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것은
1. 어떤 관점에서 여호수아서를 해석해야 되며
2. 1장이 여호수아 전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3, 그리고 구약과 신약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누가 언약의 자손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
1. 여호수아는 앞에 있는 모세 오경의 예언의 성취이기에 먼저 모세 오경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약속했느냐를 조사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2. 약속의 주지하는 바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약속의 땅입니다.(그냥 '땅'이 아니라 약속이 유지되어야 될 땅입니다) 다른 하나는, 제대로 '하나님 백성되기'입니다.
3. 그렇지만 인간들은 인간들 나름대로 생존하기 ('살기')에 나서겠지요.
4. 인간들의 '살기'는 그 원칙과 법칙이 애굽에서 이미 다져진 것입니다.
5. 자 그러니까 여기에서 갈등이 자연 생겨나겠지요. 하나님의 지시 따라 율법책에 나오는 언약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나를 살리는 식으로 살 것인가에 관한 갈등입니다.
6. 내가 나를 살리는 식은 애굽 뿐만 아니라 이미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는 거주민들의 생활 태도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언약을 갖고 계시는 여호와라는 신에 의해 추방당할 될 입장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 본인부터 기존의 생활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가나안 땅 거주민 꼴이 납니다.
7. 여기에서 신명기 3:25-31과 관련지어야 합니다.
8. 만약 이 말씀에 위배했을 때의 참혹한 결과에 대해서는 레위기 26장에 잘 나와 있으니 참조를 해야 합니다.
9. 문제는 이제 본격적으로 본론에 근접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야 하느냐 마립니다.
10. 레위기 25:55에 나와 있는 말씀처럼 그들은 단지 여호와의 품꾼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도는 이미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 더 이상 아니다는 말입니다. 자기 운명에 대해서 왈가와부할 권리가 박탈 당한 자입니다. 그냥 부름받은 자입니다.
11. 품꾼이라면 다음과 같은 태도, 즉 "나는 내가 나를 살리는 식으로 살겠다. 하나님 말씀대로 잘 지켜서 그 지켜진 대가로 내가 사는 식으로 살겠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용납이 안됩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19:16-22에 나오는,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만남 현장이 적절하다고 여겨집니다.
12. 종이 된자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안에 들어 있는 원대한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밖으로 증거하기 위한 종이기에 자부심을 갖고 기쁨으로 황공스럽게 여기면서 사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13. 이렇게 되면 갓바위에 올라가서 비는 전래의 무속 신앙투의 신앙을 제거할 수 있는 설교가 됩니다. 즉 군대 가는 청년을 향해 좋은 데 배치 받기 위해 이 여호수아의 본문을 인용할 수는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도 '내가 나를 편하게 살게 만드는 종교적 술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죠. 이것은 하나님을 적절하게 이용해 먹자는 심보에 불과합니다.
14. 끝으로, 좋은 팔자이냐 나쁜 팔자이냐를 우리 선에서 이미 파악해서 예방하자는 식의 말씀 순종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린도전서 15:10)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은 그를 믿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오로지 예수님을 위해서이지 자신의 나은 미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고난도 받게 하려 함이라"(빌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