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세계관을 견지하는 교육은 따로 따로 분리되었고 겉보기에는 독립적 학문들로 나뉘어 있다. 전문화된 지식의 조각난 렌즈를 통해, 문제들은 각기 고립된 증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근본 원인들은 감추어진다. (헬레나호지, 104쪽).
사회복지사의 실천 또한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그것도 불완전한 지식으로 개입하려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문제란 현상으로 나타나 이를 제거하면 되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김세진, 229).
................................................
아무리 제도가 잘못되었다 할 지라도 이를 잘 활용하면 좋다는 논리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근본이 잘못되어 있는 것은 지속적으로 강하게 수정요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잘못을 추적하다 보면, 너나 나나 할 것없이 귀책 사유가 각각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는 습성은 우리의 한계인가 싶다. 문제란 이쪽과 저쪽의 부조화나 부적응에 귀인하므로 양쪽간의 맥락 속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각자는 자신들의 본래 숨은 의도를 감추고 가짜 명분이나 괴상한 논리를 앞세우거나 혹은 상대의 치부를 건드려서 전혀 다른 싸움을 전개한다. 그러한 싸움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고 이를 보는 당사자들은 어의없게도 그들 싸움에 대리자가 되거나 등이 터지는 희생자가 된다. 불순한 숨은 의도가 본질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터지게 함으로써 그들은 실속을 하나씩 가져간다.
이런한 맥락을 알기 위해 우리는 각성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가 각색되어지고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 순간부터, 엄격하게 말해서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자본주의자들은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나 국가들 보다 더 설득력있는 논리와 광고로 우민화의 강도를 높혀가면서 자신들은 알토란 같은 구체적인 실리를 가져간다. 그들은 대량의 희생자를 만들고 심지어 지구의 생명조차 목조르고 있다. 칼날 같은 논리와 설득력 그리고 연대를 통하여 지킬 것은 지켜야한다.
사회복지도 마찬가지다. 이들 신자유주의자들은 소위 '자비'라는 정책을 추종국에 강요한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된 서비스는 우리들의 연대를 부정하고 사람들의 측은지심과 같은 감수성을 고사시키고 있다. 그러한 숨은 의도를 모르는체 본인이 죽거나 죽을 수도 있는 가혹한 복지 공장에서 아둥거리고 있다. 소위 복지인들의 희생의 결과가 사람들간의 우정, 인정, 배려와 같은 사회적 관계를 흐트리거나 말살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의도를 인식하지도 못한체 열심을 보일 수 있다. 복지의 본래 취지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복지시스템에서 열심히 온 몸을 바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복지의 본래 취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누리되, 더불어 살도록 돕는 일이다.
첫댓글 "복지 공장"
가혹한 복지 공장...
정호영 선생님, 고맙습니다.
<독서노트>를 다듬고 있습니다. 새로 쓰기도 합니다.
정호영 선생님께서 이렇게 보태주신 글도 곳곳에 추가하고 싶어요.
이야기 보태주시니 고맙습니다. 제가 큰 복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