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카페에 쓴 글을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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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은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라는 저서를 남겼는데요.
위 책의 '제2장 공리의 원칙을 거스르는 원칙들에 대하여'라는 챕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만약 공리의 원칙이 지배적인 옳은 원칙이라면, 그것도 모든 경우에 그렇다면, 방금 관찰한 바로부터 그것과 다른 원칙은 어떤 경우에든 필연적으로 그른 원칙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원칙이든 그것이 그른 원칙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원칙이 무엇인지, 즉 그 원칙의 명령이 어떤 점에서든 공리의 원칙이 명령하는 바와 다르다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 그 원칙을 진술하는 것이 곧 그 원칙을 논박하는 일인 셈이다. 어떤 원칙은 두 가지 방식으로 공리의 원칙과 다를 수 있다. (1) 공리의 원칙에 항상 대립함으로써 이것은 어떤 원칙을 금욕주의 원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이다. (2) 형편에 따라서 때로는 공리의 원칙에 대립하고 때로는 대립하지 않음으로써 이것은 어떤 원칙을 공감과 반감의 원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이다. "
★ 금욕주의 원칙은 공리의 원칙과 반대이다! ★
그렇다면, 금욕주의 원칙이란 무엇일까요?
"금욕주의 원칙이란 공리의 원칙과 마찬가지로 이해 당사자의 행복을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듯 보이는 경향에 따라서 어떤 행동을 승인하거나 불승인하는 원칙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리의 원칙과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행동들이 그의 행복을 감소시키는 경우에만 그것들을 승인하고, 그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경우에는 그것들을 불승인한다. 어떤 원천에서 나왔든 아주 작은 조각의 쾌락조차 거부하는 사람은 그만큼 금욕주의 원칙의 지지자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에서 취한 가장 혐오스러운 쾌락조차도 그 자체로는 공리의 원칙이 아니라 금욕주의 원칙에 의해서만 거부당할 것이다. 문제는 그 범죄자의 쾌락이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 쾌락은 아무것도 아닐 만큼의 고통이 (혹은 같은 말로, 어떤 일정한 야의 고통을 당할 가능성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 범행을 처벌하게 만드는, 참되고 유일하며 완벽히 충분한 이유이다."
★ 금욕주의란 '당사자의 행복을 감소시키는 듯 보이는 경향에 따라서 어떤 행동을 승인하거나 불승인하는 원칙'이다! ★
도대체 벤담이 보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미쳤다고 금욕주의 원칙을 선택한다는 걸까요?
"서로 매우 다른 기질을 가진 두 부류의 사람들이 금욕주의 원칙을 신봉했다. 한 부류는 도덕가 집단이고, 다른 한 부류는 종교가 집단이다. 이에 맞게 이 집단들이 금욕주의 원칙을 마음에 들어 한 동기도 서로 달랐던 것 같다. 희망, 말하자면 쾌락에 대한 예상이 전자의 부류를 움직인 동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희망, 다시 말해서 인간의 손에 달린 명예와 평판에 대한 기대는 철학적 긍지의 자영분이다. 공포, 말하자면 고통에 대한 예상이 후자의 부류를 움직인 동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공포, 다시 말해서 화를 잘 내고 복수심이 넘치는 신성의 손에 달린 미래의 처벌에 대한 공포는 미신적 환상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공포에 대해 이렇게 말하겠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는 공포가 희망보다 더 강하다. 이런 상황들이 금욕주의 원칙을 지지하는 두 집단의 특징을 결정한다. 그 집단들과 그들의 동기는 서로 다르나, 원칙은 동일하다."
★ 명예와 평판에 대한 기대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에서 (철학적) 도덕가들이, 신에 의해 미래에 주어질 처벌에 대한 공포에서 종교가들이 금욕주의 원칙을 선택합니다. ★
공리의 원칙을 주장한 벤담이 보는 금욕주의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또한 이것이 다양한 경우에 금욕주의 원칙을 지지하는 철학자들과 종교가들로 하여금 그들 공동의 적, 즉 그들이 입을 모아 에피쿠로스주의자라는 불쾌한 이름으로 낙인찍은 공리의 원칙의 지지자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단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금욕주의 원칙의 지지자들이 이 원칙을 사적인 행위의 규율로는 열렬히 받아들였을지 모르나, 정부 업무에서는 그리 철저히 따르지 않았던 듯하다. … 그러나 그들은 결코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이 공적일 수 있다거나, 더구나 그것이 의무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만약 일정한 양의 비참한 고통이 그렇게 바람직한 것이라면, 각자 그 고통을 자기 자신에게 가하든 다른 사람에게 가하든 별 문제 없을 것이다. "
"금욕주의 원칙은 원래 경솔한 사색가들의 공상에 불과했던 듯하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 얻어지 어떤 쾌락은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더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고 인식하거나 상상했던 사람들로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쾌락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을 비난했다. 여기에 이르러 그들은 자신들의 출발점을 망각한 채 고통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칭찬할 말한 일이라고 여길 정도로까지 멀리 나아갔다."
★ 금욕주의라 옳았더라면 왜 사람들은 개인뿐만 아니라 정부 사업에까지 적극적으로 금욕주의 원칙을 적용하라고 주장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이 공적일 리가 수 없고, 의무일 리는 더더욱 없기 때문입니다. 금욕주의 원칙이란 그저 경솔한 공상이었을 뿐인 것입니다. ★
[다음카페] Re:금욕주의와 공리주의 차이점
Re:금욕주의와 공리주의 차이점벤담은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라는 저서를 남겼는데요.위 책의 '제2장 공리의 원칙을 거스르는 원칙들에 대하여'라는 챕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m.cafe.daum.net
첫댓글 깔끔한 정리 덕분에 평소 몰랐던 공리주의와 금욕주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푸른하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