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1월 중순이면 한국은 수능, 호주는 HSC를 본다. 가까이 지내는 가정의 아들이 HSC(한국의 수능시험) 끝냈다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3 가정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만큼 대학서열화가
심하지는 않지만 호주에서도 자녀 교육에 대한 열기는 만만치 않다. 수능을 끝낸 아이에게 “이제까지 네 평생에 제일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HSC 준비였다고 했다. 역시 시험은 예수도 떨게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예수도 광야에서 3년간 고된 수험생 생활을 했다지
않는가?
남의 땅에 살고 있는 동양인 이민자들로서는 공부로 승부를 보는 방법이 비교적 공정한 길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민자들은 유난히 자녀 교육에 올인을 할 수 밖에 없다.
한국에 비해서 평등한 교육을 받고 자라기 때문에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가 하는 것에는 한국에 비하여 부모의 영향이 더 크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10대가 되면 대화하기가 어렵다. 특히 사춘기 10대들은 "yes'. "no". "I
don"t know" 3 가지 말 밖 모를 때가 있다. 그래서 부모가
픽업을 해줄 때 외에는 대화를 할 기회가 없다.
한국은 입시제도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라 시끄럽다. 고교의 서열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안보 문제는 정치 하는 사람들만 관심을 가지면 되지만 교육 문제는 전 국민이 걸린 문제이다.
모두가 떼를 지어 몰려 가는 길에서 내 길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이런 흐름과 동떨어져 비주류의 길을 택한 대안교육이 관심이 컸다. 비주류의 길을 택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택하는 피라밋형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가겠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비주류의 길은 독립적인 길이다. 나는 본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올라갔다는 사람에게는 전혀 흥미가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지금은 감옥에서 수양중인 우병우가 생각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