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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정관진 제5군단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학생 4-H 회원 도농교류 및 도시문화 체험교육~
니르바나 추천 0 조회 67 13.06.18 13: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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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농업기술센터에서 지난 6월 11일,
학생 4-H 도농 교류 및 도시문화 체험 교육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농업기술센터 이승주 소장, 강효식 4-H 본부회장, 지도교사 이하
4-H 회원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4-H 서약을 다 함께 재창하였습니다.


2박 3일 동안 도농교류 체험을 하게 되어 초중학교에서 2명씩
고등학생 3명씩을 학교에서 선발하여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4-H 활동을 열심히 한 모범생들을 선발 했을만큼
적극적이고 보람있는 교육이 될 것으로 봅니다.


한국농수산대학을 견학하고 농촌진흥청에서 농업과 관련된
체험학습 활동과 함께 4H 본부로 이동하여 도시문화 체험을 합니다.

 

참가 한 학생들은 다 함께 4-H 서약을 다 함께 재창합니다.


"맹세, 나는 4H와 사회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나의 머리는 더욱 명석하게 생각하며
나의 마음은 더 크게 충성하며 나의 손을 더 위대하게 봉사하며
나의 건강을 더욱 좋은 생활을 하기로 명세합니다."

 

강효식 4-H 본부 회장은 이번 도농교류체험이 지덕체 4-H 이념 실현의 기회가 되고
다양한 체험을 통해 심신단련과 함께 자신감 있는 미래의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4-H 운동은 지난 50년 동안 전후복구 농촌계몽운동으로 시작하여
새마을운동, 녹색운동, 백색혁명 등 80년대 농촌 청소년 운동으로
국가 원동력에 크게 이바지해 왔으며 농촌 청소년들과 도시 청소년들과의
도농교류로 농촌과 도시문화를 교류하고 청소년들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 등
훌륭한 체험학습의 장이 될 것입니다.

 
국민소득 이만 불 시대에 있는 선진농업국가로 발돋움하는 데에
청소년 4-H 활동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보며 청소년들의 다양한 체험과
4-H 육성을 통하여 우리나라 농업국가 미래의 전망은 밝을 것입니다.

 

 

4-H 육성 목적은 지덕노체 4-H 이념과 네잎클로버의 숭고한 정신을 바탕으로
공동체 체험활동을 통해 협동심을 기르고 이웃에 봉사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참 의미를 실천하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충남의 4-H는 행복한 충남을 위한 영농인 후계자 양성과
3농혁신 주체로 청년 리더자를 키우는 데 있습니다.


농업의 세계 개방화 시대에 대처하는 적응능력과 다양한 체험을 통한
국내농업의 국제 경쟁력 제고와 국외 농업현장을 탐방하고
국가 농업 경쟁력을 향상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일환으로 작년에는 충남학생 4-H회원 해외배낭 농업체험활동이 있었습니다.
충남 4-H 경진대회에서는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등의 활동경연대회가
충청남도농업기술원에서 있었습니다.

 

 

2박 3일 동안 도농교류 체험을 함께할 이은영 농촌 지도교사의 안내 말씀에
새로운 환경의 도시 체험에 들뜬 학생들은 소지품이 들어 있는 배낭을 소지하고
지도교사의 말씀에 귀를 쫑긋 기울입니다.

 

충남의 4-H 회원 청소년들은 부푼 미래의 꿈을 안고 대형버스에 탑승하여
도농교류 이색체험 장소로 떠났습니다~~
청소년들의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살기 좋은 농어촌을 건설하는데 큰 밑거름이 될것으로 봅니다.

 

4-H 활동보고서에 나온 생명존중의 마음에 실린 글을 소개합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먼 길을 갈때, 여러 컬레의 짚신을 마련해서 떠났습니다.
그 중 반은 오래 신을 수 있도록 단단하게 삼은 '십합혜'이고,
나머지는 느슨하게 삼은 '오합혜' 였다고 합니다.


튼튼하고 오래 신을 수 있는 십합혜만 가지고 떠나는 것이 실속 있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큰 길을 걸을 때는 십합혜의 촘촘한 바닥의 짚신을 신고,
산길에서는 오합혜의 느슨한 짚신으로 갈아 신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요?

 
산길에는 개미 같은 작은 벌레가 많으므로 밟더라도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느슨한 신발을 신었던 것입니다.

 
불편한 줄 알면서도 두 가지 짚신을 마련하여 산속에 기어다니는 보잘것 없는
벌레의 목숨까지도 배려한 선조들의 다뜻한 마음씨에 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강 미 애(충남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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