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리를 찾아서
이정현(시인)
박이도 시집『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네』
바이북스
신부(新婦)가 가매를 타고 시집 가넌데 가다가 오줌이 매리워서 오
즘을 누넌데 신부는 여자이니까 남자들처름 밖에 나와서 누지 못하지
요. 그래 가매 안에서 놋요강을 놓고 오줌을 눕니다. 오줌 누던 소리
를 이래에 들어보면 육갑하넌 소리가 나요. 육갑을 어떻게 하냐 하면
처음에‘수으르르르 갑술(甲戌)’이라거든요. 게 여자 오줌 누넌 소리
가 그러찬소. 요강에 누니까 감수르르르하지요. 그러다가 을해을해을
해해(乙亥乙亥乙亥亥)해요. 그러다가 끝판에 가서는 병자정축병자정
축(丙子丁丑丙子丁丑)이라거던요. 마칠 때 들어보세요. 병자정축병자
정축이라지요. 그래 여자가 오줌 누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육갑
하는 소리지요.
육갑헌다고?
에잇, 그런 소리 걷우시오.
신선한 소리
이른 아침, 당산에 까치소리
삼복 대청마루에 여치소리
나는 순결하다 나는 순결하다
자연을 향해
새 애기가 동정(童貞)을 선포하는
의식(儀式)이라고
따가운 햇빛도
뭉게 구름도 다 풀어내는
샘물소리
감수르르
경쾌한 순결의 노래
신선한 노래지요.
—「샘물소리」전문
오늘 온종일 물소리 들었다. 추적추적 쏴 쏴 후두둑 후두둑 1막 3장의
빗소리다. 하늘이 장가가는 소리, 땅이 시집가는 소리다.
최근 박이도 시인이『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 철이네』시집을
출간했다. 그런데 표제 시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랫가락이다. 그동안
민담시집을 꾸준히 내어서인지 낯설지 않다. ‘민담은 민요와 함께 구전
(口傳)되어 온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요 노래이다.’구전으로 전해져오지
만 민담 속에는 늘 당시의 시대정신이 들어있다.
시인의‘민담시’는 민담 속의 이야기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오늘날
현 사회와 맞물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풍자하고 있다. 매의 눈
으로 시를 통해 사회비평을 하는 시인. 이제 시인의 올곧은 선비정신에
내 마음의 갓을 고쳐맨다.
『사씨남정기』는 구운몽으로 유명한 김만중의 소설인데, 조선 후기 숙
종 때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빗대어 쓴 소설이다. 바로‘미나리(인현왕
후)는 사철이요, 장다리(장희빈)는 한철일세’가 아이들 입을 통해 구전
되었는데, 폐서인이 된 인현왕후를 가엾이 여기어 그녀가 다시 왕비로
복위되기를 바라는 민중의 마음이었다. 시기, 질투, 모함의 줄기엔 사
실, 서인(인현왕후 쪽)과 남인(장희빈 쪽) 세력의 권력다툼의 붉은 피로
물들어있다.
이렇듯 지난 역사 속에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의 천간(天干)과 지지(地支)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굪),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
(亥)가 돌고 돈다. 예전 어른들이 손가락으로 육갑을 맞추던 모습도 떠
오른다.
육갑은 천간 지지를 예순 가지로 차례로 배열해 놓은 것과 남의 말이
나 행동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 두 가지 뜻을 지닌다. 시인의「샘물소리」
에는 두 소리, 한 뜻에 담아 흐른다. “요강에 누니까 감수르르르하지요.
그러다가 을해을해을해해해요. 그러다가 끝판에 가서는 병자정축병자정
축이라거던요.”라며 신부가 가매 속에서 육갑하는 소리라 하더니 갑자
기“육갑헌다고?/ 에잇, 그런 소리 걷우시오.”라며“신선한 소리”“신선
한 노래”라고 알린다.
내가 자란 시골 마을에서 심심치 않게 듣던“육갑하네!”란 소리! 어른
들이 싸울 때 손을 휘저으며 내뱉던 말이라, 시의 첫 행“육갑허는 소
리”에 나 깜짝 놀랐다. 수줍어 갑을병정을 한 번에 쏟아내지 못하고, 감
수르르르 하다가, 조금 용기를 내어 을해을해을해 하지만, 천간 지지의
예순 가지 육갑의 소리는 삶의 소리 되어 신부 가마 안이 요동친다.
박이도 시인. 평북 선천 출생으로 1959년『자유신문』1962년『한국일
보』신춘문예로 당선하여 시집『회상의 숲』(1969) 『데자뷔』(2016) 『있
는 듯 없는 듯』(2020) 등 다수의 시집이 있다. 경희대 명예교수이며 대
한민국문학상, 편운문학상, 문덕수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외유내강으
로 부드러운 외모 안에서 빛나는 강한 정신과, 비평의식은 이번 시집뿐
아니라 그동안 박이도 시인의 시 세계를 통해 알 수 있다.
시인의 맑은 눈에 비치는 갈라치기 모든 것. 좌우, 남녀, 갑을 논쟁 모
두 놋요강에 넣고 감수르르르 을해을해을해 풀어져 샘물소리처럼 감수
르르 경쾌한 아침 매일 맞고 싶다. 민담의 해학으로 풀어내는 시적 매력
에, 아니 박이도 시인에게 푹 빠져 보길 바란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
다리는 한 철이네』시집이 사철 입에서 입으로 푸르게 회자되길 바란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代價)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
배당한다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경고! 시인이 펼친 오늘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