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실 첫번째에 걸려있던 야생화 사진(돌콩)을 떼어 포장용 박스에 넣는 것으로 사진 전시회의 철거작업은 마무리가 되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작별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나서니 정면에서 한라산이 빙그레 웃어 주었다. 일년 중 한라산은 전신 몸매를 보여주는 때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하는데 준비하는 날에도 구름의 장막을 활짝 걷고 격려의 기를 넣어주더니만 끝나는 날에도 약간의 잔설로 머리를 멋드러지게 꾸민 채 석양의 황금빛을 반사시키며 가슴을 크게 열고 인정감을 부여해준다는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떻게 야생화에 심취하게 되었는지 스스로가 신기하기만 하다. 딱딱하다고 하는 공무원 생활을 넘치지 않을 만큼 찰랑 채워 근정훈장을 받았고 나아가 삭막하고 인간미조차 없어 보인다는 특수직 상징의 장기근속 30년 나침반 반지까지 옷장 속에 보관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야생화에 대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퇴직 1년만에 300여 종의 들꽃에 대한 사진을 찍고 분석을 한 후 시를 붙여 넣어 책으로 발간하더니만 전시회까지 하게 될 줄은 자신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평생 다니던 직장을 나오게 되면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된다. 평소 특별한 취미나 전문성있는 활동을 계속하는 사람은 몇 %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무엇이든 의욕을 같고 시작하기하기는 하지만 끈기있게 계속하기는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상당수 사람들이 등산이나 낚시를 바롯하여 서화와 바둑 등의 정적인 취미 활동에 참여하거나 요가 같은 심신단련 운동을 하기도 하며 특히 요즘에는 그동안 공무원이었기에 제약받았던 골프에 원수를 갚겠다는 신종 매니아들도 많이 보인다.
아무리 색다른 은퇴 생활을 고민해 보아도 기본은 걷는데서 출발하게 된다. 제2의 인생도 걸음마에서 시작해야 하는 모양이다. 몸 속에 항암 인자를 비축시키고 무슨 무슨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걷기 운동이 최고라는 말이 나와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에서 시작하여 북한산과 지리산 둘레길을 비롯 각종 길 시리즈가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퇴직자들도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이 걷기 운동이 되며 경제성이나 사회성 그리고 시간적인 면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 보아도 사실 이보다 더 좋은 개인 여가 생활을 없을 것이리라.
나도 걷기운동을 처음 시작하였을 때는 단순히 체력 보강 차원에서 단순하게 반복되었지만 점차 주변의 자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행히 동행자가 식물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 그는 한 때 건강이 안 좋아 5년 동안 숲을 찾아 다녔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을 알게 되었다"고 강조하면서 이것 저것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곁을 지나치며 가르쳐주는 나무 이름은 바로 잃어 버리기 일수였다. 한라산 숲길을 다니며 많은 나무를 알려 주었지만 나중에는 과거에 알고 있던 서너개의 나무의 쉬운 이름마져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래도 그러려니 하면서 무심히 지나쳤다.
숲을 나오면 들녘이 펄쳐진다. 평범한 인간이기에 태양볕이 뜨거울 땐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가 추울 땐 양지로 나와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들을 걸으면 여러가지 들꽃이 눈에 뜨이게 된다. 따뜻한 봄날이 되어 작고 큰 오름을 오르내리다 보니 각종 야생화를 많이 접하게 되었고 이름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야생화 이름은 나무 이름보다 더 기억하기가 어려웠다. 제비꽃 하나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갑자기 이꽃저꽃 이름과 형태를 단번에 깨우치려 하다보니 될리 만무였다. 괜스레 "내가 돌머리였든가?" 자책을 하는 씁쓸함만 맛보게 되었다.
꽃이란 늘 피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이름 또한 서로 혼동되지 않게 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공무원식 사고방식이 반자동으로 적용되어 즉시 손바닥만한 디카를 구입하게 되었고 야생화를 만나면 촬영하여 동행자로부터 들은 이름을 메모해 자료화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디카로 영상에 담을 수 있는 꽃의 모습에 한계가 있었다. 작은 들꽃을 촬영해 확인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계속.......
첫댓글 끈기와 인내로 일구어낸 결과라고 보아 집니다. 아무나 그렇게 하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저같은 경우는 더 욱더 안되고요 아무튼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계속 걸어가는 모습을 기대 합니다.
일주일 이상을 수정하면서 글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