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양심에 따르다
(시부야집회월보 2020년 3월호)
오다코헤이(小田弘平)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말하였다.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그러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였다.(행 23:1-2)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丸山眞男 지음)이라는 책에는, 루터교회 목사 마틴니메라의 고백이 인용되어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칠 때, 나는 조금 불안했다. 그렇지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후 나치는 사회주의자를 공격했다. 나의 불안은 커졌다. 하지만 역시나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가, 신문이, 유대인이...... 하는 식으로 공격이 점점 가까워졌다. 나의 불안은 매우 커졌다. 그러나 그때도 행동하지 않았다. 드디어 나치가 교회를 공격했다. 나는 교회인이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그리고 책에는 이런 문장이 덧붙여 있었다.
"과감한 저항의 인물로 알려진 니메라조차도, 직접 자신의 밭에 불이 붙을 때까지는 '그저 안에 머문 사람' 이었다."
니메라가 아니더라도, '나는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물음을 던지게 되는 사례이다. 문제의 본질이 확실할 때는 판단하기가 쉽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는, 자신의 소신을 명확히 밝히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럴 때야말로 자신의 마음이 말을 걸어오는 질문, '너는 그대로 지나치겠는가, 정녕 도망가겠는가?' 하는 소리가 들린다. 양심에 기초한 판단은 시간을 많이 끌며 잘 생각하고나서 결단하는 것이 아님을 니메라의 후회가 증언하고 있다.
왜 인간에게는 양심이 주어졌는지 창세기 1장 27절이 설명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2장에서, 주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짓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었다고 말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양심은 하나님의 의지를 담기 위해 영혼에 불어넣어졌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물을 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양심이다. 그래서 양심은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양심은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의 전 생애에 걸쳐 스스로 키워가게 된다. 히브리서 13장 18절의 말씀은 그를 위한 기도이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오. 우리에게는 선한 양심이 있어서,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일을 잘 해 보려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최고법원의 의원들을 향해, 확실하게 자신의 양심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용기있게 밝혔다.
* 글쓴이 오다코헤이 씨는 아이싱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셨습니다.
첫댓글 참으로 어려운 숙제 입니다. 선한양심이 우리속에 가득하기를 그리고 그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