伴侶動物
普林 이충호
흔히 伴侶者라 함은 인생을 평생 같이 할 소중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반려동물이라 함은 위에서 말한 소중한 사람에 버금가는 애완동물을 말
할 것이다.
그 반려동물로 우리의 삶의 주변에서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흔히 볼
수 있다.
주거 환경이 단독 주택이 대부분이었던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집에서 키우
던 개의 임무는 외부 침입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주 임무였고, 고양이의 경
우에는 쥐를 잡아 없애는 것에 국한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랬던 그 애완동물들이 사람들과 동거동숙을 하게 된 시점은 우리의 주거
문화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와 함께 우리 사회의
경제 발전의 신호탄이 되었던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이라고 이름 지어진
소가족 시대로 접어들면서 싹트기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또, 최근에는 적령기를 넘어선 젊은이들의 결혼기피(?)현상으로 인한 ‘고독
에 이르는 병’을 치유하는 수단으로도 애완동물을 반려자 삼아 동거의 대상
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애완동물을 일단 고양이를 제외한 개 쪽으로 봤을 때 큰 체구의 애완견
은 보기가 힘들다. 키우는 사람들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한 마리 정도
로 사육하는 일은 드문 것 같다. 아니 사육이란 표현이 잘못된 것 같다. 사
육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인데 말이다.
내가 잘고 있는 동네엔 地是堤라는 조그마한 방죽이 있다. 과거에는 그저
저수지에 불과했었고 그 뒤엔 수돗물 정수장으로 활용되다가 지금은 여러
가지로 투자를 하여 주민들의 휴식처로 충분하리 마큼 아름다운 생태공원
으로 단장이 되어 있다. 산책로도 예쁘게 꾸며저 있다.
그 지시제는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산책로로 당연히 애용되고 있는데 그
길에는 주민들과 함께 그 주민의 반려동물의 동행의 수가 갈수록 늘어 간
다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두어 달 전 까지만 해도 한 마리 정도를 끌고 다녔는데 요즈음은 2~3마리
는 보통이다.
끌고 다닌다는 개념은 잘못된 표현이고 데리고 다니는 것을 넘어 모시고
다닌다는 경지로 발전하고 있다. 목줄이라고 하는 개줄을 끌고 다니는 수
준을 벗어나 유모차에 편안히 모시고 다니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떤 아주머니는 강아지 한 마리는 품에 안고 나머지 개들은 줄에 매어
이리 저리 끌려 다니기도 한다.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고.... 그 때 아주머니
품에 안긴 강아지는 개줄에 매인 개들이 안쓰러운지 처다 보는 눈길이 처
량하기 조차하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반려동물의 오물처리를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반려동물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남으로써 그 수와 함께 종류도 다양하게
늘어나고 있음을 피부로 알 수 있을 정도다. 그에 따른 부대사업도 자연스
럽게 늘어나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그 사랑하는 반려동물들을 버리는 사람들의 행위도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그 유기동물을 다른 사람이 입양형식으로 키우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만든 최후 시설에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
리는 알고는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아니 우리집은 반려동물을 비롯한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마나님이 각종 새들을 50여 마리까지 키워 본 적은 있다. 밖에
서 일을 하다가 피곤해지면 집으로 전화를 할라치면 새들의 일제히 지저
귀는 소리가 황홀하기도 하여 그 날의 짜증을 해소하였던 적도 있었다.
서울에 살던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고양이를 키워 오다가 몇 년
전에 고령으로 죽었다. 아들은 그 유골을 앞세우고 와서 할머니 선영에 뿌
려두면 할머니도 심심치 않으실 것 같다고 하여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어머님은 당신 손자의 마음을 받아들이셨는지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으시다.
2021. 7.3
첫댓글 혹여 어머님 반응이 있으시면,
여기에도 좀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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