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감사하게도 지난달 노동허가와 비자 갱신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비자 유효 기간이 지난 달12일까지였는데 아슬아슬하게 기간 내에 1년 연장하게 되어 참 감사합니다. 하필 비자연장하던 기간이 현지
대통령 선거유세 기간 중이어서 2달 먼저 서두른 절차가 느리게 진행되었었습니다. 자칫 국경을 건너다녀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을 했었는데 긍휼을 입었습니다. 함께
걱정해주시고 두손 모아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감사한 것은 지난 15일에 키르기즈스탄 대통령 선거가 무사히 치루어졌습니다. 키르기즈스탄은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두 명의 대통령 모두 유혈 시민혁명에 의해 교체된 아픈 기억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평화롭게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20년이 넘는 장기집권 상태이거나 죽을때까지 집권한 것을 감안하면 키르기즈스탄은 놀라운 발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작년에 한국에서 촛불 시위가 있었을 때 그런 뉴스를 본 동네 아저씨들이 ‘한국도
우리랑 별 차이가 없네’ 하면서도 아무도 다치지 않고 군대나 경찰이 시민들에게 발포하지 않는 것을 보며
‘참 대단하다’하며 부러워했었습니다. 우리도 80년대에 그랬었다고 하니 동네 아저씨들이 믿기 어렵다며
정말 그랬었냐고 여러 번 물어보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나라도 그런 새 역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올 가을은 여러가지로 힘든 일들이 많았습니다. 작년에는 쥐떼들로 고생했었는데 올해는 벼룩이 그렇게 힘들게 하더군요. 심지어
집안에서도 매일 저녁 여기저기 톡톡 튀는 벼룩을 몇마리씩 잡고도 하룻 밤사이 몇 군데씩 물리기 일수였습니다. 텃밭
일을 하다보면 마치 좁쌀 떨어지는 것처럼 소리가 나기도 할 정도로 벼룩 천지였습니다. 그러다가 9월말 첫눈이 오고는 며칠간 영하로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한창 자라던
무와 배추, 양상추가 완전히 냉해를 입어 못쓰게 되어버렸구요. 급하게
터널을 만들어 비닐을 덮었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을에 배추와 무를 수확하면 고아원에도 배추를
가져가 고려인식 김치를 담으려 했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0월에는 다시 따뜻해져서 꺼내둔 겨울신발을 다시 창고에 넣어야 했지요. 정말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가 있는 것인지 올해 이곳의 가을은 참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날씨였습니다. 게다가 천산산맥의 만년설도 10월까지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줄어들었구요. 이러다 저 산의 빙하와
만년설이 다 사라지면 이 땅은 어떻게 되는 건지 참 막막합니다. 사람들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어찌보면 내일을 앞당겨와 소비해버리는 건 아닌지…… 이 땅을 다시 살리고 이 땅의
사람들을 다시 살리는 마음으로 쟁기를 들고 오늘도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동안 매주 만남을 갖던 고아원 아이들과도 이제 꽤 친해졌는데
이제 수확이 끝나니 참 아쉽네요.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한번 초대해서 시골마을 구경도 하고 말도 타보고 그러려고 했는데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원장님은
두세명 정도 먼저 보내려고 했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원칙상 원생 모두가 현장 학습을 하는 일 외에 개별적으로 허가하기는 어렵다고 해서 아쉽지만 제가
좀더 여유있게 준비를 하고 초청을 해야겠습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열살도 되기 전에 말을 타고 다니는데
고아원아이들은 말 타는 것은 구경도 잘 못해보았다고 하는 말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여기서는 제일 흔한
모습이 아이들이 당나귀나 말을 타고 다니는 건데 정작 이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모르다니……
지난 추석엔 토크막 지역 고려인들과 함께 아리랑을 부르며 찰떡과
음식들을 나누며 교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행사에서 중간에 인애와 카리나가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수상한 것을 축하하며 두 아이를 가르친 아내에게도 토크막 시와 키르기즈스탄
고려인 협회에서 감사패를 수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정작 우리 교육원이나 대사관에서는 현지인인 카리나가
대회에 참여하여 수상한 것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는데 현지 시청과 고려인 협회에서 축하하며 감사패를 증정하니 참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여하튼 그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수고한 아내에게도 조그만 기쁨이 되어 감사하구요.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저희 마을의 고등학생 아이도 한 명 더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사촌 언니가 한국으로 시집을 가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촌 언니의 초청도 있어서 학교를 졸업하면 한국에
가서 미용기술을 배울 계획을 갖고 있는 베가이 라는 이름의 아이입니다. 가정형편이 많이 어려워 여러
친척 집에 머물며 근근히 학교 공부를 마치려고 하는데 이 아이에게도 참 소망이 생겨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참 슬픈 소식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연해주에 있을 때 가족처럼 가까이 지냈던 문 슬라바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한동안 무거운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고향 사마르칸트에 꼭 한번 같이 가보자고 약속했는데…… 그
고향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데…… 늘 함께 지내던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던 문 슬라바 아저씨를 이 땅에서
다시 볼 수는 없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 아버지의 은혜로 함께 했던 지난 날들을 웃으며 이야기 할 날들을 고대합니다.
여기는 이제 겨울이 왔습니다. 온 세상을 뒤덮은 눈을 보며 누군가는 힘들게 눈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껍게 옷을 껴입고 누군가는 신나게
눈싸움을 할 생각으로 모자와 장갑을 챙겨입지요. 누군가는 눈이 다져지고 꽁꽁 얼어붙어서 쌩쌩 썰매타기를
기대하지만 누군가는 미끄러운 길 위를 오늘도 안전히 다녀오기를 고대하지요.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가 느껴지는 계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견뎌내야할 추위가 끔찍한 겨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람들에게 겨울이 지나면 따스한 봄이 오듯이 온 세상이 위로부터 내려오는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의 따스함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은혜 가운데 항상 평안하시길……
1.
함께 농사일을 해나갈 사람을 잘 선정할
수 있도록.
2.
더불어 사는 사람들 현지 지부와 한글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3.
프로그레스의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세워가도록.
4.
아내와 아이들의 건강과 홈스쿨링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