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11월6일(월)맑음
호스피스 병동에 위문가다. 간호사가 <사랑> 병동에 어느 환자는 스님의 위문을 거부한다는 말을 전한다. 내가 전에 임종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죽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드리기는 힘들다. 그분도 그럴 것이다. 다른 병동의 한분은 지난 일주일이 괴로워서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고 한다. 즐거우면 시간이 짧게 느껴지고 괴로우면 길게 느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나만 홀로 괴로워하다 죽는 게 아니다. 태어난 생명은 모두가 그 길을 간다. 다만 누가 일찍 가고 누가 늦게 가느냐의 차이다. 아직 젊어서 사는 것이 즐거운 사람에겐 살아볼만한 인생이지만 늙어 병든 사람에겐 사는 것이 힘들고 괴롭다. 고통은 사람을 겸허하게 만든다. 기고만장하던 사람도 병석에 누우면 삶의 제단 앞에 고개를 숙이고 숙연해진다. 아파 누운 남편은 부인이 정말로 고마운 줄 비로소 알게 되었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스님 앞에서 아내에게 물어본다. 내생에도 나를 만나주겠느냐고. 인도 사람이 진실한 사랑을 맹세할 때는 ‘내생에서 다시 만나요.’라고 한다던데, 지금 남편이 간호하는 아내에게 묻는다. 그랬더니 이미 중년을 훌쩍 넘어버린 아내는 망설이면서 ‘우리가 서로 입장을 바꾸어 태어난다면 한번 다시 만나줄 수 있겠죠.’ 이런다. 아내는 내심 다시는 안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애원하는 눈길이 담긴 남편을 외면할 수 없기에 ‘내생에 당신이 아내 역할을 맡고 내가 남편을 역할 맡는다면 한번 다시 살아줄 수는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여자가 한평생 아내의 역할을 맡아 남편 뒤치다꺼리 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짐작이 간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라 말해주라고 가르치다. 죽음에 다다라 감사해야할 일은 감사하고, 용서해야 할 것은 용서하여 마음속의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새는 짐을 들고 날지 않으며, 물고기는 짐을 지고 헤엄치지 않는다. 사람이 임종에서 다음 생을 찾을 때까지 솔개가 바람을 타고 날 듯 해야지 짐을 지고 가서야 되겠는가?
저녁 강의하다.
2017년11월6일(화)맑음
요가 클래스 하다. 어젯밤부터 설사와 발열로 괴롭다. 몸살인 듯. 약 먹고 쉬다. 저녁에 위빠사나 수행하다. 정해보살의 따님이 사법고시 최종합격했다는 소식 오다. 축하해주다.
2017년11월8일(수)맑음
처음처럼
-신영복 시인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려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강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수행이 아니라, 하나하나 알아차려 가면서 ‘내려 놓아가는’ 과정이 수행이다. ‘내려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섬세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불교수행이다.
2017년11월9일(목)맑음
오전에 선원에 모여서 커피 한 잔 나누고, 진주성으로 가다. 가을 포행정진이다. 하심, 문정, 문인, 향인보살 참석하다. 진주 성은 가을빛으로 빛난다. 철학자의 길에서 ‘화해의 언덕’ 오르기 명상을 하다. 그리고 왼발에 ‘사랑합니다.’ 오른발에 ‘감사합니다.’를 되 뇌이면서 걷다. 화가의 눈으로 가을 풍경을 음미 감상하라고 하다. 眼根안근이 色境색경을 觸촉함으로 풍경이 나타나는 것을 알아차림 하라하다.
진주성은 가을 꿈에 취한 듯, 망진산 우흐로 철새가 날아간다.
붉은 잎 노랑 잎 샤라라 푸른 물위로 떨어진다.
시우 찻집에 가서 말차 섞은 마죽을 먹다. 환담을 나누다 헤어지다.
2017년11월11일(토)맑음
오전11시 선학사에서 초기불교공부모임 갖다. 대구에서 다섯 스님 오시다. 선학사 신도분과 진주선원 신도분들이 스님들께 예경 올리다. 점심 공양하다. 스님들은 삼보에 예경하고 포살을 행하다. 신도분들이 차와 다과를 대접한다. 스님들은 불교대학원 설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빠알리 니까야 강독과 초기불교 학습에 이어 아비담마, 구사론, 십지론, 중관을 이어주는 커리큘럼으로 구성하는 교과과정을 준비한다. 교수스님으로는 등현스님, 각묵스님 등을 모신다. 학생은 40~50명 정도로 생각한다. 운영위원, 자문위원을 생각하다. 경진스님의 발의로 주재로 논의가 진행되다. 나는 경진스님의 원력을 찬탄하면서 전적으로 동참하리라. 오후5시경에 논의를 마치다. 진주성으로 포행가다. 황혼이 드리운 진주성은 짙은 가을색이다. 스님들은 낙엽을 사뿐히 밟아 시간을 멈춘다. 시우 찻집에서 차를 나누며 환담하다. 모래시계가 흘러내려 헤어져야 할 때를 알려준다. 함께 했던 날의 기억을 나누어 가지고 제 갈 길로 흩어지다. 경진스님과 진주선원으로 돌아와 뒷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쉬다. 눈을 감고 눕다. 눈이 감을 수 있을까?
2017년11월12일(일)맑음
경진스님과 아침 먹고 산청 둔철산 아래 권오민 교수(경상대 철학과 불교전공)를 만나러 가다. 권교수와 경진스님은 동대 불교학과 동문이다. 권교수는 부파불교의 전문가이다. 교수는 예술적 취향이 있어 거처를 정원처럼 단아하게 꾸며놓고 아내와 함께 산다. 환담을 나누다 점심 공양을 같이 하다. 경북대 인도철학과 교수인 임승택 교수부부가 지나가는 길에 권교수 댁을 방문하러 와서 우리들과 마주치다. 둔철산의 가을빛을 공유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단풍이 더 붉어지니 어둠이 드리운다. 모두 갈 길을 따라 헤어지다. 가을이 간다.
2017년11월13일(월)맑음
호스피스병동 위문가다. 낯익었던 몇 분이 보이지 않는다. 담당간호사가 돌아가셨다고 속삭인다. 일주일 사이에 이승과 저승이 갈라졌구나. 모든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마지막이자 처음이다. 처음인 듯 마지막인 듯 만나고 헤어지자. 매 순간이 처음인 듯 마지막인 듯 살아가자. 붉게 단풍든 가로수 잎들이 늙어간다. 곧 노추老醜를 보이다가 떨어질 것이다.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다른 곳에 다른 모습으로 온다 해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현재도 이미 현재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저녁 강의는 냐나틸로카 스님이 지은 <붓다의 말씀>을 교재로 하여 공부하다. 부처님이 가르치는 방식은 소나타sonata 형식과 같아서 주제Thema와 그에 따른 변주Variation이 적절히 반복되면서 점진적으로 감동을 고조시켜가는 것이다. 그분의 가르침은 디테일detail의 힘에 있다. 큰 변화는 큰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차이의 반복에서 나온다. 일상에서 작은 차이를 만들어 가면 마침내 큰 변화를 일으킨다. 이것이 수행 아닌가?
2017년11월14일(화)맑음
요가모임. 몸은 정신이 거주하는 성스러운 전당이니, 청정하고 깨어있게 돌보아야 한다. Body is a sacred temple where the spirit resides. Keep it pure and awakened.
몸에 일어나는 과정을 사랑하게 되면 결과는 자연적으로 따라오게 된다.
Fall in the ongoing process and the result follows.
점심공양 함께하고 돌아와 청소하다. 가을 맛이 나는 커피를 나누다.
저녁 공부하다.
2017년11월15일(수)맑음
문인보살의 돌아가신 모친을 위한 49재 천도재를 지내다. 환희롭게 회향하다. 여행 비자를 위한 사진을 찍다. 가을이 익어간다. 저녁 강의하다.
2017년11월16일(목)맑음
따뜻한 햇볕을 즐기며, 독서하고 사색하며 하루 보내다. 오늘이 없어졌나? 시간이 사라졌나? 시간이란 바다이다. 바다는 줄거나 늘어나거나 하지 않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다만 위아래로, 옆으로 순환할 뿐이다. 바다 속에도 강이 흐른다. 그것을 해류라 한다. 시간은 바다 속을 흐르는 해류이다. 모든 강이 만나 강이 더 이상 강이기를 버려서 안식을 얻은 다음 다시 흐름을 일으키니 그것이 해류의 시간이다. 시간은 공성이며 연기이다. 조셉 캠벨과 마성스님의 유투브 강연을 듣다.
2017년11월17일(금)맑음
보살님들과 함께 부산으로 나들이 가다. 365일 삶의 나무에서 단풍 잎 하나 떨어진다. 하루가 떨어졌다. 날씨가 흐려지며 하늘이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