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3:6-7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믿음이 있다.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들만의 아주 독특한 믿음이 있다.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자신으로부터 나온 어떤 가치, 세상으로부터 나온 어떤 가치를 믿고 살아간다. 존재의 문제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과학적인 가치를 믿고 따른다. 확인, 증명 가능한 것을 믿으려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년, 이삼십년, 아니 몇 년 전에는 확인할 수 없어서 믿지 않았던 것들을 이제는 확인 가능해 믿기도 한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한계로 인해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과학적인 믿음은 실상은 거짓을 내포하는 믿음일 수밖에 없다.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존재도 그렇다. 과학적인 시각으로는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존재하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 증명할 수 있는가? 존재하는 모든 영역을 알 수도 없는 인간이 말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고, 그들의 영혼을 달래야 한다고 말한다. 조상이 존재하는가? 어디에 존재하는가? 사람의 마음은 어디 있을까? 확인가능한가? 임사체험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노벨의학상을 받은 신경과학자 존 에클레스 경은 이렇게 말했다. “영혼은 두뇌와 완전히 별개의 존재다. 우리는 물질세계에선 몸과 두뇌를 가진 물질적 존재다. 하지만 육신이 죽은 후에도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며 생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사람들이다.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죽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믿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이것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단순히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영혼중심으로 믿는 것, 잘 박힌 못과 같이 영혼중심에 박혀진 믿음은 그 믿음의 내용, 질이 다르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고 말할 때 바로 이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마치 월드스타를 어떤 정보를 통해 아는 것과 직접만나 교제를 통해 아는 것과의 차이다. 언제든지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 있는, 함께 식사하고 싶으면 식사할 수 있는, 통화하고 싶으면 통화 할 수 있는 그런 관계는 단순히 월드스타에 대해서 수많은 정보를 아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아는 것이다. 믿음도 그렇다. 하나님에 대한 어떤 정보를 아는 것과 하나님 자신을 아는 것은 다르다.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 자녀를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가정에 자녀를 주실 것이라는 그 이상의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믿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렇게 수많은 기적을 경험하고서도 하나님을 원망, 불평하며 하나님을 떠났을까? 기적을 열망하는, 자신의 필요만 채우면 된다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 믿음은 하나님 자신을 믿는 것이다. 그의 성품, 속성,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누가 내 능력만을 믿는다면, 나의 주머니와 머리만을 인정하고 필요로 한다면,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데 몇 푼의 돈 때문이라면 그 사람을 어떻게 보겠는가?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런 믿음도, 단순히 어떤 기적을 경험함으로 오는 믿음도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그런 능력을 경험하기 이전에 이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다. 하나님 자신을 믿는 믿음 말이다. 하나님 자신을 믿는 믿음이 성장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사라진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어떤 것을 내어드려도 결코 아깝지 않은 그런 단계에 이르게 된다. 아브라함이 그 믿음의 단계에 이르렀다. 그로인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시험을 통과하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라! 하늘의 별들을 다 셀 수 있는가?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는가? 바라기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 자신을 믿는 믿음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자리함으로 아브라함과 같이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