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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검계의 구성원이었던 표철주(表鐵柱)는 소싯적에 “용감하고 날래며 인물을 잘 쳤으며, 날마다 기생을 끼고 몇 말의 술을 마시는 사람이어다”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인물은 기생을 옆구리에 끼고 담장을 뛰어 넘기도 했다하니 신기(神技)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 칭하기를 ‘왈자’라 하였다.
(*왈짜는 춘향전의 남원고사나 연암 박지원의 ‘발승암기(髮僧菴記)’라는 글에도 나온다. 발승암은 머리를 기른 스님이란 뜻이다. 참고로 단재선생께선 검계가 조선중기 문신이었던 정여립의 설에 다소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다. 검계원은 아니지만 실학자인 이익은 황석영씨의 소설로 잘 알려진 ‘장길산에 대해 본래 창우(倡優, 광대)로서 곤두박질을 잘하는 자로 용맹스럽고 민첩하기가 비상했다 한다.)
위의 예들이 ‘조선잡기’보다 시대적으로 앞서긴 한다. 그러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던가?” 19세기 조선의 무예는 궁술뿐 이었을까? 조선인의 기백이 참으로 죽어 있었을까? 혼마 규스케에게 묻고 싶은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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