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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의 산.들.강 스크랩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철원평야의 가을
칼빈코스트너 추천 0 조회 128 13.09.04 21: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철원평야의 가을

남한지역에선 가장 빠른 추수를 하는 철원평야엔 벌써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가을이 찾아 왔습니다.

아랫녘은 이제 막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려고 할텐데 철원은 추수가 시작되었습니다. 호남평야나 김해평야와는 한 달 이상 빠릅니다.

철원평야는 우리나라에서 5대평야에 들진 않지만 순위를 매긴다면 5번째쯤에 해당하는 평야지대입니다.

 

실제로 땅의 넓이로 하면 순위가

좀 올라가지만 지금은 비무장지대이고 그 위쪽은 북한지역인 평강고원은 너무 지대가 높아서 벼농사는 어렵기 때문에 농지면적 대비 평야

의 순서에서는 조금 뒤쳐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철원평야는 넓고 풍요롭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평야지대는 철원평야의 반이 조금 못되는

지역입니다. 전체를 소개하면 좋을텐데 유감스럽게도 항공사진이 아니면 그렇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정부에서 DMZ평화공원을 추진 하겠다고 하는데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이 철원평야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사진 중앙

상단부분 녹색지대는 비무장지대입니다. 멀리 저수지 둑처럼 보이는 곳은 평강고원인데 너무 넓어서 지평선이 마치 둑으로 보입니다.

 

철원평야는 전체적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입니다. 또한 철원평야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사진의 지대는

재송평이라 불리우는 곳 입니다. 재송평(裁松坪)은 소나무가 우거진 숲이라는 뜻이며 조선왕조실록
世宗 24년 3월 07일 에서 : 평강현 노벌에서 사냥 구경하고 율평에서 사냥하고 재송평에 머무르다 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 때도 논은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농업기술이 발달하지 않은데다 무엇보다 사진에 보이는 지역이 평야로 개발된건 1978년

인공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한탄강 물을 끌어다 쓰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대규모 농지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

시대에는 이 평야의 상당부분이 소나무가 우거진 숲이었다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사진은 한국전쟁 당시 이만여명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백마고지가 있는 지역으로 철원평야의 좌측 끝부분입니다.

사진의 중앙 야트막한 산위에 건물이 보이시죠? 그 산이 백마고지이며 지금은 비무장지대 안쪽이라 군인들의 감시초소인 GP입니다.

논 가운데 녹색의 숲은 참 평화로워 보이지만 무시무시한 지뢰지대입니다. 

 

 

 사진의 우측상단 뽀족한 보우리의 산은 고암산 일명 김일성고지라고 합니다. 김일성이 철원평야를 사수하기위해 백마고지 전투를

저 산위에서 직접 지휘하고도 배앗기자 삼일간을 울었다나 어쨌다나.. 산 아래 저수지는 산명호 저수지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사진은 참 더 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저수지 바로옆이 수십만발의 지뢰가 묻혀있는 비무장지대이며 지금도 남북이 팽팽하게

마주보고 있는 긴장감이 흐르는 곳 입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디엠지 평화공원이 아마도 성사된다면 바로 이 사진 컷에 자리 할 것입니다.

 

 이 부분은 후삼국시대 궁예가 태봉국을 건설하고 도읍으로 정했던 풍천원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 입니다. 전설은 무학대사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면 금방 망한다고 만류 했는데도 궁예는 이곳에 청주사람을 이주시켜 도읍을 정해서 결국 왕건에게 배신을 당해서 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구든 이 광경을 보고 이 곳에 도읍을 정하지 않겠는가 할 만큼 매력적인건 틀림없습니다.

 

 

 다른 사진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진의 녹색 숲은 거의 대부분이 전쟁 후 우리가 매설한 지뢰지대 입니다. 나중이 걱정됩니다...

 

 재송평야 지역에서 가장 넓은 지뢰지대가 있는 방어선 지대 입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지뢰가 매설된 지역은 과거 철원시가지 중심

지역으로 각종 관공서와 학교 공장 밀집주택들이 있던 곳 입니다. 불과 60여년 전 인데도 저 지뢰지대가 시가지 였다는 것이 안 믿깁니다.

 

사진 속 마을은 박정희대통령 시절에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민북마을로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입니다. 북쪽지역이 산이라서 마을이 한 눈에

관측되는 곳이라 출입이 제한된던 곳인데 지금은 자유롭습니다. 저 마을 앞으로 민간인이 월북하기도 했고 저 마을에 북한 병사가 넘어와서

배고픔으로 트럭 짐칸에서 잠들었다가 발견되기도 한 것 사건이 불과 몇년전에 일어나서 뉴스에 떠들썩하게 나왔던 곳 입니다.

 

사진의 좌측 상단부분의 산너머에 임진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철원에 도시가 형성된다면 이 지역이 될 가능성이 거의 확실시 되는

곳이며 지금은 이 사진 좌측 나무에 가려진 건물이 기차역으로 서울에서 전철타고 동두천역에서 환승하면 기차 타고 이 마을까지

올 수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으로는 철원의 또 다른 평야지대인 대야잔평을 소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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