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미생각입니다. ^^;
이 글은 막써님의 '내 기억 속의 주체사상'이라는 글에 댓글로 올라간 글입니다만, 답답이님의 '전대협 비판' 글과 여타의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한꺼번에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 곳에도 다시 게시합니다.
▶ 관련칼럼 : 내 기억 속의 주체사상 (막써 / moveon21 / 2012년 5월 25일) 원문 보기
조금 엉뚱한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마태오 복음 10장 34절에서 36절까지의 말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언뜻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런 뜻 모를 말씀은 여전히 계속 이어집니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사실 이 구절은 신약 성경에서도 가장 난해(?)한 구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도대체 어째서 예수님께서 과거의 말씀과 모순이 되는 언급을 하신 것인지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설명해 놓은 어느 블로거의 포스팅은 참고삼아 링크 해두겠습니다만 굳이 그 부분을 꼭 읽어보시라고 강권하는 의미는 아니니 오해없으셨으면 합니다. ^^; (http://blog.daum.net/paulihchoi/179180)
뜬금없이 막써님의 말씀에 성경구절을 떠올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전에 답답이님께서 주셨던 전대협 게릴라 정치에 대한 비판 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당권파들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에 동의해서 모인 자발적 결사체가 아니라 학연,지연,혈연관계등으로 얽힌 사적인 집단이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적인 접촉을 통해 이너써클을 구성한 뒤, 노조, 운동가, 시민사회, 정파등과 연합해 조직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은 진보나 심지어 종북 엔엘에 대한 일반인의 선입견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바로 그렇습니다. 사적인 관계, 친밀한 관계 위에서 스킨십을 쌓아 조직을 형성하고 대오를 갖추는 수법, 이건 전대협-한총련-한대련-민노당으로 이어지는 조직 건설 및 운영 스킬에 해당하며 또 동시에 우리나라 정치판을 좀먹고 있는 '지역-조직' 기반의 정치자영업자 양성 시스템과도 정확히 궤를 같이 합니다.
따라서 이를 두고 아프로만님께서 대놓고 일갈하신 적이 있죠. '난닝구와 경기동부는 샴쌍둥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민주당 일각에서 당권파를 싸고 도는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귀결이 되는 것이죠.
결론은 무엇이냐? '사적관계, 스킨쉽'으로 만들어진 이너서클과 조직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종교'라는 이름을 갖고 있든 '주체사상-NL'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든, '경기동부'라는 이름을 갖고 있든 '난닝구'라는 이름을 갖고 있든 결국은 하나로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 필자 주. 그게 뭡니까? 바로 "우리가 남이가?"라는 심보입니다. 끼리끼리 서로 서로 도와가며,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패거리'를 형성합니다. 이 패거리에 해당되지 않는 자는 무조건 박멸의 대상이 됩니다.
최근에 공개된 노무현 녹취록에도 나오는 대목이죠? 산맥으로 연결되지 않은 '봉화산' 같은 존재,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 노무현이 죽은 건 바로 '패거리'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인 겁니다. 제가 말씀드렸죠? '남이 하나 내가 하나 불륜은 불륜! 이게 노무현 정신이라고요. 하지만 패거리에 들어가면 '남이 하면 불륜이지만 내 패거리는 로맨스'라고 감싸주는 것이 무척 당연한 일이 됩니다. 노무현은 이런 거 하지 말자. 기본으로 원칙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다가 결국 목숨까지 바친 겁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나라의 주류가 되어 있는 기독교에서 믿는다는 예수님은 바로 저 문제를 부정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이죠. 그러니 기독교가 개독 소리를 듣는 겁니다.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예수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무엇 때문에 나는 예수를 믿는지는 정확하게 모를 뿐더러 고민할 생각도 안한단 말이죠. 쯧쯧쯧~
그러므로 이걸 부숴야 진정한 평화가 온다고 하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죠. 노무현이 부수려고 했던 것도 정확히 이 지점이었고, 이 때문에 그는 좌,우 양쪽에서 그토록 모진 공격을 받다가 세상을 뜰 수 밖에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아프로만님도 지적하셨지만 그 많은 NL들이 결국은 '신상간증', '신앙간증'으로 빠지는 것이 '예수'에서 '수령님'으로 바뀐 종교와 무엇이 다르냐? 라고 했던 일갈도 곱씹어 볼만한 대목이지 싶습니다. 신앙이란 결국은 '체험'을 통해 '깨닫는' 것이거든요.
막써님의 좋은 글, 감사드리면서 혹시 막써님의 글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제 댓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고미생각 드림
첫댓글 선한 개인이 모인 집단이 왜 악행을 할 까?
http://cafe.daum.net/knowhowup/Dnqf/103
'이념' 운운하는 먹물들이 주로 빠지는 주특기가 오히려 '인간'이라는 [개인 영역] 입니다. 이거 완전히 삼천포로 도망가는 거죠.
이념? 이념 운운하는 것들 치고 [인간과 집단]의 '개념 구분' 제대로 하는 족속을 못 보았습니다. 이념 운운~ 하며 강조하는 것들이 종국에는 빠지는 것이 그래서 도덕 윤리 같은 [개인 품성론]입니다.
이러니,, 생산수단이라는 [물적토대]로 파악하는 '유물론'적 프롤레타리아 '계급론' 강조한다는 것들이 종국에는 [사상적 정신 무장] 이라는 '계몽적 유신론(?)'으로 빠지는 [자기모순]을 범하는 겁니다.
선한 개인이 모인 집단이 왜 악행을 할 까?
http://cafe.daum.net/knowhowup/Dnqf/103
[마르크스 계급 해방론?]을 쏙~빼다 밖은 '닮은 꼴' 이 그래서 [기독교적 구원믿음 신앙!] 입니다. 그러니 웃기고 자빠질 노릇인 거죠.
제가 그래서 '좌파'는 없고 '신파'만 있다고 하는 겁니다.
소위 좌파라는 이념가(?)들과 이념논쟁 실전에서 붙어 보면 - 이건 '좌파' 가 아니라 결국 '신파'가 나옵니다. (김상봉 교수, 김규항.. 등등)
실전에서 실제로 붙어보면, 이들은 처음에 이념 어쩌구 앵무새처럼 교과서 외운대로 나불거리지만, 막상 멍석 깔아주고 오냐~! 그래 이념으로 빡시게 붙어보자, 하면?
결국 나오는 '레파토리' 라는 게
- [노선투쟁]의 무용담
- 고난의 역경속에서 자기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하소연하는 [신상간증]
- 열사들의 [순교]를 자신의 [신상간증] 에 끌어다가 붙이면서
결국 '신파조'로 나옵니다 이거 뭐 '천편일률' 적인 [코스 메뉴]에요
이념? , 한 대목도 안 나옵니다. = 이거 완전히 교회 부흥회 [신앙간증] 그 장면 그대로 에요
그래서 결국 이렇게 끝장을 내죠 "야!~ 맑스 믿지 말고 교회 가서 예수 믿어라!~ 하는 짓이 딱 그 타입이다
아~ 정말루,,, 글을 새로 쓸 필요가 없어요.
자유게시판 사이트 보면, 허구헌날 도돌이 악보, 다람쥐 쳇바퀴, 했던 얘기 페이지 넘어가면 또 나오고,
걸었던 대문칼럼 필자만 다를 뿐 그 내용이 그내용 또 걸고 ,,
반복 정말 지겨워요~~ 그래서 막강한 검색 시스템- 카페 게시판이 좋아요
(책)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http://cafe.daum.net/knowhowup/Dnqf/101
종교와 철학의 차이는 고로 '논리영역' 에서는 저에게 차이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체험영역' 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체험영역에서 비로서 종교 와 철학은 분리됩니다.
종교는 체험으로 특화된 철학영역입니다
여기서 철학이 빠지면 그것은 신앙영역 입니다.
오로지 체험만 남는 것은 무속 입니다 = 샤먼 이지요
종교와 철학의 근본적인 영역차이는 고로 *거룩함 vs * 삿됨 입니다.
*거룩함 vs * 삿됨 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래서 결국 ==> '체험'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는 그래서 '체험' 입니다. 체험의 긍극적 경지가 그래서 '수행' 입니다.
댓글 내용과는 다소 엉뚱한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살짝 말씀드린다면.. ^^;;
요새는 바쁘고 해서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5년 전에 우연한 계기로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 크래프트 (이하 WOW)'를 배우게 되고 한동안 빠져 살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개의 MMORPG가 그렇지만 '개념'과 '센스'가 장착이 안되면 참 하기 힘든 것이
WOW와 같은 타입의 게임들이죠. 그래서 초반에는 무척 애도 많이 먹고 욕도 많이 먹었더랬지요.
그런데 게임을 플레이 하다가 친구가 조언 내지는 잔소리를 실컷 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재밌게도 그런 소리를 당장 들을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확~ 와닿지도 않고 이해도 안되더라는 말이죠.
그렇다 경험이 쌓이고 이것저것 하다보니 아~ 이게 이렇구나! 하고 느낌이 팍 오는 때가 생기더군요.
그때서야 친구에게 그 얘기를 하면 친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저를 보곤 했습니다.
"이 친구야, 그거 내가 몇번이고 강조한 얘기인데 그걸 이제서야 알아먹느냐고!!!"
머리 나빠서 게임 못하는 남자의 하소연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이렇게
제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안과 생각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고 공감하게 되는 포인트는
그 사람의 개인적인 역량, 경험 등등의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각성하고 발현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겠지요. '관성'에 익숙해져서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경우도
있을 터이지만 또 어떤 면으로 봐서는 자신의 삶에서 겪었던 경험의 틀에서 그것이
온전히 자기 것으로 와닿지 않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어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뭐 어쩌겠습니까? 타자 치는 것이 고문이신 아프로만님을 대신해서
타자치는 것이 세상의 가장 큰 낙이요 즐거움 중의 하나인 저 고미생각이 필요할 때마다
중요한 내용은 상황에 따라서 내용과 형식을 바꿔가면서 동어 반복 열심히 해아지요.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 곳의 가치를 알고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행여 우리가 사는 동안 그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후대 세대가 우연찮게 이 기록을 보고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고 열어가는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일테지요.
그것이 '기록과 역사'를 대하는 우리 노하우업의 자세라고 봅니다.
빨간 돼지님도 말씀하셨지만, 그러니 우리는 굳이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면서 자연스럽게 그것들이 주변에
알려지게 만들면 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욕심 부리지 않고
소박한 진보를 꿈꾸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일신우일신하자는
우리 노하우업의 정신, 초심을 잊지 않으면 우리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범죄집단에서 새 식구들을 받아들일 때 제일 먼저 행하는 절차가
손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하지요. 손을 더럽힌다는 사실 자체가
'한 배를 타는' 의식과 같은 것이고 '기왕 버린 몸'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니까요.
결국 세상사 모든 일이 결국 동물의 왕국이라고 하신
아프로만님의 말씀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들어맞는다고 봅니다.
'공범이 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예수와 노무현은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빨간돼지님의 한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되네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