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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분이 다음카페에 올린 -한소리국악원 - 의 글 펌
한소리 국악원이 창립 36주년을 맞았다. 1980년 광주의 탱크로 모두들 움츠러들었던 때지만 국립국악원의 30대 청년 조성래 선생님은 이 땅에서 천년을 이어온 우리 소리를 들려주었고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소리를 들려주길 원했다.
그래서 신당동에 작은 공간이 마련되었고 한소리국악원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소리에 목마른 사람들이 전국각지에서 찾아와 신당동의 공간을 발디딜 틈도 없이 채웠고 문밖 계단에까지 늘어서서 조성래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94년까지는 한소리회라고 하였으나 이후에 사당동으로 이사를 하며 한소리국악원으로 발전되었다. 초등학생부터 70대 어르신까지 80,000여명이 한소리국악원에서 우리소리를 듣고 배웠다. 국악계의 중견 연주가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국악입문을 하였다.
나는 1986년 겨울 한소리회 대금반 8기 강습을 수료하고 오디션까지 거치고 한소리회 정회원이 되었다. 당시 조성래 선생님의 대금소리를 들으면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그 소리에 취하여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한소리국악원을 맴돌고 있다. 삶이 나의 머리를 뽀개는듯하여도 사당동 한소리 국악원의 허름한 건물 입구에서 5층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면 머리는 맑아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다음은 한소리국악원 카페에 올라온 36년 역사 소개글이다. 한소리국악원 36년의 역사
-「한소리회」는 지난 80년 9월 창립한 이래 “국악을 국민의 음악으로” 란 기치를 내걸고 지난 36년간 단소를 비롯한 국악기 대중강습을 통하여 80,000여명의 아마추어 인구를 배출한 국내 최대의 단체이다. 90년대 당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대금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1990년 5월 한소리회 건너편에 별도로「대금정악 전수소」열고 5년간 4,000여명의 대금 인구를 길러내었다.
- 1982년 보급용 플라스틱 단소와 대금, 2004년 소금을 국악계 최초로 개발하여 각급 학교에 널리 보급함으로서 국악인구의 저변확대와 대중화를 위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 80년도 부터 신문지상에「한소리회」를 중심으로 단소강습을 통한 국악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1984년∼1985년도부터 서울 각 교육구청별로 국악시범학교가 생겨나 정목, 혜화, 신남성, 상계 초등학교등 10여개 학교 전교생에 P단소 보급 및 강사 파견. 이를 계기로 초등학교 5, 6학년 교과서에 단소가 들어감으로 전국 어느 문방구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국민의 악기가 되었다.
- 국악계 최초로 국악악보(정간보)를 활자화 시킴(조선일보 1982, 4, 17) - 국악계 최초로 정간보에 쉬운 동요를 도입하여 국악교육을 활성화 시킴. (초보자 단소·대금교본 1982 4) ※ 1994년 4월. 국악의 해를 맞이하여「한소리회」와「대금정악 전수소」를 통폐합하여 중구 신당동 시대를 마감하고 서초구 방배동으로 이사하면서「한소리국악원」으로 조직을 확대 개편하여 현재에 이름. - 80여회의 연주회를 통하여 연인원 5,000여명의 아마츄어 국악인들이 무대체험을 함. - 단소, 소금, 대금, 해금, 피리, 태평소, 거문고 교본등, 총 30종의 교본을 만들어 국악교육의 대중화에 일익을 담당함.
- 2006년 1월부터「한소리국악원」산하에「정악 풍류회」를 두고 실력향상을 위해 현재까지 520회의 토요이습회(肄習會)를 진행하고 있다.
- 2012년에는 서울시 교육청에서 특수직무(국악)연수 기관으로 지정받아 매년 유·초·중등 현직교사들의 국악교육 직무연수를 수행하고 있다. ※ 현재 전공지도 강사 13명을 포함하여 15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 80 - 90년대, 각 일간지에서「한소리국악원」의 국악인구 저변확대와 대중강습 의 활동을 극찬한 문화면 기사들 -
□ 단소 보급운동 ‘우리가락 뿌리찾기 운동’ 이다 (조선일보 1982. 8. 12)
□ ‘국악도 되살릴 수 있다’는 신념 심어줘(동아일보 1981. 8. 5)
□ ‘국악의 지평 넓히려는 시도’(한국일보 1987. 4. 12)
□ ‘국악의 대중화에 디딤돌 역할’(1990. 4. 21)
□ ‘겨레의 얼 일깨운 국악 동호인들’(중앙일보 1990. 4. 20)
□ ‘국악의 대중강좌로 활로찾기 집념’(한겨레 신문 1992. 11. 4)
※ 수상경력
- 국립국악원 주최 전국 아마츄어 국악경연대회 최우수상(1984. 9. 15) -「국악의 해」국악보급 공로표창(1994.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 KBS 국악대상 공로상(단체상) 수상(1994. 11. 11) - 난계 악학상 공로부분 단체상 수상(2016. 10. 13) - 제49회 난계 국악축제 전국 국악동호인 경연대회 출연-수제천(2016. 10.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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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소리국악원의 역사를 간결하게 잘 정리한 것 같습니다
아무런 상식도 없이 대금 소리가 좋아서 대금을 한소리 국악원에서 2016년도에 시작을 하였지만
원장님의 국악에 대한 사랑과 문하생들의 실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습회는 다른 악기와 호흡을 같이 한다는 것이 놀라웠고 소리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실력이 미천한 제가 과천시 문화회관 무대에도 서 보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대금 중급반의 반선생님은 공사다망하실텐도 한번도 결강 없이 수업을 진행하시는 열정은 국악 발전에 초석이 될 것이며
올해는 한소리국악원 제40회 정기 연주회가 있는 뜻깊은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