전모를 가장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보여준 저작으로 이종훈 번역(한길사)의 『데카르트적 성찰』이 있다. 이 책을 불어로 옮긴 레비나스는 상호주관성이 주관성보다 더 기본적이라는 후설의 제5성찰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타자성 철학을 발전시켰다. 20세기 초반 유럽 인간성의 위기상황에 대한 후설의 통렬한 비판과 초월적 현상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종훈 번역(한길사)의 『유럽의 인간성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읽을 필요가 있다. 데리다는 이 저작에 부록으로 실린 논문 「기하학의 기원」을 불어로 번역하고 책 한 권 분량의 서문을 달았다. 이 책에서 그는 정태적이지 않은 후설을 발견한다. 즉 데리다는 후설의 발생 현상학과 초월적 현상학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첫댓글 아이온님, 후설 철학의 철학사적 위상과 핵심적인 문제 의식에 대해서 잘 읽었습니다. 공부가 많이 됐는데요, 앞으로도 아이온님의 후설에 대한 글을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사막의늑대님께 공부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 20세기 철학자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사유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철학자가 후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후설 사상의 전모를 그려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앞으로도 여전히 걸림돌이 될 것 같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후설에 대한 좋은 소개글을 올려주시는군요. 저는 여전히 우왕좌왕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읽은 '부작용으로' 요즘 조선 후기 사회와 천주교를 다루는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벌써 열흘 정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막연한 욕망에 휘둘리기 전에 며칠 동안 데카르트의 [성찰]에 대해 두서 없이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 노트를 계속 작성하려고 하니 [성찰]에서 무엇을 읽었던가 가물거립니다^^ [성찰]을 끝낸 후에 푸코과 데리다의 논쟁을 살펴보려고 했는데 그만.... 잠시 살펴본 마리옹의 데카르트 해석도 흥미있더군요. 연말에 건강하십시오.
저도 요즘 푸코를 가까이 하는 편입니다. 우리 상황을 분석하는 데 후기 푸코 강의들이 큰 도움이 되더군요. 마리옹의 데카르트 해석은 새로운 지평의 현상학을 개척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에게 미셸 앙리가 많은 영향을 주었지요? 후설의 저작 [데카르트 성찰]은 제목과 달리 칸트의 초월철학을 철저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칫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지요. 한살림님께서도 새해에 하시는 공부가 더욱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아, 죄송. 한살림님께서 후설이 아닌 데카르트의 [성찰]을 언급하셨군요. 이에 대한 논의들이 분분하지요? 저의 경우 [성찰]에 대한 앙리, 마리옹, 레비나스의 미묘한 해석의 차이가 흥미로왔습니다.
후설의 [논리연구]나 [데카르트적 성찰]을 읽고서 아이온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전에 [논리연구]도 [데카르트적 성찰]도 읽다 중단했습니다.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는 것도 버겁습니다. 정말로 제가 후설을 읽을 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짐작하면, 후설의 "초월적 환원"은 데카르트의 "의심"과 칸트의 "비판"의 전통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정말 추측이지만, 헤겔에서 철학하는 스타일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어쩌면 후설은 '헤겔 이전의 칸트로 돌아가자'는 모토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데카르트의 [성찰]에 대한 글을 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리연구]와 [성찰] 사이에 거의 30년이라는 시차가 있지요. 후설의 가장 철학적인 기여는 단연코 기존의 논리학과 전혀 다른 논리학 영역, 즉 새로운 진리 영역을 구축한 데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월적 감성론으로부터 시작하는 논리학이야말로 20세기 모든 현상학자들이 공유하는 진리론이고 19세기 헤겔 현상학과 구분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분히 셸링의 자연철학-초월철학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후설의 차이점은 후설은 이를 탄탄한 현상학적 방식으로 엄밀하게 기술해 나갔다는데 있다고 봅니다. 은퇴 후 [성찰]과 비슷한 시기에 집필했던 한 논리학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지요.
"우리가 좋아하건 안 하건 간에 (어떤 편견 때문에) 그것이 이상하게 들리건 않건 이것(나는 존재한다)은 내가 용감히 맞서야 할, 그리고 철학자로서 내가 잠시도 시선을 딴 데로 돌려서도 안 될 근원사실인 것이다. 철학적인 초심자에게 있어서 이것은 유아론이나 심지어는 심리주의, 상대주의의 유령이 출몰하는 어두운 구석일 수 있다. 진정한 철학자라면 이로부터 도망가는 대신에 오히려 이 어두운 구석을 밝히려 할 것이다." ([형식논리와 초월논리], 95절). 이 논리학서에 후설의 철학적 소임이 잘 드러나 있다고 봅니다. 머지 않아 그가 말하는 초월적 논리에 대해서 하나씩 풀어나갈 생각인데, 한살림님의 라캉 독해를 곁들이면
꽤나 생산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후설의 1920년과 1926년 사이(그의 나이 예순 둘 이후)의 강의를 번역한 [Analysis concerning Passive and Active Synthesis: Lectures on transcendental Logic](Kluwer, 2001)를 찾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주로 후설전집 11권을 번역한 것인데 그의 전기와 후기를 동시에 아우르기에 가장 좋은 새로운 논리학 저서입니다. 저는 이러한 초월적 논리학을 매개로 후설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후기 하이데거와 [Broken Hegemonies]의 라이너 슈어만을 다소 호의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침 후설의 1924년 윤리학 강의도 곁들여 지금까지 우리에게 소개된 공동체주의와는
다른 현상학적 공동체주의를 거론해 볼 생각입니다. 최근 대학원 정치철학 수업 말미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대항적 담론으로서 현재 유럽에서 논의되고 있는 공산주의 이념을 소개한 적이 있지요. 그 가운데 유용한 통찰로 랑시에르의 "집단지성"에 관한 생각을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나름대로 쓸만한 정치이론은 그래도 후설, 하이데거, 레비나스, 아렌트, 메를로-퐁티, 푸코, 아감벤 류의 현상학적 정치철학과 라캉, 바디우, 지젝 등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적 정치철학 간의 생산적인 대화를 통해서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만... 한살림님께서도 은연중에 이러한 대화의 가능성을 마음에 두고 계신 거지요?^^
'초월적' 또는 '초월론적' 가운데 어떤 번역이 더 나은가요? 초월'론'이라는 단어에서 '론'이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지만 칸트의 용어들의 영어 번역인 'transcendent'와 'transcendental'은 다르지 않습니까? 아무튼 그런 거창한 그렇지만 매우 정당한 '대화의 가능성'은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푸코의 역사관을 조금 사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하면서 다시 바디우의 '보편주의'를 검토할 작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이온님이 지적하신 현상학과 정신분석학을 함께 보고 있기는 하네요^^ 요즘 조선후기 천주교의 도입과 전파를 공부하면서 푸코적인 역사의 주제로 알맞다는
후설 저작의 주요 번역자 이종훈 교수는 'transcendental'을 '선험적'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apriori'도 선험적으로 번역해야 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보이구요. 이남인 교수 등 다른 여러분들은 "초월론적"으로 일관되게 옮기는데 저도 그렇게 사용하다 요즘은 원래 뜻대로 '초월적'으로 번역합니다. 대신 'transcendent'는 '초재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편이지요. 어디선가 '초월론적'이라는 번역어가 일본식이라는 얘기를 얼핏 들었던 같기도 합니다. 후설의 경우 "more than"의 의미와 '탈자적' 또는 '가능적' 의미 등이 강한 쪽이라서 '초월적'도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아 보입니다. 저도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를 피할 수 있
있는 질적 연구방법론을 개발하여 경험연구에 활용해 보기도 하였습지요. 결국 시각과 시각, 일상지식과 전문지식, 참여자와 관찰자 등의 입장을 대립시켜 구체적 보편을 확보해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후설은 이를 초월적 감성에서 초월적 논리로의 상승작용을 밟아가야 한다고 보는 쪽이지요. 즉 시공을 본래적으로 구성해 가는 초월적 감성 과정이 칸트식의 직관형식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특히 후설은 보편주의로 가는 과정의 구체(concretion)을 "함께 자란다"(grow together)라는 라틴어의 본래적인 의미로 해석합니다.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혁명적인 작품으로 보입니다. [광기의 역사] 축약본이 영어로 번역될 때 현상학과 실존주의와 관련된 시리즈의 하나라고 했으니 이 책의 방법은 분명 현상학적일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고 있기는 하지만, 계속하여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떠오릅니다. 거듭 읽어야 할 책임에 틀림없습니다. 후설 '논리학'에 대한 아이온님의 글을 고대합니다. 그리고 제게 권해주신 책은 구해서 읽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푸코의 [광기의 역사] 전체가 최근에 영어로 번역되었다지요? 한글로도 한참 전에 완역되어 나왔습니다. 저도 그의 계보학적 역사관을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결국 사회과학적 진리의 보편성은 역사적 단절과 지속의 맥락에서 확보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지적처럼 초월철학을 데카르트적 입장과 칸트적 입장을 대비시키는 것이 가장 근원적인 의미에서 시차적 관점일 것입니다. 후설 역시 이런 측면에서 데카르트적인 길과 비데카르적인 길 사이의 시차적 관점을 가장 절묘하게 활용하고 있는 유물론적 보편주의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적에 돌아가신 후설 현상학자 한전숙 교수의 가장 중요한 현상학
기여 역시 이 양자가 후설 현상학에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한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많은 독일철학자들은 초월철학의 데카르트적인 길을 일종의 퇴행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후설의 논리학은 이래저래 보다 자주 논의할 생각입니다. 문제는 그 과정이 너무 지겨워 보여서 고원에서 제대로 논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푸코의 정치이론, 특히 그의 담론이나 장치에 관한 통찰에는 후기 하이데거의 '시대성' 분석이나 'Gestell'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구성주의적 입장 역시 현상학과 무관하지 않지요. 그의 학문적 계보를 보더라도 푸코가 메를로-퐁티의 강의를 직접 들었을 뿐만 아니라
칸트/후설을 비판적으로 전유하기 위해 후기 하이데거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푸코의 고유한 정치사상을 현상학적으로 환원하여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라이너 슈어만의 독창적인 하이데거 해석의 배후에 푸코가 있습니다. 슈어만과 푸코, (앞에서 언급한) 아감벤과 슈어만 역시 사상적으로 아주 각별한 사이였지요.
아이온/ 산술철학과 논리연구에 대해 연구하는 영미철학자들이 누구인지 혹시 알수 있는지요? Ortiz Hill, Haddock정도밖에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네요. 요새 공부가 뜸했더니...
저는 개인적으로 후설의 논리학 특히 전현상학기의 논리학에 대한 이해가 철저한 혼돈 속에서 해결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직관주의, 형식주의, 논리주의, 심리주의의 여러 테제들 중에서 어떤 입장을 취애햐 하는지 자신 스스로도 감을 잡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결국 말년에 가서야 현상학을 통해서, 특히 명증을 기반으로 한 초월논리학으로 자신의 논리학을 설명해내려하지만, 과연 현상학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철학자들이 후설의 논리학을 혁신적이고,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일 지는 의문입니다.
후설 스스로 그런 혼돈에 빠지게 된 것은, 그가 논리학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리학이 한편으로는 다른 학문들에 규범을 제시하는 규범학이어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지녀야 하고, 논리적 대상들이 한편으로는 보편적이고 이념적이어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이 논리적 대상을 파악해야 하고...논리적 대상들을 파악하는 작용은 그런데 심리적인 것이면서도, 그 파악 자체는 심리적인 불확실성을 벗어난 확실성을 가져야 하고....후설 스스로 너무 많은 의미를 논리학에 부여해서 실패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문득 듭니다.
영미권에서 후설의 산술철학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현상학자들로 갤리포니아 주립대학의 Richard Tieszen(그의 주요 저서는 Mathematical Intuition: Phenomenology and Mathematical Knowledge, Kluwer, 1989), USC의 Dallas Willard(주요 저서: Logic and the Ontology of Knowledge, Ohio, 1984), I. Miller(Numbers in Absence and Presence, Nijhoff, 1982), Robert Tragesser(Phenomenology and Logic, Cornell, 1977; Husserl and Realism in Logic and Mathematics, Ohio, 1984), Dieter Lohmar(Phenomenology of Mathematics, Kluwer, 1989)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더 저명한 철학자들로 Thomas Seebohm, Dagfinn Follesdal, J. N. Mohanty 등이 있습니다만 그들은 훨씬 광범위한 영역의 후설 현상학도 같이 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후설의 산술철학에 대한 저작은 대부분 독일어 전집(후설리아나 vols. 12와 21)으로 오래전에 출판되었습니다. 영어번역도 나와 있습지요. 그의 Collected Works X: Philosophy of Arithmetic, Kluwer, 2003과 V: Early Writings in the Philosophy of Logic and Mathematics, Kluwer, 1994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후설 당대에 그의 산술철학을 연구했던 유명한 제자들로 Oskar Becker, Aron Gurwitsch, Felix Kaufmann 등이 있습니다. 일정 부분 후설 현상학의 영향을 받은 대수학자로 Hermann Weyl과 Kurt Goedel, Per Martin-Loef그리고 Arend Heyting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헤르만 바일은 후설의 논리학에서 술어적 분석의 발달과정과 수학에서 그의 직관주의 그리고 수학적 인식에 대해 깊이 공감한 바 있습니다. 쿠르트 괴델은 후설의 수 현상학이 칸토르 집합이론의 발견에 따르는 가장 가능한 수학철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역시 후설의 수학 현상학과 논리주의, 형식주의, 기계주의, 직관주의, 집합이론 이슈들과의 관계를 규명해 내야 하는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 뿐이겠습니까? 새로운 형태의 플라톤주의, 경험주의, 명목론, 허구주의, 구조주의, 양식적 개념들과 후설 현상학의 관계 등도 해명되어야 할 부분들입니다. 논리학에 앞서 이 모든 부분들을 해명함으로써 niemand님 지적처럼 “후설의 논리학 특히 전현상학기의 논리학에 대한 이해가 철저한 혼돈 속에” 있었는지의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이 작업을 모두 해내려면 앞으로 한 세기는 더 걸리지 싶습니다. 물론 후설 스스로 자신의 이 엄청난 과제를 젊어서 다 해명했다고 누구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역시 자신이 제기한 모든 문제들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삼천갑자 동방삭처럼 오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실 후설이 자신의 현상학을 “노동철학”(Arbeitsphilosophie)으로 이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의 진리는 철저하게 나는 새를 겨냥하려는 것이었지 이미 박제화 된 새를 포획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후설의 현상학은 자신의 반세기 철학 생애를 거쳐 꾸준히 진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의 마지막 역작이자 20세기 강단철학으로 자신의 시대를 처음으로 신랄하게 분석한 [유럽 학문의 위기와 초월적 현상학]을 아주 맛깔스럽게 독해하는 방식은 그의 교수자격논문 [산술의 철학]의 관점으로 되돌아가서 읽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중후반기에 발전된 후설의 생활세계 개념이 그가 초기에 수를 논의하면서 다루었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좋은 예가 위에서 언급했던 [기하학의 기원]이라는 유명한 논문입니다.
잘 알다시피 후설은 진리영역에 있어서 심리주의를 배격합니다. 이는 단지 경험주의적 환원론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러한 환원론적 진리관이 일종의 상대주의로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상학적 진리가 극단적인 형태의 절대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지요. 후설은 수학적 진리마저 그것의 지평 내에서 진리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인식은 “adequacy and clarification”의 정도에 제한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대로 후설의 진리 개념은 “명증”(evidence)에 걸려 있습니다. 현재까지 서구철학사에서 후설만큼 ‘명증’에 대해서 철저히 분석해 낸 철학자가 없는 실정입니다. 이런 거야말로 인류의 자산이지 싶습니다.
이 명증의 문제를 정식화하는 것이 처음부터 현상학의 제1방법론적 원리가 되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후설은 모든 진리가 명증과 경험으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단호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철학의 초심자는 각각의 사물들과 사태들이 있는 그대로 현전하는 경험과 명증으로부터 도출하지 않은 어떤 판단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은 명증의 단계를 밟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 철학이 "엄밀한 학"(a rigorous science)이 되기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명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쪽이 후설의 입장입니다.
이 험난한 과정이 어떻게 한 순간 탄탄대로처럼 열리겠습니까? 후설의 현상학 도정에 수많은 회한과 반성이 있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06년 9월 25일(48세 무렵)에 적어놓은 비망록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산술철학]을 읽고 또 읽었다. 그 작업이 지금 내게 얼마나 미성숙하고, 얼마나 나이브하고 얼마나 유치하게 나타나는지! 그 책을 출판할 때 마음에 걸렸던 것이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 그 책이 출판되었을 때 나는 이미 그것을 뛰어넘었다. …… 나는 철학적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없고 철학적 능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도 없었던 신출내기였던 것이다.
수학적 사고의 논리, 특히 대수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몰두해 있으면서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생소한 영역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그 영역은 순수 논리적인 것의 세계와 실제 의식의 세계, 또는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현상학적인 것의 세계와 심리학적인 것의 세계였다. 이 영역들을 어찌 하나로 묶어나가야 할지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상호연계지어 내재적인 통일을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표상과 판단의 본질, 관계이론 등과 관련하여, 다른 한편으로, 수학과 논리의 형식주의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내 머리를 쥐어짰다.”(CW V, 490f.).
후설에게 있어서 전통적인 철학의 예증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가능한 길은 엄밀하게 보는(seeing; noein)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명증한 통찰이 일련의 논증과정을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과학이나 철학 그 어느 쪽도 진리의 논증과정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명증적인 통찰들(the evident insights)이 방법론적인 절차들을 철학적으로 이해가능하도록 조명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모든 인식이 준용하고 있는 지각이 인간 지각이나 직관의 자연적인 혜택은 아니라는 것이 후설의 주장입니다.
후설의 초월적 논리학에 따르면 명증은 반드시 사안의 고유한 절차들을 통해서 확보되어야 하고 그 자체의 검증방식들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명증을 체험(Erlebnis), 즉 진리의 체험으로 분석해 나갑니다. 하지만 그 체험이 곧 특정한 층위의 지향작용일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 부응하는 유형의 대상과 객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진리의 경험, 즉 명증과 상관있는 객관성이란 명징하게(evidently) 지각되고, 기억되거나 판단되는 무엇인 반면 명증 그 자체는 어떤 의미(sense)도 띠지 않습니다. 대상을 지향하고 있는 어떤 의식작용들이 존재하긴 해도 명증 경험이 특수한 지향적 지위를 갖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후설은 어떤 신비적인 지식의 기원도 용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증과 적정한(adequate) 정도의 명증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전자는 필연성의 명증인 반면에 후자는 어떤 대상이 완결되는 데 필요한 가능한 모든 작용(acts)을 위해 기능하는 명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완결된 지식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수많은 작용들을 필요로 하고 그 적정한 정도가 완벽에 이르렀을 때 후설은 이를 이념적인 것(an ideal)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증의 적정성/부적정성/명석성의 '정도'(degree)일 것입니다.
물론 후설의 직관주의가 전통적인 직관주의와 전혀 별개일 수는 없지만 그는 자신의 시대에서 흔히 발견된 직관주의의 심리주의적, 주관주의적, 유아론적 위험을 충분히 감지하였고 이러한 어두운 코너에 불을 밝히는 것을 자신의 철학적 소명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후설의 초월적 현상학은 칸트의 인식비판의 경로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후설은 이러한 비판을 근대 수학과 근대 수학적 인식으로 끌어왔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요컨대 후설은 명증에 대한 유형과 정도에 따라서 인간의 인식에 대한 한계를 충분히 고려하였고 초월적 감성론(수동적 종합과 본래적인 구성영역)을 자신의 초월적 논리 과정으로 포괄함으로써 우리 일상생활에 적용가능하고 감성영역을 기술할 수 있는 논리개념으로 정치화하고 그 지평을 최대한 확장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논의는 너무 복잡해서 여기서 다룰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모든 진리가 그 지평 안에서 진리라는 것입니다. 후설이 자신의 명증적인 진리 개념을 위한 현상학적 방법에서 비어있는 지향(signifying intentions)과 직관적 충족(anschauliche Erfuellung)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도 이 때문임을 알 수 있죠.
어떤 대상을 지향한다는 것이 곧 그것을 아는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다만 대상을 지시하고 있는 지향은 대상이 “주어진(given)” 것을 정당화하는 의식작용일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직관은 지향을 채우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하지만 어떤 대상을 한 번의 직관으로 그것이 모두 특징지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직관은 다만 거기에 상응하는 의미지향에 기대어 현상학적으로 결정될 수 있을 뿐입니다. 결국 어떤 대상에 대한 명증에 여러 층위의 정도와 유형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현상학적 명증 개념은 직관된 진리의 확실성을 보장하는 개념이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방법론적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후설의 명증 개념은 많은 학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단숨에 절대적 진리를 확보할 수 있는 신비적인 장치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학에 새로운 철학을 정초하고자 하는 후설의 현상학이 어떤 점에서 여전히 혼란스럽고 무리인지(non-sensical) niemand님의 고견을 기대하겠습니다.
아이온/ "후설의 현상학이 어떤 점에서 여전히 혼란스럽고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미천하지만, 후설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후설 현상학에 대한 아이온 님의 설명이 어느정도의 깊이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놀랍습니다. 특히 초기의 후설의 논리학에 대해 이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은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저의 문제제기를 요약하자면, 후설 스스로가 전 현상학기에 논리학에 대한 이해에서 혼란에 빠지는데, 그 이유가 후설 스스로 논리학에 대한 여러 상반된 입장들을 때로는 동시에 옹호하고자 하기 때문이고, 그러한 혼란이 논리연구 1권인 서설에서는 순수논리학이라는 형식적 규범학으로
논리학을 축소시켜 이해하는 것으로 일시적으로 해소되었고, 현상학을 거쳐서야 자신의 논리학의 뼈대를 명증과 생활세계에 기반해서 성립시킬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현상학적 논리학, 즉 초월논리학이라는 후설의 주장이 과연 영미철학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를 고려해볼때, 제 생각에는 그건 쉽지 않다는 것이죠. 후설이 초기에 프레게와 논쟁을 벌이던 시기의 논의를 분석철학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하려는 사람들(예컨데 hill의 작업)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후기의 논리학을 분석철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역시나 후설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계셨군요. 영미분석철학과 유럽현상학이 같이 갈 수 없는 여러 한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후설 아르키프 소장 버넷 교수도 후설이 초월적 관념론으로 이행하는 것에 반대더군요. 캘리포니아 지역 현상학자들과 미 동부나 중부쪽 현상학자들 사이에도 커다란 간극이 있더군요. 초기 후설 사상이 제게도 쉽지 않습니다만 그가 제기했던 근본적인 질문은 후기에도 계속 유효하다고 보는 쪽입니다. 사실 후설의 많은 제자들이 초월적 전회 이전의 통찰들을 선호하는 것도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 21세기 현상학은 알량한 경계들을 과감히 허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