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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 |
[약 2천2백년전 삼한도]
기록으로 보나 유물들로 보나 삼한(마한 진한 변한)은 대강 위와 같은 위치에 있다.
마한 진한 변한 (버전2) <- 관련글
그런데 혹자는 왜 진한과 변한이 현 경상도 지역에 있었다고 하는가.
그것은 진한 변한에서 마한의 동쪽 지역으로 사람들이 이동해왔기 때문.
약 현대 기상학은 약 5~6천년 지구기온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차차 내려가서 현대에 이른다고 한다.
약 2천여년 전에도 지구기온은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추운 지역]인 진한과 변한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내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하겠다.
기록 등을 보면 2천여년전 고조선 마지막 단군께서 山으로 들어가신 후
고조선 시대는 막을 내린다.
그리하여 [고조선 연방]의 각 지역들이 독립적으로 나라를 운영하게 된다.
즉 급격한 변화의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중국 한나라가 군대를 움직이는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고
따라서 2천여년 전에 북쪽의 진한, 변한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따뜻한 남쪽 나라] 마한을 찾아서 이동했다 하겠다.
게다가 약 2천2백년전에 [서안(장안), 함양]에서 이동해온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원래 [진한]에서 이동해간 사람들이었는데
[서안(장안), 함양]에서 말하자면 [코리아타운]을 형성하며 살았던 사람들로 본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진한]이라 불렀다는 것.
[도제기마인물상 (국보 91호)]
(북경대 출판 중국 고대사 교학참고지도집상의 "진장성(秦長城)" - 송준희님 제공)
위 북경대 출판 지도에서도 보이듯이 진시황의 장성은 중국 북서쪽에 있다.
지금의 만리장성은 진시황보다 1천 수백년 후대인 명나라때 완성된 것.
그래서 진시황의 장성 쌓기에는 주로 장안과 함양을 포함한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징발되었을 것이고 당시 그 지역에 [진한]이라는 이름으로 [독립국] 또는 [자치주]였던 사람들이 그 징발을 피해서 조상들의 원 고향인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하겠다. -------------------------------------------
"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그곳의 노인들이 세대를 넘어 전하기를 '옛날 진역(秦役 : 만리장성 만들기에 동원 추정)을 피해 망명(亡命)하여 자연스레 차츰 한국(韓國)에 왔다.' 한다. 마한(馬韓)은 그 동쪽 땅을 떼어내 주었다."
[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 출처: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三國志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韓(辰韓))
(이 삼국지는 소설 삼국지가 아니라 역사책 삼국지. 소설삼국지는 이 역사책 삼국지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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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진한 변한 (버전2) <- 관련글
지금도 중국의 함양, 서안에는 위와 같은 엄청난 크기의 돌피라미드가 수두룩하다.
구글도 이것을 [피라미드]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중국당국은 [흙무덤]이라고 '이상한 우기기'를 계속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돌무덤]은 고대한국인들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중국당국은 동북꽁정 즉 '고구려, 고조선과 그 이전 한국고대사 납치'가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계속 [흙무덤]이라고 '이상한 우기기'를 계속할 것으로 본다.
고대한국 피라미드가 홍산, 서안(장안), 함양으로 전파되다. <- 관련글
가야, 신라는 이렇게 진한, 변한, 함양, 장안(서안)에서 이동해온 사람들이
평야지대가 많은 마한의 중심지인 [경기-충청-전라]로는 못가고
평야가 적은 [경상]으로 주로 갔던 것으로 본다.
삼국지가 "마한(馬韓)은 그 동쪽 땅을 떼어내 주었다."고 하고 있듯이.
( 마한(馬韓)은 진한, 변한을 남처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삼한이 [고조선연방]을 이루고 있던 한민족이었으므로.)
당시 경상도 지역에 살던 마한 사람들과
진한, 변한에서 이동해온 사람들이 만났고
이러저러한 과정을 통해서 가야, 신라로 통합되고 결국 신라로 통합된다.
마한은 고조선 연방의 일원이면서 동시에
마한 자체가 최소한 수십개 이상의 많은 작은 나라들로 이루어진 연방체였다.
즉 대단히 발전된 지방자치제였다 하겠다.
만장일치로 민의를 수렴하는 화백(和白)제도가 비단 신라만의 제도가 아니라
고조선연방의 모든 지역의 특징이라 하겠다.
화백(和白)이란 [백(白)의 화합(和)]이라 하겠는데
[백(白)]이라는 글자 자체가 고대한국인을 뜻하는 글자.
중국 사서들에도 고대한국인을 [백민(白民)] 즉 [백(白) 사람들]이라고 많이 표현하고
[백(白)의 고대 발음은 [브락]
한국인은 자신들의 마을을 [부락]이라 부른다.
목화도 고대한국에서 먼저 길렀다?! (버전 2) <- 관련글
화백(和白)은 후에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모두 그 전통이 나타난다.
신라의 화백은 유명하니 생략하고
고구려 수상 대대로(大對盧)는 국왕에게 임명된 것이 아니라 귀족들에 의해서 선출되었고
백제의 수상 상좌평을 투표로 선거했다는 정사암(政事巖)의 고사(故事)도 전해지고 있다.
다시 돌아가서 2천여년전
당시 경상도 지역에 살던 마한 사람들과
진한, 변한에서 이동해온 사람들이 현 경상도지역에 섞여살게 되었는데
즉 마한, 진한, 변한 사람들이 모두 섞여 살게 되니
아무래도 고구려, 백제보다 통합성이 약했을 것이고
그래서 오래도록 삼국 중에서 가장 약한 지역이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차차 통합되고 경상도 지역의 통합을 넘어서
[전체 삼한의 통일]의 뜻을 세웠다고 하겠다.
신라 문무왕 13년에 김유신이 79세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의 일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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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이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과인에게 경이 있음은 고기에게 물이 있음과 같은 일이다.
만일 피하지 못할 일이 생긴다면 백성들을 어떻게 하며, 사직을 어떻게 하여야 좋을까?”
(김)유신이 대답하였다.
“ ...
지금 삼한(三韓)이 한 집안이 되고(三韓爲一家) ,
비록 태평에는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저으기 편안하여졌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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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삼국사기에 보면 김유신은 자신의 평생 제1의 공을
[삼한(三韓)이 다시 한 집안이 된 것(三韓爲一家)]을 들고 있다.
하지만 발해(후고구려)가 건국되었으니 김유신 시대에 [삼한의 통일]이 된 것은 아니고
후에 신라가 발해의 유민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진정한 [삼한의 통일]이 되었다 하겠다.
삼국 중 가장 약했던 신라가 [삼한의 통일]을 한 큰 이유 중 하나는
먼저 경상도 지역에서 [부분적인 지역의 삼한의 통일]을 해 본 경험이 아닌가 한다.
삼국이 전쟁없는 평화통일은 못했지만
후에 신라와 발해가 합쳐지면서 [삼한의 통일]이 됐다 하겠는데
고구려, 백제도 억울할 것은 없다.
고구려는 후에 고려로 부활한다.
고구려는 사서에 그 국호가 고구려 보다 [고려]로 더 많이 나오는 등
고구려의 정식국호는 [고려]로 본다.
그래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도 스스로를 [고려]라 불렀다.
(후에 진한을 뜻하는 대진국으로 개칭)
[ 발해는 스스로를 고려(고구려)라 불렀다.] <- 관련글
후에 [태조왕건 고려]도 고구려의 부활을 뜻한다.
제1 고려 - 고구려
제2 고려 - 발해
제3 고려 - 태조왕건 고려
신라를 이어 고구려도 결국 삼국통일을 한 것.
백제도 억울할 것 없다는 이유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고자 한다.
그런데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이미 천년 이상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이 섞여져왔다.
대체로 주로 같은 한민족끼리 결혼을 하고,
주로 국내에서 이사도 많이 다니고 해서 (피난도 많이 가고)
이미 천년 이상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이 섞여져왔다.
한민족 중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피가 대체로 고루 안섞인 사람이 없다 하겠다.
성씨만 갖고도 모르는 것이
모계의 유전자가 반이 유전된다.
자신의 부계 모계를 쭈욱 살펴보면
한민족 중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피가 대체로 고루 안섞인 사람이 없다 하겠다.
한민족에게 고구려, 백제, 신라는 똑같이 중요하다.
지역감정 조장하는 자는 매국노다.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첫댓글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혜안에 늘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우선은, 빈한하여 도움이 되지 못함을 늘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후원계좌를 연 것은 속도를 좀 더 내보자는 것입니다. 전혀 부담 갖으실 필요 없으십니다.
땅의 주인은 수시로 바뀌지만 정신의 주인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항상 주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이 카페에 오신 분들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이 영원히 계승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홍익인간 이화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