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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박괘(剝卦) ; 山地剝 | [24] 복괘(復卦) ; 地雷復 |
『역전(易傳)』에서 말했다. “복괘(復卦)는 <서괘전>에 ‘물건은 끝내 다할 수 없으니, 박(剝)이 위에서 궁극하면 아래로 돌아오므로 復卦로 받았다’고 하였다. 만물은 깎여서 사라질[剝盡] 리가 없다. 그러므로 박(剝)이 지극하면 복(復)이 오고, 음(陰)이 지극하면 양(陽)이 생긴다. 陽의 소멸이 위에서 지극하여 다시 아래에서 생겨남은 위에서 지극함에 아래로 돌아옴이니, 復卦가 이 때문에 剝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卦의 됨이 한 陽이 다섯 陰의 아래에 생기니, 陰이 지극함에 陽이 회복한 것이다. 10월[重地坤]에 陰의 성함이 이미 지극하였다가 冬至가 되면 한 陽이 다시 땅속에서 생기므로 복(復)이라 한 것이다. 양(陽)은 君子의 道이니, 陽의 사라짐이 지극하다가 다시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善)으로 돌아오는 뜻이 된다."
[傳] 復은 序卦에 物不可以終盡이니 剝이 窮上反下라 故受之以復이라하니라 物无剝盡之理라 故剝極則復來[一无來字]하고 陰極則陽生하나니 陽剝極於上而復生於下는 窮上而反下也니 復所以次剝也라 爲卦 一陽이 生於五陰之下하니 陰極而陽復也라 歲十月에 陰盛旣極이라가 冬至則一陽復生於地中이라 故爲復也라 陽은 君子之道니 陽消極而復反은 君子之道消極而復長也라 故爲反善之義니라
*—— [지뢰복(地雷 復)의 괘사(卦辭)] ——*
| 復, 亨. 出入无疾, 朋來无咎, 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 |
[24復] 부활하는 형국이다. 밝은 마음으로 나서야 한다. 드나듦에 병통이 없으면 벗이 와도 허물이 없다. 그 도리(道理)를 반복하면 7일이 되어 돌아오니 가는 바가 있으면 이롭다.
· ‘復, 亨’에서 ‘復’은 새로운 생명이 시작하거나 참다운 본성(本性)을 회복(回復)하는 상황이므로 마땅히 ‘밝은 마음’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亨’은 내면의 욕심을 지우고 착한 본성을 확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밝은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정성(精誠)’을 들여야 한다.『중용(中庸)』에서 말한다. … “정성스러우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정성스러워진다.”
* [중용 제21장] — 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 |
‘出入无疾’에서 ‘出入’은 사람이 음식물을 먹고 배설하는 일, 숨을 쉬는 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말하거나 행동하는 일 등을 말하는 것이니, 모두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출입(出入) 작용이다. 우리 몸의 생명력이 다시 살아나고 본성을 회복하는 상황에서 몸의 호흡이나 신진대사, 말하고 행동하는 마음의 작용이 건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朋來无咎’,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反復其道, 七日來復’은 ‘생명의 부활과 본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참다운 도리를 실천하되 반복해서 해야 하고, 그리하면 7일이 되어 회복하게 된다’는 뜻이다. ‘利有攸往’에서 ‘往’은 실행에 옮기는 것을 뜻한다. ‘往’의 주역 코드는 하괘인 진괘(震卦, ☳)이다.
* [강 설(講說)] ———
『주역강설』에서 말한다. “복괘(復卦)는 부활해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초구(初九)는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싹을 틔우고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위의 음(陰)들은 적극적으로 초구를 지원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밝은 마음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초구(初九)는 봄날에 트는 싹이다. 아무도 봄날에 트는 싹을 막을 수 없다. 이는 하늘의 뜻[道理]이다. 그래서 ‘나가고 들어와도 병통이 없다’고 한 것이다.”
“춘추시대의 혼란한 사회상은 위대한 공자(孔子)의 사상을 출현시킨 토양이다. 그것은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인력으로 막을 수 없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도 살아남는 것은 하늘의 뜻이기 때문이다. 혼란한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을 꽃피우는 일은 혼자의 힘으로 어렵다. 많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벗이 오면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이다. 복괘(復卦)에서 보면 초구(初九)가 성공적으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육이(六二)에서 상육(上六)에 이르는 윗사람이 와서 도와야 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은 끝없이 반복되고 이에 따라서 만물도 생(生)·장(長)·성(盛)·쇠(衰)를 반복하며, 인간의 사상도 발상(發想)-전개(展開)-전성(全盛)-쇠퇴(衰退)를 거듭한다. ‘복(復)’은 생명이 싹튼 복(復, 地雷)에서 출발하여, 사(師, 地水)-겸(謙, 地山)-예(豫, 雷地)-비(比, 水地)-박(剝, 山地)의 과정을 거쳐 일곱 번째로 다시 ‘복(復)’에 돌아오는 모습이다. 한 번 변하는 과정을 날[日]에 비유하자면 7일 만에 돌아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자연의 운행처럼 삶의 과정을 되풀이하다가 ‘7일이 되어 돌아와 부활한다’고 했다. (이기동)
復卦 | 師卦 | 謙卦 | 豫卦 | 比卦 | 剝卦 | 復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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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雷 復 | 地水 師 | 地山 謙 | 雷地 豫 | 水地 比 | 山地 剝 | 地雷 復 |
여기에서 ‘7’은 괘의 여섯 효(爻)가 한 번 거친 뒤에 새로이 시작되는 수(數)이므로 반복되는 어떤 변화에서 한 사이클이 지나 다시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것을 말한다. 날의 경우에는 하루가 지난 다음 날의 ‘새벽’에 해당하고, 달의 경우에는 한 달이 지난 다음 달의 ‘초하루’에 해당하며, 한 해의 경우에는 한 해가 지나고 이듬해가 시작되는 ‘동짓달’을 말한다.
복(復), 즉 다시 돌아온 뒤에는 이를 잘 기르기 위해 노력(努力)을 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가는 바가 있으면 이롭다’고 했다. 옛날의 왕이, 양(陽)이 싹트는 동짓날에 관문을 닫아서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하고 제후들도 사방을 돌아다니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양(陽)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었다. — 이상『주역강설』
* [“反復其道, 七日來復”에 대한『역전』의 풀이]—양(陽)의 사라짐이 7일만에 돌아오는…
정이천의『역전』에서 ‘그 도(道)를 반복하여 7일이 되어 돌아와 부활한다(反復其道, 七日來復)’는 구절에 대하여, “소장(消長)의 도(道)가 반복하여 번갈아 이름을 말하였으니, 양(陽)의 사라짐이 7일에 이르러 와서 회복하는 것이다. 구괘(姤卦, 天風姤)는 양(陽)이 처음 사라지는 것이니 일곱 번 변하여 복괘(復卦)를 이루므로 7일이라 말하였으니, 일곱 번 바뀜을 이른 것이다.(謂消長之道 反復迭至 陽之消 至七日而來復 垢陽之始消也 七變而成復 故云七日 謂七更也)”
여기에서 말하는 ‘陽之始消也 七變而成復’을 자세히 풀이 하면 다음과 같다. 주역에서, 음력 4월은 순양(純陽)의 건괘(乾卦)이다. 5월의 하지(夏至)가 되면 음(陰) 하나가 생겨 구괘(姤卦, 天風)가 되며, 6월에는 음이 두 개가 되어 둔괘(遯卦, 天山), 7월에는 세 개의 음이 되어 비괘(否卦, 天地), 8월에는 음이 네 개가 되어 관괘(觀卦, 風地), 9월에는 다섯 개의 음이 되어 박괘(剝卦, 山地), 10월에는 순음의 곤괘(坤卦, 重地)가 되었다가, 11월 동지(冬至)가 되면 다시 양(陽) 하나가 생겨 복괘(復卦, 地雷)가 된다. 동지(冬至)는 봄의 시작점이다. 하지(夏至)의 구괘(姤卦)와 동지(冬至)의 복괘(復卦)는 서로 착괘(錯卦)이다.
음력 4월 | 음력 5월 | 음력 6월 | 음력 7월 | 음력 8월 | 음력 9월 | 음력 10월 | 음력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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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괘(乾卦) | 구괘(姤卦) | 둔괘(遯卦) | 비괘(否卦) | 관괘(觀卦) | 박괘(剝卦) | 곤괘(坤卦) | 복괘(復卦) |
☞ [주역(周易)의 삶]— 복괘(復卦)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① 새롭게 시작하는 상황에서는 항상 ‘밝은 마음’으로 하라 ← [復, 亨]
② 말과 행동에 허물이 없으면 어떤 상황이라도 문제가 없다 ← [出入无疾, 朋來无咎]
③ 정도(程道)가 지나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 [反復其道, 七日來復]
④ 회복의 상황에서 실행(實行)에 옮겨야 한다. ← [利有攸往]
*—— [지뢰복(地雷 復)의 단전(彖傳)] ——*
[24復] 彖曰, “復, 亨” 剛反, 動而以順行,
是以 “出入无疾, 朋來无咎” “反復其道, 七日來復” 天行也.
“利有攸往” 剛長也. 復, 其見天地之心乎?
단에서 말했다. “돌아와야 하는 형국에서 밝은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은 굳센 것이 돌아와 움직이면서 순한 마음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출입하는 것에 걱정거리가 생기지 않고 벗이 오면 허물이 없는 것이다. 그 도(道)를 반복하여 7일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하늘의 운행이다. 가는 바가 있으면 이롭다는 것은 굳센 것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만물이 돌아오는 것에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
* [강 설(講說)] ———
‘굳센 것이 돌아왔다’는 것은 음(陰)들 속에서, 다시 생성(生成)하는 강력한 에너지인 초구(初九)를 두고 하는 말이다. 괘의 성격으로 보면, 하괘는 움직이는 진괘(震卦, ☳)이고 상괘는 순하게 따르는 곤괘(坤卦, ☷)이므로 ‘움직이면서 순한 마음으로 행한다’고 했다. 봄이 오면, 죽은 듯이 보이는 나뭇가지에서 움이 돋아난다. 이 작은 움직임을 보면 만물을 살리려는 천지(天地)의 작용을 읽을 수 있다.『중용(中庸)』에 이르기를 ‘숨겨진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미미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莫顯乎隱 莫顯乎微)’고 했다.
그리고 ‘출입하는 것에 걱정거리가 생기지 않고 벗이 오면 허물이 없으며, 그 도(道)를 반복하여 7일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부활하는 것은 천지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 [지뢰복(地雷 復)의 상전(象傳)] ——*
[24復] 象曰, 雷在地中, 復, 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
상(象)에서 말했다. “우레가 땅 속에 있는 것이 복(復)이다. 선왕이 이 괘의 이치를 살펴 지일(至日)에 관문을 닫아 상인이나 여행객이 길에 다니지 않도록 하며 제후들도 사방을 살피지 아니한다.”
· ‘先王以至日閉關’(선왕이지일폐관)에서 ‘至日’은 ‘동지’나 ‘하지’의 뜻. 여기서는 ‘동지’이다.
· ‘關’ 즉 ‘關門’의 주역 코드는 ‘간괘[☶]’인데 하괘[震卦, ☳]를 뒤집어 보면 ‘간괘’가 된다. 그러므로 진괘(震卦)를 뒤집는다는 것은 ‘문을 닫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后不省方’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며 ‘조용하게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한다.
* [강 설(講說)] ———
복괘(復卦)의 상(象)으로 보면 우레[雷, ☳]가 땅[地, ☷] 속에 있는 모습이다. 이는 생명의 움직임이 밖으로 나오기 전에 땅속에 있는 것을 말한 것이다. 땅 속의 생명(生命)은 싹을 틔우기 위해 열심히 움직여야 하지만 지상의 존재[陰]들은 이를 조심스럽게 보호해야 한다. 이 이치를 아는 지상의 지도자들은 지하의 생명이 다치지 않도록 지극히 조심한다. 그래서 양(陽)이 싹트는 동짓날에는 관문(關門)을 닫아서 통행을 금지하고, 제후(諸侯)들도 조용하게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는 양(陽)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다.
*—— [지뢰복(地雷 復)의 효사(爻辭)] ——*
‘上六, 迷復, 凶, 有災眚.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 君凶, 至于十年不克征’ '六五, 敦復, 无悔 ‘六四, 中行獨復.’ ‘六三, 頻復, 厲无咎.’ ‘六二, 休復, 吉. ‘初九, 不遠復, 无祗悔, 元吉.’ |
* [복괘(復卦) 초구(初九)의 효사] ————
[24復] 初九, 不遠復, 无祗悔, 元吉.
象曰, “不遠之復” 以脩身也.
초구(初九)는 멀리 가지 않고 회복하게 되니 후회에 이르지 않으니 크게 길하다.
상에서 말했다. “멀리 가지 않고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은 수신(修身)을 했기 때문이다.”
· ‘无祗悔’(무지회)에서 ‘祗’(지)는 ‘공경하다’. 여기서는 ‘至’와 통용된다. ‘이르다’는 뜻.
· ‘不遠之復’에서 ‘之’는 어떤 낱말의 수식어가 두 음절 이상일 경우 그 수식어와 낱말 사이에 들어가는 꾸미는 역할을 한다. 우리말의 관형형 어미 ‘~ㄴ, 은(는)’이나, 관형격 조사 ‘~의’의 의미이다. ‘不遠之復’은 ‘머지않아 회복될 수 있다’는 것으로 풀면 된다.
· ‘元吉’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① ‘크게 길하다’ ② ‘크게 하면 길하다’가 그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貞吉’이 있는데 이는 ‘바르게 하면 길하다’로 해석한다.
* [강 설(講說)] ———
초구(初九)는 부활(復活)하는 상황에서 생명(生命) 그 자체이다. 그것도 양(陽)의 자리에서 시작하는 굳센 생명력이다. 그래서 ‘머지않아 곧 회복된다’고 한 것이다. 비록 여린 생명이 다시 잉태되고 있지만 그 생명력(生命力)이 굳센 것이니, 크게 길한 것이다.
『주역강설』에서 말한다. 초구(初九)는 추운 겨울을 지내고 초봄을 맞이하려는 순간이고, 오랜 혼란의 시기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질서의 시대가 도래 하려는 찰나이다. 역사는 사계절이 순환하듯 그렇게 순환한다. 일정 기간의 혼란을 겪고 나면 안정의 시기를 맞이하고, 안정이 지속되면 다시 혼란에 빠진다. 말하자면 일치일란(一治一亂)이 반복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① 혼란의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가버려서 돌아오지 못하고 멸망해 버리는 역사도 있고, ② 혼란의 방향으로 한참 나아간 뒤에 돌아오는 역사도 있으며, ③ 약간 갔다가 금방 되돌아오는 역사도 있다. ③의 경우와 같이,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는 경우는 최선의 방향에 가까운 순탄한 역사이므로 크게 길(吉)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방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경우라면 국민의 정치적 수준이 높아야 하고 개인의 경우라면 인격과 교양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수신(修身)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공자(孔子)는 그 수신(修身)의 전형적인 예로 안자(顔子)를 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공자는 안자의 수신(修身)을 ‘不遷怒 不貳過’로 표현했다.『논어(論語)』<옹야편>에 나온다.
『역전』에서 말했다. “복(復)은 陽이 돌아와서 회복함이니, 陽은 君子의 道이므로 복(復)은 善으로 돌아오는 뜻이 된다. 초구(初九)는 剛陽이 와서 괘의 처음에 자리하였으니, 돌아오기를 가장 먼저 한 자이다. 이는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온 것이다. 잃은 뒤에 돌아옴이 있는 것이니 잃지 않았다면 무슨 돌아옴이 있겠는가. 오직 잃기를 멀리 하지 않고 돌아오면 뉘우침에 이르지 않으니, 이는 크게 선(善)하여 길한 것이다.”
[傳] 復者는 陽反來復也니 陽은 君子之道라 故復爲反善之義라 初는 剛陽來復하여 處卦之初하니 復之最先者也니 是不遠而復也라 失而後有復이니 不失則何復之有리오 唯失之不遠而復이면 則不至於悔니 大善而吉也라.
* [복괘(復卦) 육이(六二)의 효사] ————
[24復] 六二, 休復, 吉.
象曰, “休復之吉” 以下仁也.
육이(六二)는 돌아와 회복(回復)하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면 길하다.
상에서 말했다. “회복하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 길한 것은 인자(仁者)에게 낮추기 때문이다.”
· ‘休復’(휴복)에서 ‘休’(휴)는 여기에서는 ‘아름답게 여기다’는 뜻이다.
· ‘休復之吉’에서 ‘之’는 ‘주격조사’, ‘회복하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 길하다.’
* [강 설(講說)] ———
육이(六二)는 새로운 생명(生命)이 싹터 오는 초구(初九)와 가장 가까이에 있다. 그러므로 가장 친한 이웃[親比]인 초구(初九)의 새로운 생명이 잘 자라도록 도와주고 부드러운 모성(母性)으로 기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육이(六二)는 괘의 위상이 중정(中正)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시의(時宜)에 맞고 또한 바른 것이다. 그러므로 길한 것이다.
『주역강설』에서 말했다. “육이(六二)는 실무책임자이다. 그런데 윗사람들은 새로 신생(新生)의 초구(初九)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초구가 미워하고, 오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전체의 흐름에서 보면 초구(初九)의 돌아옴은 전체의 부활(復活)이다. 그러므로 초구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전체의 생명이 자라지 못한다. 그러므로 전체의 입장을 생각하는 군자(君子)는 초구(初九)의 돌아옴을 아름답게 생각해야 한다.”
“… 인(仁)은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마음의 본질(本質)을 말한다. 마음의 본질은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동일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지니고 있는 하나의 본성(本性)이고 ‘남을 나처럼 여기는 마음’ 즉 ‘한마음’이다. 이 ‘한마음’은 육체의 생로병사와 무관한 불변적인 것이어서, 인(仁)에 입각한 삶은 생사(生死)를 초월한다. 따라서 인(仁)은 ‘영원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복숭아나 살구의 씨에는 그 과실의 영원한 생명이 내재해 있으므로, 그 씨를 도인(桃仁), 행인(杏仁)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 복괘(復卦)에서 보면 영원한 생명은 초구(初九)이다. 이는 바로 싹을 틔우고 있는 씨앗에 해당한다. 그래서 초구(初九)는 인(仁)에 해당한다. 육이(六二)가 초구의 부활을 아름답게 여기면 이 초구에게 자기를 낮추고 희생할 수 있다. 그래서 ‘인자(仁者)에게 낮춘다’고 했다.”
『역전』에서 말했다. “육이(六二)가 비록 陰爻이나 中正에 처하였고, 初九와 매우 가까이 있어 뜻이 陽을 따르니, 仁者에게 몸을 낮추는 것이니, 돌아와 回復하는 것을 잘 하는 자이다. 復은 禮에 돌아오는 것이니, 禮에 돌아오면 仁이 된다. 初陽이 돌아온 것은 仁이 돌아온 것인데, 六二가 初九에 가까이 있어 몸을 낮추기 때문에 아름답고 길한 것이다.
[傳] 二雖陰爻나 處中正而切比於初하여 志從於陽하니 能下仁也니 復之休美者也라 復者는 復於禮也니 復禮則爲仁이라 初陽復은 復於仁也어늘 二比而下之라 所以美而吉也라
* [복괘(復卦) 육삼(육三)의 효사] ————
[24復] 六三, 頻復, 厲无咎.
象曰, “頻復之厲” 義无咎也.
육삼(六三)은 돌아오는 것을 조급해 하면 자기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지만 허물은 없을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돌아오는 것을 조급해 하여 자깃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지만 의당 허물이 없다.”
· ‘頻復’(빈복)에서 ‘頻’(빈)은 ① ‘자주, 번번히, 급박하다, 왔다갔다 하다’ ‘조급해 하다’는 뜻이도 있지만, ② ‘矉(빈)’과 통용되어 ‘찡그리다’는 뜻도 있다.
* [강 설(講說)] ———
육삼(六三)은 초구(初九)와 같은 괘체에 있으나 그 자질이 부중·부정(不中不正)이고 하괘의 극에 처하여 불만(不滿)이 많다. 초구(初九)를 위하고자 하나 가운데 육이(六二)가 워낙 잘하기 때문에 육삼(六三)은 소외감을 느낀다. 그래서 ‘찡그리며 회복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지만 그 영향력이 미미하기 때문에 허물이 되지는 않는다.
『주역강설』에서 말했다. “육삼(六三)은 소외당하여 불만(不滿)이 많다. 현실의 불만 때문에 변화를 추구한다. 그래서 새로운 사상이 등장할 때 그것을 먼저 반긴다. 그러나 자기 분수를 모르고 지나치게 하면, 오히려 초구(初九)가 곤경에 빠지거나 또 잘못하여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윗사람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그래서 ‘자기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사상이 등장할 때 소외계층이 먼저 받아들이는 경향도 이러한 이치이다. 새로운 사상에 과잉으로 집착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그것이 자기 살을 깎아내는 아픔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새로운 사상을 보호하기 위한 데서 나타나는 사소한 부작용이다.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역전』에서 말했다. “육삼(六三)은 陰의 躁急함으로 動[震卦]의 極에 처하였으니, 돌아오기를 자주하여 견고히 하지 못하는 자이다. 돌아옴은 편안하고 견고함을 귀히 여기니, 자주 돌아왔다가 자주 잃는 것은 돌아옴을 편안히 여기지 못하는 것이다. 善으로 돌아왔다가 자주 잃는 것은 위태로운 방도이니 聖人이 遷善의 길을 열어놓아 돌아옴을 許與하고 자주 잃는 것을 위태롭게 여겼다. 그러므로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다’고 말씀하였으니, 자주 잃는다 하여 그 돌아옴을 경계할 수는 없는 것이다.”
[傳] 三以陰躁로 處動之極하니 復之頻數而不能固者也라 復貴安固하니 頻復頻失이면 不安於復也라 復善而屢失은 危之道也니 聖人開遷善之道하여 與其復而危其屢失이라 故云厲无咎라하니 不可以頻失而戒其復也라.
* [복괘(復卦) 육사(六四)의 효사] ————
[24復] 六四, 中行獨復.
象曰, “中行獨復” 以從道也.
육사(六四)는 시중(時中)을 행하여 돌아오는 것을 홀로 지킨다. 상에서 말했다. “시중(時中)을 행하여 돌아오는 것을 홀로 지키는 것은 도(道)를 따르는 것이다.”
* [강 설(講說)] ———
육사(六四)는 그 위상이 부중(不中)이나 음(陰)의 자리에 음(陰)이 왔으므로 정(正)이다. 그런데 육사는 전체 다섯 개의 음효(陰爻) 중에서 가장 중심(中心)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구심력(求心力)과 원심력(遠心力)의 균형을 이루는 자리에 있어서,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돌아와 회복할 수가 있다. 바로 스스로 상황에 맞게 처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하여 ‘중심에 맞게 행하여 홀로 회복하는 것(中行獨復)’은 도(道)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도(道)는『중용』에 말하는 ‘率性之謂道’의 ‘道’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군자(君子)가 득도(得道)를 하는 과정에는 3단계가 있다. 첫째 ‘복도(復道)의 단계’인데 참다운 길을 찾는 단계로 수도(修道)를 통하여 길을 회복(回復)하는 것이요 둘째 ‘복성(復性)의 단계’인데 사람이 하늘로부터 품부 받은 본성(本性)을 회복하는 것이며, 셋째 ‘복례(復禮)의 단계’로 참다운 본성을 회복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조화(調和)로운 삶을 이루는 단계이다.
『주역강설』에서 말했다. “육사(六四)는 초구(初九)와 상응관계에 있어 초구를 아끼고 사랑한다. 초구(初九)가 이 세상을 살리게 하는 새로운 사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므로 초구(初九)를 도와 성장시켜야 한다. … 그러나 현실은 녹녹치 않다. 기존의 사상이나 기득권자가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초구(初九)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면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기 쉽다. 그러므로 상황을 잘 판단하여 알맞은 때에 홀로 돌아와 초구(初九)의 부활을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시중(時中)이다. 그래서 ‘시중(時中)을 행하여 돌아오는 것을 홀로 지킨다’고 했다.”
『역전』에서 말했다. “육사(六四)가 群陰 가운데에서 行하나, 홀로 돌아와서 스스로 바름에 처하고 아래로 陽剛[초구]에 응하니, 그 뜻이 선하다고 이를 만하다. 길흉을 말하지 않은 것은 六四가 부드러움으로써 群陰의 사이에 처하고 正應인 初九가 심히 미약하여 서로 구원하지 못하니, 이룰 수 있는 이치가 없다. 그러므로 성인이 다만 홀로 돌아옴을 칭찬하고, 홀로 도를 따르다가 반드시 흉하게 됨을 말하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
[傳]…四行群陰之中而獨能復하여 自處於正하고 下應於陽剛하니 其志可謂善矣라 不言吉凶者는 蓋四以柔로 居群陰之間하고 初方甚微하여 不足以相援하니 无可濟之理라 故聖人이 但稱其能獨復이요 而不欲言其獨從道而必凶也라
* [복괘(復卦) 육오(육五)의 효사] ————
[24復] 六五, 敦復, 无悔.
象曰, “敦復 无悔”, 中以自考也.
육오(六五)는 돌아오는 것을 도탑게 여기면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돌아오는 것을 돈독하게 하면 후회함이 없는 것은 중심의 입장에서 스스로 살피기 때문이다.”
· ‘敦復’(돈복)에서 ‘敦’은 ‘돈독하다, 두텁게 하다’. ‘敦復’은 ‘돌아오는 것을 돈독히 하다’
· ‘中以自考也’에서 ‘以’의 목적어는 ‘中’인데 강조되어 앞으로 나갔다. ‘考’는 ‘살피다[察]’
* [강 설(講說)] ———
육오(六五)는 멀리 떨어져 돌아오기 어렵지만, 상괘의 중(中)으로서 돈독(敦篤)하게 하면 돌아올 수 있다. 그러므로 후회가 없다. 괘사에서 ‘다시 돌아오는데 7일 걸린다’고 말한 것은 육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중심(中心)으로서 스스로 살피게 되면 복성(復性)을 하는 것이다.
『주역강설』에서 말했다. “육오(六五)는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인이다. 가정으로 말하면 부모에 해당한다. 육오(六五)는 늦게 태어난 유일한 아들이 초구(初九)를 아끼고 전폭적인 사랑을 쏟는다. 그러나 범위를 넓혀 나라의 경우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육오(六五)는 대권을 쥐고 있은 통치자이지만, 그 속의 관료들은 타성에 젖어있다. 그렇다면 새로 나온 참신하고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을 키워야 미래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지도자는 드물다. 오히려 탄압하고 만다. 유대교의 사제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다. 오직 군자만이 새로운 사상의 출현을 도타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전체의 지도자인 육오(六五)가 참다운 지도자라면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의 방향이 정의의 방향으로 전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 초구(初九)를 돈독하게 지원하고 육성해야 한다. 나무의 생명을 확고하게 하기 위하여 뿌리를 북돋워 주어야 한다. 육오(六五)는 참다운 마음으로 돌아와 초구(初九)의 부활을 주도적으로 도와야 한다.”
『역전』에서 말했다. “육오(六五)는 中順한 德으로 君位에 처하여 善에 돌아오기를 敦篤하게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비록 본래 善하나 경계가 또한 그 안에 들어있다. 陽의 回復함이 미약할 때에 부드러움으로 존위에 거하고 아래에 다시 도와주는 이가 없어서 형통하여 길함을 이룰 수 없으니 뉘우침이 없을 뿐이다.”
[傳] 六五以中順之德으로 處君位하여 能敦篤於復善者也라 故无悔라 雖本善이나 戒亦在其中矣라 陽復方微之時에 以柔居尊하고 下復无助하여 未能致亨吉也니 能无悔而已라.
* [복괘(復卦) 상육(上六)의 효사] ————
[24復] 上六, 迷復, 凶, 有災眚.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 君凶, 至于十年不克征.
象曰, “迷復之凶” 反君道也.
상육(上六)은 돌아오는 것에 미혹(迷惑)되면 흉하다. 재앙(災殃)이 생겨 군대(軍隊)를 사용하면 결국 크게 패할 것이다. 나라의 경우라면 임금이 흉할 것이니 십 년에 이르러도 진압할 수 없을 것이다.
상(象)에서 말했다.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 혼미하면 흉한 것은 군도(君道)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 ‘迷復’(미복)에서 ‘迷’(미)는 ‘길을 잃고 헤매다, 혼미하다’
· ‘有災眚’(유재생)에서 ‘眚’(생)은 ‘재앙’. ‘災’는 天災이고 ‘眚’은 자신이 불러온 재앙이다.
· ‘至于十年不克征’에서 ‘克’(극)은 ‘能’과 같은 뜻이다. ‘征’(정)은 ‘진압하다’.
· ‘反君道也’에서 ‘反’은 ‘반(反)하다, 위배된다’는 뜻이다.
* [강 설(講說)] ———
상육(上六)은 음(陰)들의 극에 달하여 돌아오는 것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이니 흉하다. 돌아와 회복하기에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런 저런 재앙(災殃)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무력[軍隊]을 행사하여 억지로 돌이키고자 하면 반드시 크게 패할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부활하는 전체의 상황에서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천(逆天)이다. 그래서 나라로 말하면 임금이 흉하게 된다. 이는 가정으로 말하면 부모가 흉한 것이요, 자신으로 말하면 마음이 흉한 것이다.
‘십 년에 이르러도 진압할 수 없다’는 말은 참다운 본성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십년(十年)’은 2효에서부터 상효까지 음(陰)들이 쌓이는 다섯 단계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주역의 삼천양지(三天兩地)의 수(數)로 헤아리면 다섯 개의 음효(陰爻)는 수로 따지면 10이 된다.
『주역강설』에서 말했다. “상육(上六)은 보수파의 우두머리이다. 지금은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가 있다. 그리고 생각이 너무 보수적이어서 돌아와야 할 상황을 잘 간파하지 못한다. 그래서 ‘돌아오는 것에 대해 미혹(迷惑)된다’는 표현을 했다. 지나치게 멀어지면 젊은 세력들과 대립하게 된다. 대립이 격화되면 마찰이 생기는데, 이를 여기서는 ‘재앙(災殃)이 생긴다’고 한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 시대를 인도할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다. 그래서 ‘나라의 경우라면 임금이 흉할 것이니, 십년에 이르러도 진압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십년은 아주 오랜 시간을 의미한다. 군도(君道)는 임금의 자리에서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의 뜻을 대행하는 존재이다. 만일 백성의 뜻을 저버리고 탄압한다면 임금의 위치에 있어도 이미 임금이 아니다. 맹자(孟子)가 걸(桀)이나 주(紂)에 대해서 임금이라 칭하지 않고 필부(匹夫)라고 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군도(君道)를 지키지 못하는 임금은 물러나야 하며, 물러나지 않으면 혁명에 의해 물러나는 것이 역사의 과정이다. 그래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 혼미하면 흉한 것은 군도(君道)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상육(上六)에 처한 군자는 미혹하여 임금의 도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
『역전』에서 말했다. “상육(上六은 유약한 陰으로서 復卦의 마지막에 거하니 끝내 昏迷해서 돌아오지 못하는 자이니, 昏迷해서 돌아오지 못하면 凶함을 알 만하다. 災眚이 있다는 것은, 災는 天災이니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요, 眚은 자기의 허물이니 자기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이미 昏迷해서 善에 돌아오지 못하니, 자신에게 있어서 動함이 모두 過失이요, 災禍 또한 밖으로부터 이르니 이 또한 자기가 부른 것이다. 道에 昏迷하여 돌아오지 못함은 어느 곳에 시행해도 가한 것이 없으니, 이로써 軍을 출동하면 끝내 大敗가 있고, 이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君主가 凶하다. 10년이란 數의 마지막이니, 10년이 이르러도 가지 못한다는 것은 끝내 행하지 못함을 이르는 것이다. 이미 道에 昏迷하니, 어느 때에 행할 수 있겠는가.
[傳] 六以陰柔居復之終하니 終迷不復者也니 迷而不復이면 其凶可知라 有災眚은 災는 天災니 自外來요 眚은 己過니 由自作이라 旣迷不復善하니 在己則動皆過失이요 災禍亦自外而至니 蓋所招也라 迷道不復은 无施而可니 用以行師則終有大敗요 以之爲國則君之凶也라 十年者는 數之終이니 至於十年不克征은 謂終不能行이라 旣迷於道하니 何時而可行也리오
¶ [복습 정리] ☞ 주역(제26강) [24] 復卦 (地雷復)의 괘사와 효사
[24復] 復, 亨. 出入无疾, 朋來无咎,
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
‘上六, 迷復, 凶, 有災眚.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 君凶, 至于十年不克征’
‘六五, 敦復, 无悔.’
‘六四, 中行獨復.’
‘六三, 頻復, 厲无咎.’
‘六二, 休復, 吉.’
‘初九, 不遠復, 无祗悔, 元吉.’
♣ —— 주역(周易) [제17괘]에서 [제24괘]까지 내용의 요점정리 —— ♣
*—— 17隨 * 18蠱 * 19臨 * 20觀 * 21噬嗑 * 22賁 * 23剝 * 24復 ——*
서괘 | 괘명 | 괘상 | 괘사 및 상전 | 주역의 지혜 |
17 | 수 괘 澤雷隨 |
| ‘隨, 元亨, 利貞, 无咎.’ 象曰, 澤中有雷, 隨, 君子以 嚮晦入宴息 | 嚮晦 入宴息 |
18 | 고 괘 山風蠱 | | ‘蠱, 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 象曰, 山下有風, 蠱, 君子以 振民育德.’ | 振民育德 |
19 | 림 괘 地澤臨 | ‘臨, 元亨, 利貞, 至于八月有凶’ 象曰, 澤上有地, 臨, 君子以 敎思无窮, 容保民无疆 | 敎思无窮 容保民无疆 | |
20 | 관 괘 風地觀 | ‘觀, 盥而不薦, 有孚顒若' 象曰, 風行地上, 觀, 先王以 省方觀民設敎 | 省方 觀民設敎 | |
21 | 서합 괘 火雷噬嗑 | | ‘噬嗑, 亨, 利用獄 象曰, 雷電, 噬嗑, 先王以 明罰勑法 | 明罰勑法 |
22 | 비 괘 山火賁 |
| 賁, 亨, 小利有攸往 象曰, 山下有火, 賁, 君子以明庶政, 无敢折獄 | 明庶政 无敢折獄 |
23 | 박 괘 山地剝 |
| 剝, 不利有攸往 象曰, 山附於地, 剝, 上以厚下安宅 | 上以厚 下安宅 |
24 | 복 괘 地雷復 | | 復, 亨. 出入无疾, 朋來无咎, 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 象曰, 雷在地中, 復, 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 |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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