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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9
지금 우리 살고 있는 사회를 신용사회(信用社會)라고 말합니다.
믿음을 주고 받으면서 그 믿음을 바탕으로 얽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행이나 금융회사에서는 신용을 관리하는 카드를 만들어서
신용이 있는 사람, 즉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줍니다.
현재 시골에 살고 있는 나이 많은 노인들 말고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금융회사의 신용카드를 몇장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진 재산이 없어도 그동안 쌓은 신용만 좋으면 다소간의
자금을 융통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용을 상실하여 신용불량자가 되어 버리면 어디에 얼굴을 내밀 수 없고
발 붙일 곳이 없는 냉정한 사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신용은 잃어서는 않될 중요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신용이 있고 믿음이 있는 것이 큰 재산인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신용이 있어야하고, 이 믿음이 엄청난 큰 재산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미쁘신 분이라고 칭송하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미쁘다,라는 말은 믿을만하다, 믿음성이 있다, 진실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미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이시고, 믿음성이 있는 분이시며, 진실무위(眞實無僞)한
분이신 것은 범죄한 인생을 위하여 아들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 놓으실 것을 태초부터
약속을 하시고 때가 되매 그 약속을 따라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성자 예수님도 성부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세상에 오셔서
말씀 한 마디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 다 성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마지막 운명직전에 "다~ 이루었다" 하심도 아버지의 약속하신바를
지키고 성취했다는 뜻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함은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반드시 역사를 하고 계시므로 삼위 하나님은 진실로 미쁘신 분들이십니다.
그 미쁘신 주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약속은 다~ 이루어졌고,
오늘도 믿고 의지하는자 가운데서 "네 믿음데로 될찌어다"고 이루고 계시며
성경에 주님의 마지막 남아 있는 약속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미쁘신 우리 주님께서 이 약속을 이루시려고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기 때문에 아무리 세상이 살기에 힘이 들고 어려워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구름타고 다시 오실 저 하늘을 오늘도 바라보고 삽니다.
죽을 일이 생겨도 다시 오신다는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신용사회인 세상에서도 중요한 자산임에 틀림이 없지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신뢰와 믿음은 그보다 더 절대적인 자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미쁘심을 믿고 사는 사람을 찾고 계시며
그 믿음이 온전한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 앞에도 신용이 있는 사람을 원하신 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주여~주여~내가 믿나이다, 하면서도 믿는데로 살지 않는 사람의 믿음은
주님이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믿는바데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을 하는 신용의 사람을 원하십니다.
신용은 한 두번의 믿음의 행위를 가지고 얻을 수 없고
진실하고 참된 모습을 계속 보이면서 신뢰가 쌓여질때
거기에 신용이라는 자산이 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용의 사회에서 신용을 잃어 버리면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도 믿음과 신용을 잃어 버리면 인생 전부를 다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믿음을 잃어 버리면 영혼까지 나의 인생 전부를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잃어 버리고 귀중품을 잃어 버리는 일은 혹 있을찌라도
믿음을 잃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 신용을 잃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인생 빈 껍질뿐인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도 신용을 쌓아가야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의 주이신 하나님과 주 예수님 앞에도 신용을 쌓아 가기 위하여
오늘도 계속하여 신앙의 정상 모리아 산을 향하여 올라가야할 것입니다.
9절~"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순간적인 기분을 따라
예, 드리겠나이다, 라고 대답을 해놓고 며칠 지나면서 마음도 식어버리고
결심도 무너져서 실행을 하지 못했더라면 하나님께 신용을 잃어 버렸을 것입니다.
"얘~ 나는 말만 뻔름하게 잘하는 너 같은 사람은 도무지 믿을 수 없노라~"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신용을 다시 쌓을 려고 한다면 처음보다 더욱 힘이 듭니다.
신용불량자라는 딱지가 붙은 사람은 그 이미지를 뗄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번 신용을 잃었다고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완전히 버리시지는 않지만
많은 괴로움과 연단을 통해서 믿음성 있고 신용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현재 국가에서도 신용 불량자들의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신용 불량자들은 더 의심하고 더 조사하기 때문에
은행이나 금융기관에서 쉽게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용이 재산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신용을 쌓아가고 있는지를 보십시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 이르러 하나님의 명령데로 단을 쌓았습니다.
그럴때에 하나님께 대한 아브라함의 신용도 점점 쌓여지게 되었고,
자식을 번제로 불태울 장작을 하나 하나 쌓을때 아브라함의 신용도도 더 올라갔으며
자식에 대한 인간의 애정을 버리고 독자 아들을 결박을 해서 단에 올려 놓을때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신용은 최고도로 올라가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때부터 마음의 자세가 정말 진실로 드리겠다는
자세였으니, 사람앞에도 신용이 있는 사람은 신용을 지킬 마음 자세가 다릅니다.
그러나 마음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처음에는 잘 지키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 바탕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같이 처음부터 순종하여 드리려는 마음의 자세 곧 의지가
매우 중요한 것은 마음의 의지가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을 통해서 신용을 얻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쌓았던 제단이 돌제단이었다면 돌맹이 하나하나 쌓을때마다 자식에 대한
아픔이 있고, 장작 하나하나를 올려 놓을때 이 장작불에 내 자식이 죽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을 것이지만 묵묵히 쌓아 올라갈때 아브라함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흡족하시고 기쁘셨을까! 아브라함에 대한 깊은 신뢰가 쌓였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신용도 믿는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순종하여 갈때에
쌓여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어떻게 순종하는지
복을 주어도 되는지! 복을 맡겨도 될만한 사람인지 다림줄로 달아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신용을 얻어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무런 부연 설명없이 아브라함이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았다고 한 데목을 다시 짚어봅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요, 115세 연로한 노인 아브라함이 혈기 방장한 17세의 이삭을
결박하여 묶을 때에 칼에 찔리고 불에 태워 죽을 것을 알고 이삭이 반항을 하여 결박을
당하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억지로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아무런 반항없이 순순히 결박을 받았기에 번제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지구상에 이런일은 인간 사회에서 아브라함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일입니다.
어리고 젊은 아들이 늙은 아버지가 묶을 때에 순순히 손을 내밀어 결박을 당하는것은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않됩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순종을 받아낸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말에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아버지로 통해서 들은 하나님 말씀에 죽을 자리에서도 순종을 한것은
아브라함에게는 상급이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독자 아들 이삭을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을 하므로 제단에 올려 놓은 아브라함!
아버지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듣고 순순히 죽는 자리까지 순종한 이삭!
이 두 부자를 보시는 하나님은 기분이 얼마나 좋으시고 기뻐하셨을까요!
하나님 앞에 쌓여진 신용도는 최고의 VIP였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 부자를 만세에 일컫는 믿음의 조상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들이 올라간 믿음의 길, 신앙의 코오스로 계속하여 등반을 하게되면
우리의 신용도도 오르고 또오르게 될 것입니다. 아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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