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제72회 / 이명자)
오밤중에라도
일어나는 이 풍경은 앞으로 언제까지 이어질까.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가에 자리한 닥 서클은 또 언제쯤
지워질까.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상에 대해 모른다. 알려고
시도해 본 적도 없다. 언제서 부터인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길이 동시에 혹은 따로 따로 너무나 가까이
너무나 적절하게 나에게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퇴원한지 이제 사일 째다. 오후에도 한바탕 토해내고 몸부림치고, 그리고 지금 잠에서 깨어나
보니 강풍이 창문을 두들긴다. 밤 낮 없이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며칠째 휘몰아치고 쏟아지는 눈사태
이러다가는 며칠 남지 않은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재난의 날이 될 것 같다. 작년에도 제 작년에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 본적이 없다. 어딘가에서 엎어졌거나 기어 다니거나 했을 테니까. 그런 나를 찾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 어머니는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너를 찾지 않을 거야. 그러니 제발 좀
정신 차려라. 거짓말 하는 버릇만 없에면 너는 마약을 끊을 수 있다.” 그런데
어머니의 마지막은 지켜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어찌 되었던 간에 나는 하나뿐인 어머니의 아들이었고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어머니를 예전에 알아차렸기 때문에 어머니의 의견 따위 귀 등으로 흘려버리곤
했다. 어느 친구 하나는(마주친 적 한 번 없이 소문으로만
전해 들어도 친구는 친구이니까.) 집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마주쳐도 자신을 모른 척 하는 가족을 찾아가
행패를 부렸고(당연히 경찰에 연행되어 가족으로부터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다.) 그 후 완전 폐인이 되어 추우나 더우나 길거리에 등을 붙이고 살며 처치 곤란한 도로변의 가을 낙엽처럼 질척거리는
인생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나의
어머니는 그 많은 세월동안-나의 세월이지만-위로와 공갈과
협박과 눈물과 한숨을 내게 쏟았다. “차라리
우리 함께 죽어버리자. 마약에 찌든 너를 보고
있는 것보다 끝장을 내는 게 너에게나 나에게나 더 나을 성싶다.” 그러나
말 때문에 상처 따위 받지 않는 우리 중독자들의 장점 때문에(그래, 계속
웃겨라. 장점이라니.) 나는 어머니의 어떤 말에도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때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죽어요?’ 의문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도로 꿀꺽 삼켜버렸다. 왜
도로 꿀꺽 삼켜졌을까? 여기 그러나 또 하나마나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코케인이나 마리화나나 다른 잡다한 마약의 대용품으로 아주 값싸고 조그만 동네가게에서도 구하기 쉬운 깡통마약이라는 것이 중고등 학생으로부터
심지어는 옛날의 나처럼 어린나이의 아이들에게도 횡행했다. 암암리에
떠도는 이름은 캔(깡통)마약. 가스가 차있는 깡통이면 어느 것이나 사용할 수 있었다. 영어이름;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 졌지만, 우리는 Whip it 이라고 불렀다. 굳이 밝히자면 위핑 크림이(일종의 음식) 들어있는 깡통속의 가스다. 그 가스를 흡입하면 기분이 째지는 환상을 얻어 마시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널리고도 널린 게 깡통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체질이었다. 이상 정신이었다. 곧
죽어도 시시껄렁한 깡통마약은 흥미가 발동하지 않았다. 너무 쉽게 구할 수 있고 너무 흔하게 널려있고
너무 짜릿하지도 않고..... 이토록 손쉽게 갖가지 마약들이 세상에 난무하는데 다시 말해 세상이 만들어
내어놓았는데 내가 왜 어머니와 함께 죽어? 해서 의문을 도로 꿀꺽 삼켜버렸다. 그때, 그때 당시마다 귀에도 들어오지 않던 눈에도 보이지 않던 느낌들이
속속 되살아나는 것이 희한하다. 엊그제
뭔가의 이유를 들먹여 쥐도 새도 모르게 입안으로 쏟아 부은 마약과다복용으로 죽은 목숨이었던 지금 스물 두 살의 나이로 누군가에게도 있는 시절을
돌이켜보니 우리들 중독자들의 시절은 죽음 아니면 마약을 끊어라, 가 해답인 것 같다. 그래 끊어보자. 죽기 싫으니까.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보약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고 헛것이 자꾸 보이고 임신한 여자가 그렇다는데. 자꾸 메스껍고, 산란한 정신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해 어지럼증이 발발하고
그럴 바에야 끊자 끊어 나는 다시 각오를 다진다. 내가 자진해서 선택한 C.A.M.H (Center Addiction Mental House: 마약환자들의 갱생을 위해 열려있는 센터).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에도(겨울은 낮이 짧아서 오후 여섯시는 캄캄한
밤이다. 마약환자들의 미팅은 여섯시에 시작한다.), 어머니가
언제 운전을 배웠는지 경이롭다. 강풍과 눈보라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이곳, 저곳들에서는 강풍과 눈보라의 심각한 뒤끝이 눈에 띤다. 쌓인 눈
때문에 막힌 골목길을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험난한 눈길을 마다하지 않고 아버지와 번갈아 가며 나를 C.A.M.H 에
실어 나른다. 나는 영락없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순종하는 아들처럼 보인다. 어머니가
매우 기뻐한다. “너는
참 대단하다. 아무도 해내지 못하는 듣기에 구십 구구프로는 실패한다는 마약을 끊어가고 있으니 말이야. 조금만 참자 아주 조금만. 너의 이겨내고 있는 모습을 다른 중독자들이 본받아야 할 거야." 난 이제
아무 걱정이 없다. 아버지는 나에게 한없이 용기를 심어준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네가 이렇게 우뚝 선다는 것이 얼마나 장하냐. 나는 네가 일어설 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또 나는 샛길로 샌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변신의 귀재다. 내가 보기에 얼마 전에만 해도 아버지는 자신의 목안으로 치밀고 올라오는(내 눈에 환히 보였다. 아버지의 목울대가 무섭게 꿈틀댔으니까.) 나를 향한 불만을 즉각, 즉각 토해냈었고 어머니의 미간은 펴질
날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영 딴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에 나는 변신했고(두 분이 원하는 데로.) 열심히 아주, 아주 열심히 나를 응원하니까 말이지. 내가 변신했을까? 아직도 마리화나가 코케인이 그리워 미칠 지경인데. 나는 변신은커녕
미숙아인가? 계속 옆 눈질을 하며 해찰을 부리고 있으니. 여덟
명이 빙 둘러 앉아 있는 C.A.M.H의 한 룸에서 말이지. “나는
아버지 때문에..... 그러나 이제 나의 아버지를 이해해요. 그래서
크락을 끊는 중이지만......” 내 오른쪽
세 번째 남자의 말이다.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신상을 이야기 한다.
마약에 찌들었던 자신의 과거를 내보이는(자신의 과거를 털어내다 보면 미래가 보인다고(?) 하니.) 연습을 한다는 명목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차례를
기다려 한 사람 한 사람 어렵게 말하는 중이다. “나는
친구 때문에.....” “나는
싸가지 없는 내 동생 때문에.....” “나는
옆 집사람 때문에.....” 모두가
너 때문이라고 하면서도 마침표를 구가하지 않는다. 그때 나는 용감한 발언을 한다. 모두의 ‘때문에,’ 라는
것에 동의하며 계속 옆 눈질을 하고 있었던 탓이다. “온갖
나쁜 화학물질이 섞인 담배보다는 마리화나가 백번 낫다.” 드디어
나는 마침표를, 구가했다.
도움말을 귀담아들어 사는 것 답게 살아보려고 얌전하게 빙 둘러앉아 있는 여덟 명과 나이 지긋한 여자 카운슬러가, 모두 나를 쳐다본다. “마리화나는
순수결정체니까요.” 한 번
더 어이없는 결정 탄이 내 입에서 날아갔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옆 눈질한다. 자식들 좋아서 입이 헤벌어지는군.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에는 좀 뭣하지만 아무튼 입들은 헤 벌어졌고 눈들은 의아하다고들, 한다. 다 알고 있는 말이지만 그렇게 위험한 말을 여기서 왜 해? 라고. 자식들 능청스럽기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지나가고 드디어 카운슬러가 운을 뗀다. “그
아이디어 마리화나가 순수결정체라는 말은 어디서 난 것인가요?” 주위가
조용해진다. 나는 손가락하나 움직이지 않고 머릿속을 더듬는다. 어디서
얻은 아이디어더라? 대답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을 리 만무하다. 초침이
뚝딱뚝딱 흐른다. 나는 슬며시 돋아나는 신경질을 억누른다. 와-그리고 신경질을 참아냈다.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는 줄 착각.....” 나도, 마침표 없는 의견을 내놓았다. 어쩐지 내가 질 것 같아서 말이지.
져라, 져라 져야 이기는 거야. 어디선가 들은
말이 혼잡스런 내 기억 속에서 뛰쳐나왔다. 나는 곧바로 지고 들어간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마리화나는 누가 뭐래도 역시 마약이죠." 몸과
마음에 아픈 상처를 지닌 우리들에게..... 이것 봐 이것 보라니까.
몸과 마음에 아픈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라고? 너희들이? 너희들은
터무니없는 중독자들일 뿐이야. 터무니 있든 없든 나에게(우리들에게)구세주처럼 활약했던 마리화나가 나로 인하여 몹쓸 마약으로 변했다. “재민이의
말이 나는 옳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꼭 필요한
사람 암 환자나 지탱 할 수 없는 신체의 고통을 지닌 환자나 그런 곳에만 쓰이는 거 맞지 않을까요?” 카운슬러가
에둘러 물었다. 아무에게서도 이렇다, 저렇다할 반응은 나오지
않고 나는 의기소침해진다. 이 추운 겨울에 C.A.M.H에
올 때마다 시동도 켜지 않고(기름 값이 아까워 아끼느라고.
C.A.M.H의 여러 개로 나누어진 사무실 밖 현관문 안에 있는 작은 공간에는 누구라도 들어와 있을 수 있지만 파킹비가 아까워서라고
아버지 어머니가 말했으니까.) 한 시간을 오들오들 떨며 나를 기다려 주는 아버지 어머니가 오늘따라 안쓰럽다.
그러니 시키지도 않은 입방정 그만 떨고 한마디만 더하자. 아버지를
위하여 어머니를 위하여 우리들 때문에 밤에도 애쓰는 늙은 카운슬러를 위하여..... 이번에는 미래의
확실한 나의 모습을 말해주자. 나의
미래는 이제 정해졌으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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