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10여 년 전 설악녹색연합의 박그림 선생님과 함께 설악산에서 산양의 발자국을 찾아다니던 지인은 비탈길에서 발이 미끄러지면서 이렇게 살려 달라 외쳤다한다. 다행히 구조된 그녀는 그날 밤 박그림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한다. “나는 그 살려달라는 외침을 밤마다 듣습니다. 처음엔 환청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산양의 목소리였어요.”
이제 설악산 정상에 케이블카가 들어선다고 한다. 지금보다 수백 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산 정상으로 실어 날라지고 그들의 발자국이 온 산을 헤집고 다니게 되면 설악산의 산양들은 절멸의 위기에 처해질 것이다. 며칠 전 깊은 산길을 걷다가 바위에 동물의 똥 같은 것이 예쁘게 자리 잡은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 옆에는 깨진 유리조각하며 버려진 종이컵, 먹다 버린 비닐 팩들이 또 있었다. 동물들의 발걸음은 길을 완성하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은 길을 망치기 마련이다. 20년 전의 툇골, 10년 전의 지암리를 기억하시는 춘천 분들은 더 이상 여름철에 툇골과 지암리로 피서를 가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계곡들이 너무 많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설악산 대청봉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는 순간, 대청봉은 더 이상 대청봉이 아닌 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는 여든을 바라보는 부모님이 계시고 무릎관절염이 있으신 두 분이 대청봉 정상에 쉽게 가실 수 있다면 자식된 도리로 너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설악산을 망가트려야만 가능한 일이라면 부모님을 모시고 차라리 동네 뒷산을 오르겠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자들이 노약자와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며 그 뒤에서는 돈을 세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를 추진하는 회사의 주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조카들이라고 한다. 한해평균 영업이익이 46억. 그래서 환경부에서 2년 간격으로 두 번이나 부결시켰던 일이 박대통령의 한마디에 승인되고 말았다. 이렇게 대놓고 뻔뻔한 일이 정말 정상인가 싶다. 그래서 나에게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하는 소리가 산양의 소리만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비정상적인 한국사회에서 내쫓기는 사람들. 비정규직으로 일터에서 내쫓기고 고향에서 내쫓기고 송전선 아래서 신음하는 밀양과 횡성의 주민들. 그렇게 내쫓기진 않았다하더라도 언제 내쫓길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 설악산 산양의 울음소리는 그 소리와 닮았다. 이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구석으로 내몰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산양이 사라진 세계에서 정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설악산에서 산양에게 벌어질 일은, 결국 한국사회에서 약자들에게 벌어질 일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산양의 울음소리를 듣는 일은, 하나도 신기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고통스런 울음은 애초에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 양창모 (춘천 녹색평론 독자모임)
(웹자보는 춘천시민연대 김진아 간사의 작품입니다.)
첫댓글 좋은 글과 강좌 안내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고민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