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글에서 카페지기가 九九消寒圖에 대해 잘 소개해 주셔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알고 싶은 게 있어서 관련 내용을 찾아봤더니 점점 흥미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공부가 될 만한 게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덧붙일 게 별로 없긴 하지만 약간 미진한 부분도 있는 듯해서 몇 가지 보충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보충이라고 해야 <百度>(baidu)에서 관련 항목을 찾아 요약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九九消寒圖는 원래 중국 북방의 한 민속으로서 오래 전부터 전래되던 “數九”(9를 단위로 셈함) 풍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數九”는 적어도 6세기, 즉 남북조시대에 이미 존재했다고 합니다. 九九消寒圖는 이 “數九”의 풍속에다 날씨가 추운 북중국 사람들의 “봄맞이” 염원을 결합시켜 또 하나의 민속으로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동짓날부터 "9일을 한 단위"로 날짜를 계산, “9개의 9일”(九九)을 모두 헤아리면 총 81일이 되어 겨울이 모두 지나간다고 보는 것입니다. 날짜를 카운트하는 방식은 글자, 그림, 도형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국인의 발상과 사고가 담겨 있어서 이를 일별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한편, 동지부터 날짜를 起算하는 것은, 동짓날이 되면 陰이 다하고 陽이 시작된다고 보는 고대 중국인의 관념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오랜 옛날에 한 해의 시작을 동지부터 잡았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날짜 계산을 위한 圖案 방식은 크게 ‘畵九’와 ‘寫九’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매화(꽃)를 그리는 것이고, 후자는 문자를 쓰는 방식입니다. 이 외에 81개의 동그라미에 점을 하나씩 찍어가는 방식도 있습니다. 우선, ‘畵九’, 즉 매화를 그리는 방식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매화나무 가지 9개에 각각 하나의 흰 매화 송이를 그리되, 매 송이마다 각각 9개의 꽃잎을 그려 꽃잎 하나를 1일로 간주하여 “매일 꽃잎 하나”에 색을 칠하여 날짜를 세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매화나무 가지 9개에 각각 9개의 흰 매화 송이(白梅)를 그려 (즉, 매 송이를 1일로 간주하므로 모두 81개 송이를 그림) 하루에 한 송이씩 색을 칠해가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畵九’는 명대에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원대까지 소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원대 楊允孚의 『灤京雜詠』卷下에, “試數窗間九九圖,餘寒消盡暖回初. 梅花點遍無餘白,看到今朝是杏株.”라는 시에서 ‘畵九’의 풍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楊允孚는 이 시의 自注에서 그 의미를, “冬至後,貼梅花一枝於窗間,佳人曉妝,日以臙脂圖一圈,八十一圈既足,變作杏花,即回暖矣.”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自注는 대략 “동지 후 매화 그림을 창가에 붙여놓고 아름다운 여인이 아침에 화장하듯, 매일 그림에 연지를 하나씩 81개가 되도록 찍어 바른다. 다 마치면 살구꽃으로 변하게 되니 이는 곧 따뜻한 (봄이) 돌아오는 것이다.”라는 내용입니다.
그 다음, ‘寫九’는 청나라 道光帝(재위 1820~1850) 때 출현하여 궁정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鷗浦의 앞글에 잘 설명되어 있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그런데 9획인 글자를 모아 “亭前垂柳珍重待春風”의 맨앞 글자부터 한 획씩 써나갔다고 하는데, 첫 자인 ‘亭’ 대신 ‘庭’이 쓰여진 실물도 다수 있습니다. 물론 ‘庭’을 써도 전체의 의미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 여담 ; 그런데 왜 10획인 ‘庭’을, 9획인 ‘亭’ 대신해서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확인해본 결과 우리나라 자전에는 ‘庭’이 분명히 10획으로 되어 있지만, 중국의 자전에는 9획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차이는 ‘庭’자에 들어 있는 “廴”이 한국 자전은 3획, 중국 자전은 2획으로 보기 때문에 ‘庭’이 한국 자전에서는 총 10획, 중국 자전에는 총 9획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庭’을 9획으로 보는 중국에서는 역시 9획인 ‘亭’을 대신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셈입니다. 오히려 일반인들은 ‘亭’(정자)보다 ‘庭’(뜰)이 가까이 있고 친근하다고 생각하여 바꿔 썼을지도 모릅니다.)
‘寫九’는 일견 매우 단순한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일정함, 꾸준함, 인내심이 없이 계속하게 되면 완성 후에 영 볼품없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글자를 완성하는 동안 (81일 동안) 일정한 필치를 유지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요. 기쁘거나 슬프거나, 한가로우나 분주하거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술을 마시거나 맨 정신이거나 등등 “一筆”을 유지해야 하고 먹의 濃淡까지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니 실은 고역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寫九’ 방식에는 위에 말한 “亭前垂柳珍重待春風”만 쓰는 게 아니었습니다. 즉 9획인 글자를 9개 조합해서 내용상 “봄맞이”(迎春)의 의미를 나타내면 되기 때문입니다. 또 후에는 가장 아취가 있다고 평가 받는 九體對聯 방식의 九九消寒圖도 등장합니다. 이것은 每聯 9字, 每字 9획,매일 上, 下의 각 聯에 1획씩 채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上聯에 “春泉垂春柳春染春美”라 쓰고, 下聯에 댓귀로 “秋院掛秋柿秋送秋香”이라고 쓰는 식입니다. 이를 “九九消寒迎春聯”이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동그라미에 점을 찍는 방식은, 큰 종이를 우선 9개의 격자로 구획한 다음, 다시 1구획마다 9개의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이 동그라미에 하루에 하나씩 색을 칠해가는 방식입니다. 다 채우면 색칠된 동그라미는 81개가 되겠죠. 매우 단순한 방식이므로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유행합니다.
그런데 이상의 九九消寒圖는 한 가지 색으로만 그리거나 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의 필획을 쓰거나 매화를 그리는 데 쓰는 색을 그 날의 날씨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맑은 날은 紅, 흐린 날은 파란색, 비가 온 날은 녹색, 바람이 분 날은 황색, 눈이 온 날은 백색이라는 식입니다. 그리고 민간에서 유행한 <點九圖>의 畫法 (동그라미 그리는 방식)의 경우는 동그라미 하나마다 5등분해서 “아래 점은 흐림, 위 점은 맑음, 왼쪽 점은 바람, 오른쪽 점은 비, 가운데 점은 눈” 하는 식입니다. 날씨를 세밀하게 기록할 수 있는 용도로도 쓰였던 것입니다.
九九消寒圖, 특히 畫九、寫九가 널리 유행했던 요인 중 하나는 그것이 문인, 묵객 등의 高雅한 文字 遊戲 수단의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九九消寒圖는 日曆의 성격도 있기 때문에 농사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즉 매일 날씨의 변화를 표시했기 때문에 이 변화의 추이를 잘 파악하면 봄 이후의 날씨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農事曆의 기능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동에게 識字, 서예, 역사, 자연 상식 등을 교육하는 자료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九九消寒圖는 춥고 긴 북중국의 겨울날,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소박한 염원만을 표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와 관련, <九九歌>도 각 지방마다 불려졌는데 이를 잘 분석하면 각 지방의 문화와 풍속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오늘날도 중국에는 옛 것을 모방하여 소위 ‘현대판 九九消寒圖’도 더러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옛날의 그것과 달리 아취도, 기능도 찾기는 어렵습니다. 재미 삼아 오늘날에도 부활시켜봄직도 하나 생활 패턴이 현저히 달라진 현대인들에게 본래 九九消寒圖 작성에 필수적인 꾸준함, 인내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 간단히 쓴다는 것이 길어졌습니다. “百言不如一見”! 위 설명에 관한 사진과 그림들을 골라봤습니다.
첫댓글 역시....
눈 앞이 훤해지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澹愚齋 선생의 내공이 항상 부럽습니다.^^
언제라도 소인의 부족한 愚文을 補訂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신 말씀을 또 이렇게 하시는공. 내공? 당치 않소이다. 그냥 요약, 정리한 것일 뿐이외다.
拙文일지언정 어딘가에 올리려니 관련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게 되더군. 덕분에 많은 공부가 되었나이다.
요즘들어 중국의 행세하는 사람들이 옛것에대한 우월감을 드러내며 하는 행위 를접하게 되는데 있는집에서는 미술선생모셔다가 교양과목처럼 하더군 처음에 나는 학교에서내준 과제물인줄 알았다니까!
중국이 엄청 변하고 있구먼...
졸부들이 넘쳐나고 있는 중국에서 "小皇帝"를 위해서라면 미술 과외쯤이야 아무 것도 아닐테지....
數九,畵九,寫九등 전혀 몰랐던 걸 가르켜 주어 감사.봄은 참고 기다려야 오는 구먼.
옳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