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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4.대민(주일낮)
*충만한 교회(빌1:3-11)
교회는 교회로서 역할이 있습니다.
교회는 예배드리는 곳이고, 기도하는 곳이고, 순례자들, 심신이 고단한 사람들이 나와서 쉼을 얻고 안식을 얻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그렇게 여기지 않고 교회를 이용해서 무엇인가 나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세상이 할 수 없는 일을 교회만이 갖고 있습니다. 교회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교회의 여러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특별히 사회를 향하여 해야 하는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세상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사회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대한 권위를 인정할 때 비로소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힘이라는 것은 물리적이고 세속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권위에서 오는 그런 힘을 말합니다. 즉, 교회는 스스로 그런 힘을 갖고 있을 때 사회적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힘이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로서의 역할이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빌립보 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써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게도냐의 왕 빌립 2세가 자기의 이름을 따라 명명한 도시인데 주전 1세기 말엽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빌립보에는 제대한 로마 군인들이 정부로부터 땅을 분배받아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빌립보 시민들의 상당수는 로마의 시민권자들이었습니다. 빌립보는 유럽 전체에 세워진 마게도냐의 첫 번째 교회입니다. 마게도냐는 오늘날 그리스 전체 영토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북부 지역을 가리키는 사도 바울 당시의 이름이었습니다. 그곳의 빌립보 시에 교회를 세운 사람은 다름 아닌 사도 바울입니다.
본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는 의무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의무감 때문에,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났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그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간구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쓰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빌립보교회의 헌신과 사랑이었습니다. 사실 이때 빌립보 교회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외적으로는 불신자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내적으로는 분란이 있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로 나누어지려고 하였습니다. 외부에서 침투한 거짓 선생들이 현혹하여 분란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여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헌신과 사랑을 담아서 바울을 섬긴 것입니다.
고린도후서를 살펴보면 빌립보 교회의 상황은 극한 가난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가난한 중에서 기도와 물질로 넘치도록 참여하였습니다.(고후8:1-5) 그들은 힘대로 하였을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바울의 사역에 참여하였다고 바울은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회는 본보기가 되는 교회였습니다. 목회자의 목회 사역과 구제 사역과 선교 사역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역자 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워야 할 교회가 바로 이런 교회입니다.
빌립보교회 같이 모든 면에서 충만한 교회가 되기 위해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가 충만한 교회(3-5)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의 “첫날”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서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성도가 되었을 때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이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인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를 가리킵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시간적으로는 십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기간 동안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변함없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해왔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하여 간구할 때마다 기쁘고도 감사하였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수동적 믿음, 소극적 믿음이 아니라 능동적 믿음, 적극적 믿음의 주인들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복음을 위한 일”은 구체적으로는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위해서 빌립보 성도들이 물품을 마련해서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낸 것을 말합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떠나 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바울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날 때도 헌금을 모아 바울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가 데살로니가에 있었을 때도 사람을 보내 헌금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이 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도, 그들이 잊지 않고 얼마간의 헌금을 보내 온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으로 인하여 크게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성도들에게 전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복음을 위한 일은 복음전도자를 돕는 일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직접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복음을 전하는 자를 돕는 일도 복음을 위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란 모든 성도들을 말하지만 일명 복음을 전하는 자란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아니하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자를 말하며 그들을 일컬어 사역자라 합니다.
즉 목사나 전도사 그리고 선교사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들 사역자를 돕는 일이 복음을 위하는 일입니다.
목회자가 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복음을 위하는 일입니다.
목회자가 목회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복음을 위하는 일입니다.
히브리서 13장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지도자들에 대해 순종하고 복종할 것을 강조하는 것은 당시 배교의 위험과 이해 관계에 직면하여 지도자들을 잘 따르지 아니하고 대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성도들의 영적 생활과 행복을 위하여 날마다 깨어 있어 돌보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성도 공동체의 존경과 순종을 받을 만한 권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축복과 선물입니다. 참된 지도자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책임이행에 대한 답을 요구하실 때 응답해야만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어서 거짓 교사들과 같이 이상한 다른 가르침을 전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파하며 성도를 돌보고 양육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지도자들이 양떼들을 돌보기 위해서 경성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성도들의 불순종과 고집으로 인해서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근심스러운 일이 된다면 그 지도자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들에게도 전혀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보통 성도들은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신앙이 어느 때 까지 자라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도하는 목사에 대한 순종하고 복종하는 마음이 있을 때까지입니다. 특별히 교역자가 이단적 가르침으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 부리는 것 아니거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목회자가 즐겁게 목회 하도록 도움 주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혹 목회자의 마음이 상하면 상한 음식을 만들게 됩니다. 상한 음식을 성도들이 계속 먹게 되면 가정이 병들고, 교회가 병들게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항상 즐거워야 합니다. 특히 토요일은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기 때문에 교회일로 속상한 일이 생기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젖을 먹이는 산모가 상한 감정이나 원한을 품은 채 젖을 먹이면 열이면 열 젖을 먹은 아이는 체하거나 푸른색 변을 누게 됩니다. 동일 제품의 우유를 먹어도 엄마 품안에서 들려오는 행복한 박동소리를 들으며 먹는 아이와 씩씩거리며 한숨을 내쉬며 이를 가는 소리를 들으며 먹는 아이는 발육상태가 다릅니다. 그래서 임산부나 아이를 키우는 산모는 마음이 편해야 합니다.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인도자와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로서 목회자를 돕는 일은 여러 가지 일 수 있습니다.
미국 레이트사이드교회 존 던컨목사님은 지친 목회자를 돕는 방법 5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감사를 표시하는 것.(목사님 요즘, 목사님 설교에 얼마나 힘이 되는 지, 감사 . . ) 둘째. 잠시 교회를 떠나 조용히 쉴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좀 쉬었다 오세요) 셋째. 가끔씩 목회자 가족만이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할 것. 넷째. 가끔씩 목회자에게 ‘제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라고 용기를 줄 것. 다섯째. ‘제가 도와드릴 것이 없나요?’라고 물을 것.
목회자가 목회를 즐겁게 할 있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복음을 위한 일입니다. 복음을 위한 일에 충만한 교회로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2.은혜에 참여한 자가 충만한 교회(6-7)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그의 마음에 두면서, 늘 그들에게 깊이 감사하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과 같이, 바울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그들이 다 그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옥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황제 가이사와 로마의 원로원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관들은 복음을 공격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변명하며 변증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들 앞에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며 복음을 확정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 모든 일을 은혜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빌립보서1장29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도 은혜이지만, 고난도 역시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에는 상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은혜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의 감옥에서 기쁨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또한 바로 이 은혜 때문에, 분명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도 기쁨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을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바울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다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옥에 매여 있다고 해서, 그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바울의 일에 참여하다가 해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 바울과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늘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그들은 바울에게 계속 물질을 보내어 그의 복음 사역을 힘껏 도왔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과 함께 은혜에 참여한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빌립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정확한 시간표를 짜고 그대로 바울을 준비하시고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지금 우리의 삶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환경을 기뻐해야 합니다. 바로 그 자리가 나를 위해 준비하신 최선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죄악이 빠져나간 자리에 은혜를 더해야 합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해야 합니다. 은혜는 받을수록 좋습니다. 은혜는 쌓을수록 좋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요엘2장)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고후6:1-2)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잠3:34,벧전5:5) 하나님은 은혜와 영화를 주십니다(시84:11), 노아도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창6:8,24:12) 다윗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삼하2:6-7) 에수님도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사셨습니다.(눅2:40,요1:14) 예수님 시대 이후로는 더욱 은혜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은혜가 주로 하나님의 강복(降福)과 관계가 있었다면 신약시대의 은혜는 강복을 넘어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은혜를 입어 예수님을 잉태하였고(눅1:30), 예수님은 자랄 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였습니다.(눅2:40). 예수님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요1:14) 이후로 모든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옵니다. 요한복음1장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이 예수님을 전하니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고(사도행전4:33), 예수님을 전하는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으며(행6:8), 바울은 자기를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맡은 자로 여겼습니다.(롬1:5) 구원받을 사람은 은혜로 택함 받은 사람이며(롬11:5),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행15:11) 이 은혜는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지고 넘쳐 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고린도후서4:15) 그러므로 이제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빌1:7)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할 때만 아름답습니다.(히13:9)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축도문은 예외 없이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합니다. 죄악을 빼버린 자리에 은혜를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더하여 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은혜만을 전하고 은혜대로 살고 은혜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구하고 은혜가운데 거하는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복을 받습니다. 마음이 견고하고 담대해집니다. 날마다 감사가 넘쳐나고 삶에 생기가 넘쳐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과 화목하고 세상에서 화평케하는 자인 성도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까지도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내주셨는데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에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으로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교회에 나와 늘 좁니다. 교회만 나오면 졸고 잡니다. 목사님께서 답답해서 물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왜 그렇게 졸기만 하십니까?" 이 분이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주님 앞에 나오니 마음이 너무 평안해서 자꾸 잠이 옵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 마음이 평안해서 오는 잠이라면 그것도 좋은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 참된 평안과 만족, 그리고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은혜를 받아 세상을 향해 흩어집니다. 그리고는 세상 살다가 은혜가 떨어지면 다시 예수님 앞에 나아옵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기름을 많이 넣어도 한 번 넣은 것 가지고 언제까지 달릴 수는 없습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또 기름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번 은혜 받은 것으로 언제까지 살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은혜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적인 이 은총을 누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내 영혼이 살고, 내 생활이 윤택해지고, 문제가 해결되고, 내가 능력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은혜에 참여한 자가 충만한 교회가 되기 위해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3.의의 열매가 가득 충만한 교회(8-11)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성도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열매가 풍성한 사람입니다. 과일나무를 심은 농부를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농부가 과일나무를 심었으면 그 나무에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열매가 풍성하게 맺힐 때에 농부는 그 나무로 인해서 기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의롭게 하셨는데 우리를 통해서 의의 열매가 가득히 맺히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곧 행동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행동의 열매를 말합니다. 우리 혼자 맺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맺는 열매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성숙과 관계된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다시 말해서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만이 맺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로 하여금 의롭게 행동하고 의롭게 처신하도록 하는 열매입니다그래서 나로 하여금 바르게 살아가게 하시고 의롭게 살아가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로 하여금 어그러지고 거친 세대 가운데서도 온전하게 처신하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답게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은혜를 주실 것을 말합니다.
미국 조지아주의 한 시골 학교 교사인 마르다 베리는 부호인 헨리 포드씨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학교를 위하여 1000달러를 기증해주시면 좋은 피아노를 구입하여 어린이들을 교육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간곡한 사연이었습니다. 그런데 회답 속에는 한 개의 다임(Dime) 곧 10센트가 들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베리 선생은 그 회신을 보고 모욕감을 느끼거나 절망하지 않고 그 10센트로 땅콩을 사서 땅콩농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베리 선생은 해마다 작은 수확이라도 감사하면서 그 중의 일부를 포드씨에게 보냈습니다. 5년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피아노를 구입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감동한 포드씨는 처음에 부탁한 돈의 10배인 1만달러를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성실한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믿음은 생명의 씨입니다. 심고 인내하고 성실하 게 가꿀 때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약속과 보장이 있습니다. 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복은 항상 성실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의 씨앗을 뿌린 대로 그 열매를 거두는 생활'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 포도원에 주인이 일할 일꾼들을 불러 일하게 하는데,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씩을 주자 먼저 온 일꾼들이 주인을 원망했는데 그 교훈의 요점은 부름을 받은 종은 기쁨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즉,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열매를 맺어 기쁨에 참여해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나 지위를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조금도 섭섭해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기쁨의 열매들이 많이 있는 것을 인하여 기뻐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을 쌓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삶입니다. 즉 열매 맺는 삶입니다.
그런데 사실 열매를 맺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 일을 보아서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땅과 햇볕과 비와 물과 바람과 해충을 상대로 피땀을 흘리며 씨름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연은 정직합니다. 사람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농사를 지으면 자연은 풍성한 곡식과 과일을 그 대가로 내놓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하고 거짓되며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세상의 위협과 유혹을 이기며 믿음을 지킨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믿음을 따라 선한 삶을 살려 할 때 낙심하게 되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아무리 믿음과 선한 삶 속에 머물려 해도 돌아오는 결실이 없어 보일 때도 많습니다. 세상은 냉담하고 주위에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믿음을 잘 지키며 의의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함께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며 기도하였습니다.
의의 열매는 의로 이루어진 열매를 뜻합니다. 의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행위를 뜻합니다. 그러기에 이 의는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서 비롯된 무질서와 악한 행위에서는 생겨날 수 없습니다. 오직 화평 속에서만 맺어질 수 있는 열매입니다. 아고보서 3장18절에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서는 이 화평과 의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져야 합니다. 우리에겐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적인 지혜는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세상을 살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또 하나의 삶입니다. 그리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들을 많이 맺어 의의 열매가 가득 충만한 교회가 되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1.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가 충만한(3-5)
2.은혜에 참여한 자가 충만한(6-7)
3.의의 열매가 가득 충만한(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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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열심히 하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