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다
지난주 설교 중에 ‘깨다’라는 동사가 나왔지요. 마침 저도 지난주 며칠 동안 이 단어를 생각할 기회가 두어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연의 일치라며 속으로 웃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이불을 박차고 나오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며칠 전에도 겨우 일어나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친구가 뭐 하냐고 카톡을 보냈더군요. “방금 일어났어”라고 답장을 보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다시 보냈습니다. “아니, 잠에서 깬 건 한참 전이지만, 직립보행한 게 방금 전이라는 소리야. ‘일어나다’라는 말을 잠에서 깨다와 직립보행하다로 나누어야겠다.” (사실 이런 구분은 중증 강박증이지요.) 낮이 짧아지니 온갖 피테쿠스를 모두 지나, 동지쯤이면 아메바가 되어버리겠다고 혼자 구시렁거렸습니다.
요즘 야생거위에 관한 책을 몇 권 읽는 중인데, 동물행동학과 심리학에서 지대한 발자취를 남긴 콘라트 로렌츠가 쓴 책(《야생거위와 보낸 일년》, 한문화, 2004)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웃픈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엄마 거위는 새끼가 알에서 깨면 껍데기를 얼른 얼른 던져 버린다고 합니다. 뾰족한 껍데기에 새끼가 찔릴까봐 하는 본능적 행동이라지요. 그런데 로렌츠 아저씨가 어느 날 목격한 일인데, 엄마 거위가 이렇게 껍데기를 버리다가 아직 새끼가 들어 있는 껍데기를 던져버리는 바람에 새끼가 물에 풍덩 빠졌다고 합니다. 알에서 깨자마자 물벼락을 맞은 아기 거위를 로렌츠 아저씨가 물론 구하기는 했겠지요. 교각살우(矯角殺牛)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에 해당하는 서양 속담에 “목욕물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린다”는 말이 있는데, 비슷한 상황이 정말 자연계에도 있더군요. 그래서 시쳇말로 정말 '깨는' 일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살다 보면 고만고만한 작은 고민을 겪는 게 당연하겠지요. 저의 작은 고민은 다른 사람들의 큰 고민, 진짜 염려 앞에서 그저 부끄럽기만 합니다. 신앙의 잠을 너무 오래 자고 있어요. 언제쯤 깰까요. 이러다가 영혼이 영원히 잠들까봐 걱정스럽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불쌍히 여기셔서 깨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