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홍씨(南陽洪氏) 중랑장파(中郎將派) 영양군(英陽郡) 입향사적(入鄕事蹟)
남양홍씨(南陽洪氏) 인주도령중랑장파(麟州都領中郎將派)는 고려(高麗) 인종(仁宗) 때 평안북도(平安北道) 인주(麟州)에서 인주도령(麟州都領) 중랑장(中郎將派)을 지낸 2세(世) 홍후(洪厚 : 생몰 미상)를 중시조(中始祖)로 한다.
8세(世)인 봉절익량공신(奉節翊亮功臣) 대장군(大將軍)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사은사(謝恩使) 삼중대광(三重大匡) 인성군(麟成君) 강녕부원군(江寧府院君 : 정1품) 시호(諡號) 관정(寬靖)인 홍선(洪詵 : ? ~1318)이 경기도(京畿道)로 이주(移住)하여 장단(長湍)을 중심(中心)으로 세거(世居)하였고 23세(世)인 어모장군(禦侮將軍) 행(行)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홍이원(洪爾遠 : 1619~1697)이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맞아 정감록(鄭鑑錄)의 10승지(十勝地) 중의 하나인 경상북도(慶尙北道) 봉화군(奉化郡) 가림고개(쌍현)로 입향(入鄕)하므로서 후손(後孫)들이 봉화(奉化)와 춘양(春陽)으로 세거(世居)하게 된다.
봉화(奉化)에서 세거(世居)하던 남양홍씨(南陽洪氏)가 영양현(英陽縣)에 언제 입향(入鄕)했는지 족보(族譜)의 기록(記錄)상으로는 현재(現在) 명확(明確)하지 않다.
27세(世) 홍정주(洪廷疇 : 1689~? )는 안동권씨(安東權氏)와 혼인(婚姻)하여 혹은 그의 아들인 28세(世) 홍경이(洪敬伊 : 1707~? )가 안동권씨(安東權氏)와 혼인(婚姻)하며 진보현(眞寶縣)으로 입향(入鄕)했을 가능성(可能性)이 있다.
2가지 가능성(可能性)을 모두 고려(考慮)할 때 17세기(世紀) 초(初)에 입향(入鄕)한 것으로 추정(推定)되며 입향(入鄕)한 곳은 당시(當時) 진보현(眞寶縣) 동면(東面)에 속했던 현(現) 석보면(石保面) 신평리(新坪里)이다.
석보면(石保面) 신평리(新坪里)를 중심(中心)으로 세거(世居)하던 남양홍씨(南陽洪氏)는 30세(世)인 홍태시(洪太時 : 1814~1845)는 한양조씨(漢陽趙氏) 부인(夫人)을 맞아 입암면(立岩面)으로 입향(入鄕)했는데 당시의 행정구역(行政區域)으로 볼 때 영양군(英陽郡)의 입향조(入鄕祖)는 엄밀한 의미(意味)에서 홍태시(洪太時)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英山의 窓
(33세 홍순근 일부 정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