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금요일 모임 정리
모인 사람: 김경해, 김귀숙, 박선미, 박범철, 강지영, 이우근, 제정희, 변지운, 장경희
모처럼 모였다. 새 식구가 생겼다. 박선미 선생님이 알초에서 함께 일하는 변지운, 장경희 선생님과 함께 오셨다. 장경희 선생님은 1학년 아이들과 지내는데 글쓰기 지도를 잘해보고 싶다고 하신다. 변지운 선생님은 과학 전담을 맡고 있는데도 글쓰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 신규 교사의 열정이 느껴졌다. 문득 두 해 전 말꽃타령 참사가 떠올랐다. 새 식구가 들어오는 날, 어려운 책을 공부를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우리를 떠나갔지. 우리 이러지 말자. 정신 바짝 차리고 즐겁게 공부하자. 우리 글쓰기 공부는 운동화 끈매기와 비슷하다. 학교 쳇바퀴를 별 생각 없이 그냥 돌다보면 어느 새 운동화 끈이 풀려 있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추어 다시 끈을 매고 걸어야한다. 금요일마다 우리 식구들이 모여 이야기 나누며 헐거워진 운동화 끈을 서로 매어주니 참 좋다. 발걸음이 가볍다.
박범철 선생님이 꼼꼼하게 정리한 글을 읽으며 아동시론 1장을 공부했다. 이오덕 선생님은 시 쓰기는 인간의 길이라 했다. 나아가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비판하며 아이가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낱낱이 밝혀놓았다.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을 재롱이나 피우고 유치한 애교를 떠는 모자란 아이로 얕잡아보는 태도에 분노한다. 이 책에 실린 엉터리 시들은 그런 어른들이 빚어낸 것이다. 박선미 선생님 아이들 시를 보라. ‘저 풀도 춥겠다.’ 룰 쓴 아이가 이명박보다 훌륭하지 않나. 세상을 보는 눈이 어떤 어른보다 맑고 깊다. 아직도 국어 교과서나 시집에 어린이 삶이 없는 시를 좋은 시라고 내놓고 있다. 선생들도 어릴 때 받은 시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악습이 되풀이될 수밖에. 김현경 선생님은 어릴 때 그런 동시를 잘 써서 상도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다. 장경희 선생님 반 아이는 시를 쓰고 나면 마음이 시원하다고 했다. 그래, 그 말이 시네. 5~60여년 지났지만 이렇게 마음 시원하게 시를 쓰는 아이보다는 틀에 갇혀 자기 표현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글쓰기를 지도하는 선생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저절로 드러난다.
나는 개성의 사멸이라는 말에 눈길이 간다. 자꾸 시를 어떤 틀에 아이들 시를 끼워 맞추는 것을 이오덕 선생님은 비판한다. 아이 백 명이 쓴 시는 모습이 저마다 달라야 하는데 백 가지모두 비슷하다. 게다가 ‘시’라는 틀은 아이들 생각을 옥죄기도 한다. 어제 우리 반에서 감자를 심고 나서 자기 마음이 어땠는지 몇 줄 적어보자고 했다. 어떤 아이가 “시로 써도 되요?” 하길래 편한 대로 하라고 했다. 그래서 쓴 시.
방울토마토와 감자, 지렁이 / 신윤채
방울토마토는
크면서 경쟁하겠다.
내가 더 높이 갈 거야!
감자는 이 땅은 전부 내 거야!
하며 경쟁하고
지렁이는
내가 흙 많이 먹을 거야!
하고 경쟁을 하겠다.
이게 시가 되든 안 되든 나는 ‘시’ 라는 틀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윤채 모습이 보였다. 틀이 생기면 생각이 틀에 갇힐 때가 많다. 오히려 ‘땀 흘리며 일하니 좋다, 빨리 자라라.’ 하고 짧게 몇 줄 쓴 글이 더 정직하고 자유롭지 않을까.
아이가 본 대로 들은 대로 말하게 하고 정직하게 쓰도록 하는 일은 아이를 하나의 인간으로 키워나가는 첫 걸음일 것이다. 아동시론 1장에서 이오덕 선생님 뜻이 가장 잘 드러난 말이다. 글을 읽으며 다시 마음에 새긴다.
‘마음이 정직하고 행동이 순진하고 용감하고 인간성이 풍부한 사람. 이것을 바탕으로 개성이 뚜렷한 창조적 인간을 원하고 있다. 비 개인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그 아름다움에 놀랄 줄 아는 사람, 발에 밟힌 한 마리 곤충을 마음 아파하고, 절름발이 거지 아이를 보고 비웃고 놀리고 돌질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불행한 사람이 있는 까닭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 괴로운 일을 하면서도 그냥 괴로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부모 형제와 남들과의 관계에서 그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 그리하여 생활을 창조해가는 사람.’
‘어린이에게 어린이 시를 찾아주자. 그들의 생활과 개성과 느낌과 사고와 언어를 찾아주자. 어린이가 시인의 흉내를 내는 원숭이의 상태에서 벗어나 참된 인간적인 삶을 되찾도록 길을 열어주자. 시와 인간의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