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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벽을 가로지르며 고 박무택씨의 시신으로 향하고 있는 휴먼 원정대 대원과 셰르파.
그리고 같은 날 오후 2시30분경 다음 날 정상 등정을 위해 C3(8,300m)에 올라온 선배 백준호씨(당시 37세)는 후배들의 조난을 접하고 오후 8시경 단독으로 구조를 떠났다.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들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버리고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났다.
그리고 1년 뒤인 3월14일 우리 계명대 원정대(대장 손칠규)는 박무택씨와 여러 차례 고산등반을 해왔던 엄홍길(45·트렉스타 이사) 등반대장을 포함, 대원 7명과 함께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히말라야로 떠났다.
시신 수습 마치려면 24시간 이상 걸려
4월29일 일기 악화로 BC(5,200m)까지 하산한 엄홍길 등반대장은 BC에서 이들의 운행을 진두지휘했다. 현재 BC에는 손칠규(52·내륙말생산자협회장) 대장과 엄 등반대장을 비롯해 대원 14명이 모처럼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엄 등반대장이 BC에 내려온 이래로 매일 식사 메뉴가 달라져 대원들의 입맛을 돋웠다. 특히 5월2일 점심의 만두국은 그의 별명인 '도봉산 주방장'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후식으로 수박이 나와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곳 초모랑마 BC는 차량운행이 가능해 신선한 야채와 육류를 언제든지 주문할 수 있으며 수박 1통은 우리 돈으로 약 10,000원을 받는다.
현재 BC는 기상 악화로 모든 원정팀이 하산해 모처럼 웅성거린다. 게다가 5월1일 저녁에는 BC에서 초모랑마 정상을 거쳐 다시 BC까지 30시간에 돌파하겠다는 이탈리아팀이 파티를 열어 우리 팀 대원을 초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대원과 셰르파들이 밤이면 감기에 시달리고 있어 큰 걱정이다. 낮에는 기온이 영상 15℃를 웃돌지만 밤이면 기압이 낮아지고 텐트 안의 기온도 영하 10℃를 밑돈다. 게다가 공기마저 건조해 대원들이 밤이면 기침으로 합창을 한다. 다음 주 서울에서 응원하러 방문하는 인편에 감기약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최종 목표인 시신 수습 D데이를 17일로 결정했다. 8일 아침 식사를 마친 엄홍길 등반대장은 "현재 C3에 옮겨 놓은 물량이 적어 물량 운반이 한 번 더 필요하다"며, "이를 감안할 때 17일이 적기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BC에 내려와 사흘간 휴식을 취하던 셰르파 16명은 이길봉(38·설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 김인환(28·계명대 OB) 대원과 함께 시신 수습을 위한 마지막 작업을 위해 ABC(6300m)로 출발했다. 이들은 9일 ABC에서 하루를 쉬고 10일 셰르파 10명이 노스콜(7,100m)로 이동해 11일 산소통과 텐트, 식량 등 필요한 장비를 C3까지 운반한 뒤 곧바로 ABC로 하산했다.
모든 셰르파가 ABC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BC에 있던 엄 대장을 비롯한 장헌무(35·상주레저종합백화점 대표), 김동민(23·계명대 경제학과) 대원과 MBC 임채유(45·시사교양국) PD, 이원영(43·기술제작국), 박창수 카메라맨은 12일 ABC로 진출한다. 이들은 ABC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14일 본격적인 등반에 나서 16일 C3에 오르고, 17일 새벽 시신 수습을 위한 최종 등반을 하게 된다.
▲ 노스콜을 오르는 대원들. 눈사태 위험이 높은 구간이다.
엄 등반대장 일행보다 30분 먼저 C2에 도착한 셰르파들도 거센 바람 때문에 텐트의 폴도 세우지 못하고 노스콜로 내려왔다. 그 동안 받아 본 위성 기상정보는 18일 오후부터 바람이 잦아들 것으로 알려졌으나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 기상정보에 따라 진퇴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엄 등반대장은 목이 쉰 데다 허리 통증까지 호소하고 있어 캠프의 분위기도 가라앉은 상태다. 결국 20일 정오승(43·광주산악연맹), 이길봉, 김동민 세 대원과 셰르파들만 ABC에 남긴 채 20일 오후 5시 BC로 하산했다.
D데이가 속절없이 늦춰지고 있다. 변덕스러운 기상 때문이다. 이 달 말께나 가능할지도 모른다. 날씨는 춥고, 대원들은 하늘을 바라보기가 고통스럽다. 21일 6개 등반대 대원 17명과 셰르파들이 정상을 밟는 데 성공했다. 이 날 오전 정상 부근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지만, 오후 들어 먹구름이 끼면서 눈보라가 몰아쳐 하산에 애를 먹었다.
휴먼원정대는 이들의 쾌거를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정상을 밟고 사진 찍는' 반짝 등반이라면 날씨가 잠시만 좋아도 가능하지만, 시신 수습은 시간이 걸려 최소 24시간은 온화한 기상이 지속돼야 한다. 그래도 다른 등반팀을 안내했던 셰르파 짐바가 고 박무택씨의 시신 위치를 다시 확인해줬다. 그는 박무택씨와 세 번 원정을 다녔으며, 지난해에는 박씨가 사고를 당했을 때 하산길에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 베이스캠프에서 고 박무택씨의 1주기 추모제를 지내는 대원들.
올해 초모랑마는 예년과 달리 하루 이상 기상이 좋았던 날이 5월 초밖에 없었을 정도로 오전과 오후가 전혀 다르게 바뀌는 날씨를 보이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받는 기상정보를 보면 6월부터는 몬순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시신 수습작업은 5월 내에 끝내야 한다. 현재 휴먼원정대가 잡고 있는 D데이는 29일 전후로 예상돼 원정대 일정이 상당부분 늦춰지게 됐다.
올 봄 시즌 초모랑마는 대부분의 바람이 북풍이나 북서풍이어서 남측보다 이곳 북측 기상이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티벳쪽에서 등반하는 대부분의 원정대가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엄 등반대장과 MBC 임채유, 이원영씨는 목이 부어 인근 상업대 팀닥터를 찾아 치료를 받기도 했다. 특히 엄 등반대장은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상태다.
눈보라와 강풍 때문에 세컨드스텝 위 돌무덤에 안치
원정대가 마지막 시신수습 등반을 위해 23일 BC를 출발해 ABC에 도착했다. 엄홍길 등반대장과 박창수 카메라맨, 장헌무, 전경원(32·계명대 OB) 대원은 이 날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BC를 출발해 ABC에 있는 정오승, 김인환, 김동민 대원과 합류했다. 이들은 24일 하루 휴식을 취한 후 노스콜(25일)~C2(26일)~C3(27일)를 거쳐 28일 시신수습을 위한 마지막 시도를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21일 정상을 등정한 후 실종됐던 슬로베니안 산악인은 22일 정상을 밟은 티벳 등반대에 의해 세컨드스텝 위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77일째. 드디어 시신수습 선발대가 초모랑마의 턱밑 8,750m 지점에서 로프에 매달린 고 박무택씨를 발견했다. 29일 오전 9시쯤, 그러나 박씨의 시신은 마치 '얼음고치' 상태로 100kg이 넘었다. 3m 길이 로프를 당겨도 꿈쩍하지 않는다. 절벽에 들러붙어 있는 것이다.
"자일을 타고 내려가서 피켈을 이용해 떼어내. 시신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 C3를 출발, 해발 8,750m 지점으로 향하는 대원과 셰르파들.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고 정상 부근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히말라야 특유의 변덕스러운 날씨다. 운구하던 셰르파들이 "무겁고 길이 평탄하지 않아 하산이 힘들다"고 소리친다. 시신을 묶은 로프를 잡고 보조를 맞춰 내려오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엉금엉금 내려오기를 2시간. 서드스텝(8,700m) 아래에서 엄 대장 일행과 만났다. 겨우 100m 내려온 상황이다. 그런데 눈보라와 함께 강풍이 몰아친다. 오늘 중 C3(8,300m)까지 가야 제대로 하산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세컨드스텝 50m 절벽 구간이 문제다. 바로 백준호, 장민 대원이 실종된 구간이다. 날씨가 좋아도 힘든 상황인데, 박무택의 시신을 운구하면서 안전하게 하산하기는 무리다.
"안 되겠다. 여기서 장례를 치른다. 빨리 돌과 바위를 모아라!"
▲ 북릉 루트 최난 구간으로 알려진 세컨드스텝을 오르는 대원과 셰르파들.
"베이스캠프 나와라. 운구가 불가능하다. 돌무덤을 만들어 장사를 지내겠다."
BC는 순간 '아-'하는 탄식이 나왔다. 한쪽에서는 "山사람이 산에 묻히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등반로 바로 옆이니 후배 산악인들이 초모랑마에 오를 때 만날 수도 있고" 하는 말도 나왔다. 엄 대장은 박씨의 한국 유족에게 전달하지 못한 것도 그렇지만, 두 대원을 찾지 못해 마음이 너무 무겁다고 했다.
어렵사리 구성된 휴먼원정대. 게다가 기상 악화로 수습 일정마저 차질을 빚어 D데이가 두 차례나 연기됐다. 그러나 6월 초까지 미룰 수는 없었다. 악명 높은 몬순이 시작되는 것이다. 원정대는 서드스텝 아래에서 엄 등반대장이 이끄는 후발대와 합류, 세컨드스텝 바로 위에 돌무덤을 쌓고 박씨의 장례를 치른 뒤 C3으로 귀환했다. 원정대는 박씨의 시신수습에 앞서 8,450m 부근에서 실종된 백준호, 장민씨의 시신을 수색했으나 눈이 두껍게 쌓여 있는 바람에 찾지 못했다.
시신수습을 성공적으로 마친 2005 초모랑마 휴먼 원정대는 철수 하루 전날인 6월4일 오전 11시 BC에서 위령제를 끝으로 원정의 막을 내렸다. 대원과 셰르파 등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초모랑마 등반에서 숨진 산악인들의 묘비가 모여 있는 메모리얼 광장에서 열린 위령제는 앞서 간 다섯 명의 계명대학교 산악인을 위한 위령제와 묘비 제막식도 함께 가졌다. 제막식은 짙은 구름으로 초모랑마 정상은 보이지 않고 하늘에는 간간이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거행됐다.
▲ 베이스캠프에서 추모비를 만들고 있는 대원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유족들의 물품-아내의 편지, 가족사진, ROTC 임관 반지(백준호), 등산화, 재킷, 아내의 편지(박무택), 어머니가 뜨신 스웨터, 배냇저고리, 부모님의 편지(장민)-등을 소각하고 묘비 아래 묻는 의식도 가졌다.
백준호, 박무택, 장민 대원이여 이제 편히 잠드소서
원정대는 C2와 C1에 올려놓은 모든 장비를 BC로 끌어내리고 철수 하루 전인 6월4일 오전 지난 해 정상 부근에서 숨진 대원 3명과 1997년 운명을 달리한 최병수씨(계명대 OB), 그리고 지난 5월8일 원정대를 격려하기 위해 BC까지 왔다가 라사에서 폐수종으로 세상을 떠난 한승권씨(49·계명대산악회 OB회장) 등 다섯 명에 대한 위령제를 거행했다.
'죽을 줄 알면서도 그들은 왜 히말라야로 떠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들은 히말라야가 좋아서 찾았지만 삶과 죽음이 무서울 정도로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히말라야의 차가운 벽에서 매일 힘겨운 외줄타기를 하면서도 어린 후배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이들은 인간이 이상이라고 여기는, 이루려고 해도 이루지 못하는 목표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그러므로 황량하고 척박한 히말라야에서 자신의 정열을 바친 먼저 간 산악인들의 정신을 받드는 것은 이제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고 백준호, 박무택, 장민 대원이여! 이제 이승의 모든 한(恨)일랑 접어버리고 편히 잠드소서.
글 전경원 원정대원
사진 휴먼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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