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Kurzban의 『Why everyone (else) is a hypocrite: evolution and the modular mind』 중 127~129쪽을 읽었기 때문에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Kurzban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이 글에서 그의 의견을 충실히 요약한 것도 아니다. Kurzban의 의견이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이 책은 자기 기만과 모듈성(modularity)을 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진화 심리학 입문서로도 아주 훌륭해 보인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는 수도 없이 많다. 이것은 이제 과학계의 상식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스트레스가 건강에 해로울까? 내가 이 문제에 대한 진화 심리학 문헌을 열심히 뒤져보지는 않았지만 다음과 같은 가설이 가망성 있다고 생각하는 진화 심리학자가 꽤 많을 것 같다:
다른 것들도 그렇듯이 건강 유지에도 자원이 필요하다. 면역 체계를 가동하기 위해서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비용이 든다.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이런 데에 들어가는 비용을 삭감해서 위기 대처를 위해 쓰는 것이 적응적일 것이다. 예컨대 맹수가 근처에 있다면 면역 체계나 상처 치유에 들어가는 비용을 삭감해서 감각을 예민하게 하고 근육 운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적응적일 것이다. 물론 이 때 소화 등에 쓰이는 비용도 삭감하는 것이 적응적일 것이다(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소화 불량도 생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 대처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여러 비용을 삭감하여 위기 대처 능력을 향상시키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스트레스 상황은 곧 위기 상황이다. 스트레스 상황에 많이 빠지게 된다면 건강 유지에 쓰이는 비용의 삭감이 많이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건강에 지장이 생긴다.
나는 이 가설을 입증하거나 반증하는 증거가 있는지도 열심히 뒤져보지 않았다. 이 가설의 검증 방법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검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통증의 강도는 몸이 얼마나 손상되었는지에도 달려 있지만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도 달려 있다. 맹수가 근처에 있는 큰 위기 상황에 빠질 때에는 상당히 큰 상처를 입고 있더라도 통증을 별로 또는 전혀 못 느낀다. 반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주 안전할 때에는 그런 큰 상처를 입었을 때 매우 큰 통증을 느낀다.
통증의 진화론적 기능 중 하나는 몸을 되도록 움직이지 않도록 해서 상처가 더 커지지 않게 하는 것 같다. 즉 안전한 상황에서 상처가 있는데도 다른 때처럼 열심히 움직였던 우리 조상에 비해 가만히 있었던 조상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상처가 생기면 통증을 느끼고, 통증을 느끼면 되도록 움직이지 않도록 인간이 진화한 것 같다. 위기 상황에서는 상처가 있다 하더라도 몸을 움직여서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따라서 통증이 위기 상황인지 여부에 따라, 위기의 정도에 따라 조절되도록 진화한 것 같다.
이런 문제가 단지 생리학적인 것만은 아니다. 심리학적인 것도 관련되어 있다. 맹수를 보고 공포에 빠지는 것은 심리학적 현상이다. 통증은 보통 생리학적 현상 때문에 발생하지만 그 자체는 심리학적 현상이다. 만약 위에서 제시한 가설들이 옳다면 공포는 면역이나 치유나 통증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런 영향은 적어도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대체로 적응적인 결과로 이어질 만한 것들일 것이다.
진화 심리학적으로 볼 때 심리 상태가 통증이나 건강 유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특정한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예컨대 안전하다고 느낄수록 건강에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위약 효과(placebo effect)를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면역, 치유, 통증 등에 영향을 끼치는 심리 기제들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더 정확히 알아낼 수 있을 때 “효과가 있는 약을 먹는다”라는 믿음이 건강이나 통증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 더 정확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믿음이 사람을 안심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이 위기를 덜 느낄수록 즉 안심할수록 면역이나 치유에 더 투자하도록 인간이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약을 먹어서 안심하게 됨으로써 건강에 좋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위약 효과는 특히 통증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 Kurzban가 이 현상에 대한 가설을 제시했는데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위약이 안심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면 Kurzban의 추측대로 통증을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통증을 심하게 만들 것 같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대체로 위기를 느낄 때 통증이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위약을 먹어서 안심하게 됨으로써 생리적으로 보았을 때 실제로 치유가 더 잘 일어나서 장기적으로 통증이 완화되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요인도 있겠지만 위약 효과로 인한 통증 완화는 좀 더 빠르고 일시적일 때 많은 것 같다. 따라서 또 다른 더 강력한 요인이 있을 것 같다.
이 글에서 내가 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위약 효과에 대한 구체적 가설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감각 기관 등을 통해 뇌로 들어오는 정보나 뇌의 정보 처리를 통해 만들어진 정보가 과거 우리 조상들이 진화했던 환경에서 대체로 적응적이었던 방향으로 면역, 치유, 통증 등에 영향을 끼치도록 인간이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설계”된 심리 기제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쳐서 위약 효과가 일어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착상이 위약 효과에 대한 설명을 찾아내는 데 매우 긴요하다고 믿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Kurzban의 생각에 동의한다.
이덕하
2013-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