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등단) 후보자...김태연(시 6편)
1) 호수를 그리다
시/김태연
안개 스며든 호수가
나를 깨우고
오늘도 내가 살아있기에
너를 부르곤 한다
노을이 호수까지
물드는 날에는
외로움을 설산에 묻어둔 채
호숫가에 선다
설산에 피어난 천년초, 그 향기 같은
그리움으로
난 호수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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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낙엽 하나
시 / 김태연
생각이 또르르 구르다가
멈추곤 한다
갈바람 불어오고 잎이 떨어지면
아침이슬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내 가슴 속 바람도
오늘은 쉼표 찍듯
고요하다
계절이 빗금칠 때마다
낙엽 하나
구멍난 채
내 눈 안의 우물까지도
흔들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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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서리 꽃
시 /김태연
햇살 번지며 사라져가는
호수의 물결
빛을 머금고 사라진다
찰나의 아픔이
가슴에 물든다
나는
서리꽃처럼
있다가도 없는 존재처럼 살아간다
때때로 유목민처럼
나는 거리를 서성이기도 한다
님은
오늘도 오실 날을 미루는데
야윈 나뭇가지 사이로
노란 꽃망울은
철도 모르고
방실방실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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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처녀의 눈물
시 / 김태연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
홀로 강에 서서
해와 달을 벗삼는
춘천 소양강의 처녀상
이루지 못한 사랑
기약없는 기다림에도
설풍을 견디고 있는
여인입니다
강물에 떨어진 눈물만큼
강에 초록물이 고이는 듯 합니다
찾아올 사랑을 기다리듯
달빛에 눈물 적시고
긴 시간 침묵하며
또 그렇게 기다리며
소양강을 지켜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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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진포 솔밭길
시 /김태연
호젓한 화진포 솔밭길
푸르게 다져진
그 길을 늘 걷고 싶다
내 안에 숨죽인 침묵을
깨어버리고
솔밭길을 걸으며
따스한 정을 퍼담고 싶다
소나무 가지마다 초록이 춤추고
비밀스런 울음소리가
밤이 되면 들릴 듯한 그 솔밭길
스치는 산들바람이 있고
같이 걷는 벗 없더라도
산새 날아들길 기다리며
호젓한 그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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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황룡잠 피다
시 / 김태연
새벽이슬처럼
곱디고운 미소로 피어나
홀로 살아온 세상
가녀린 꽃 너의 모습을
귀뚜라미 소리로도
달래주지 못했구나
홀로핀 사연은 무엇인지
비련의 속내를 가지고 있는건지
황룡잠과
눈이라도 자주 마주치고
숨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아야지 싶다
봄 닮은 그 사람이 오면
황룡잠 같이 바라보며
꽃망울 터지기 전
힘을 주는
담소라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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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김태연
.서울 정릉 출신
.한림성심대학 수료
.현재 [랭스미용실] 원장
.도자기.석부작 강사
당선 소감
글 / 김태연
모다깃비 그치고 구름 한 점 없는 눈부신 날, 전에 없던 투명함으로 참 본성을 들여다본다.
누군가 나를 ‘바보’라고 부른다면 그렇게 부르라고 여기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털실로 목도리를 짜듯 젊은 날부터 그냥 노트 하나에 글을 끄적이곤 했다.
크게 되는 나를 탐하기보다 작은 나를 사랑해주는 마음으로 글을 썼던 세월이었다. 내 안에 갇힌 감옥에서 탈출하듯 내 삶은 어느덧 시가 탈출구가 되고 있었다.
고요한 시간들 속에서 내 안에 고인 눈물을 길어다가 살포시 글로 종이 위에 내려놓는다. 고독으로 떠밀려 슬픈 새가 되던 나에게 시 쓰기는 위안이 되곤 한다.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가는데 시는 나에게 화장하는 법을 가르치듯 슬며시 다가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트리고 햇솜 같은 하얀 미소로 내 마음을 표현하는게 이제 나의 살 길이다.
“시는 벚꽃이 지고난 후 버찌가 보이듯 여운으로 가슴에 남는 시를 쓰고 싶다.”고 이번에 신인상 후보로 추천해주신 한경은 시인이 내게 말했습니다. 나의 시는 늘 어둡기만 했는데, 한 시인이 내게 밝은 햇살을 살며시 건네주어서 서라벌문예에 이번에 노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선작으로 뽑아주셔서 감사드리며, 이젠 다정한 이웃처럼 시인님들께 인사드리겠습니다.
2017.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