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김구는 신분적으로 왕족과 하층민이라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신분적 차이는 두 사람의 정치적 정향까지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 이승만은 왕족이라는 과도한 우월감으로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곤 했다. 그는 자신이 왕실의 후손임을 강조함으로써 멸망한 왕조에 대한 민중의 전근대적 연민에 호소했다. 그가 평소 ‘왕손’, ‘나의 백성들’, ‘과인(寡人)이……’ 등의 용어를 즐겨 썼다고 하는 사실은 그의 외형이 어떠했든 간에 그가 유교적 권위주의에 얼마나 깊이 매몰되어 있었던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김구는 자신의 신분적 열등감으로 자신을 낮추고 자제하는 겸손한 정치 정향을 보였다. 1919년에 상해(上海) 임시정부를 방문하여 내무총장 안창호에게 문지기를 자청한 것은 평생 그의 정치 성향을 규정했던 상놈이라는 열등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리고 후에 임정의 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이 그에게 국무령 취임을 권유했으나, ‘해주 서촌(西村)의 일개 존위(尊位)의 아들인 미천한 사람이 한 나라의 원수가 된다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위신에 큰 관계가 있다’고 사양했던 것에서도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그는 1927년에 이르러 국무령에 취임했다.…반면에 김구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한 것이 전부이다. … 그렇기 때문에 그의 정치성향은 이승만에게서 볼 수 있는 자신감과 엘리트 의식은 찾아볼 수 없는 대신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려는 강직한 마음은 언제나 강하게 나타나서 그의 정치 정향을 규정하는 주요 인자가 되었다. 따라서 김구의 신분적·학문적인 열등감은 왕족 출신인 이승만의 우월감이나 엘리트 의식과 비교하여 좋은 대조가 된다. 이러한 대조는 그들의 관계를 무언중에 규정지었는데, 김구는 해방정국에서 이승만과 정국 주도권을 두고 경쟁 관계였으면서도 자신의 노선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그에게 제1인자의 자리를 양보하고 2인자로서 안주하는 듯이 보였다.신복룡, 『한국분단사연구 1943~1953』, 한울아카데미, 2003, pp.360-364
중국 관내에서의 좌우충돌에는 세대 간의 사상적 갭도 작용하고 있었다. 한국독립당의 지도층은 19세기 후반 또는 19세기 말경에 유년, 청년시기를 보내고 전통적인 지적 성장을 하여, 일면으로는 위정척사파적인 기질도 갖고 있는 원로들로서, 양반계급 출신이 많았으며, 근대교육을 적게 받은 편이었다. 그런데 젊은 사회주의자들은 지나치게 급진적인 경우가 적지 않았고, 독립운동의 선배에 대해 어른 대접을 잘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임시정부 측의 원로들은 김원봉 등이 나이가 젊고 충동적이며 환상에 차 있고 언행이 너무 편격(偏激)하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중요시하지 않았고 젊은이들은 노인들한테 싫증을 내면서[62], 그들을 ‘봉건영수’, ‘민족 파시스트’ ‘선비적 국수주의자’로 간주하였고,국수주의를 배격하자고 외쳤다. 한독당의 원로들은 강렬한 충군애국의 관념을 갖고 한국의 고유문화 발양을 크게 중시하였다. 그리고 서양문화에도 반대하였고, 더더욱 공산주의 사회주의에는 반대하였으며, 소련과의 연합도 반대하였고, 반제반전의 일본민중과 연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반대하였다. 그들은 친중국적이어서 중국에서 유교 문화의 훈도를 받아온 것을 감사해 하고, 중국의 원조를 더욱 많이 받아, 임시정부가 영향력을 확대하면, 다른 나라를(소련 : 필자) 배경으로 한 독립적인 기구(일종의 임시정부 : 필자)는 생겨나지 못할 것이라고 장개석정부에 언명하였다.[62]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었던 김성숙은 인터뷰에서 “그 임시정부의 이시영, 이동녕, 박남파, 박정일, 조청사, 이런 사람들 기가 막히거든요. 고루하기가 짝이 없고, 아직도 양반 상놈을 굉장히 가리고”라고 말했다(이정식 채록 김성숙 회고록 「한국현대사, 중도좌파의 비극적 종말」, 『신동아』 1988. 8, 364쪽).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해방후 민족국가 건설운동과 통일전선』, 역사비평사, 1991, pp.174-175
당시 해방정국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였습니다. 실제로 이승만, 김구 등이 모두다 정치적으로 친일파 숙청에 미온적이였던 까닭은 모두 다 그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ps. 물론 이런 일본식 권위주의나 일본식 재벌주의 등은 지금 우리사회에 일정부분 문제를 가지고 있는것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서 오는 디메리트가 근대화에 성공한 메리트에 비해면 훨씬 더 크죠.
2. 신념윤리에 입각해서 말하는 것은 반대편도 마찬가지죠.//-by 크웨사
제가 상대방이 신념윤리에 입각해서 말한다고 한것인 기본적인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사회의 주류들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연구나, 근거, 통게가료를 들이대면 아하 그렇구나 하고 이논쟁은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계속 이런 근거에 대한 노력은 없이 친일파가 아직도 사회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만 펴고 있으니 문제가 있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