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눅 8: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을 들으나 관심이 없는 부류에 대해서는 어제 언급했었고 사실 여러분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안계시니 그런 경우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경우는 ‘깨닫지 못한다’고 했을 때 말씀을 듣고 깨닫길 원하나 당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경우를 뜻할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런 경우, 내가 이해하지도 못한 말씀이 내 삶에서 역사하거나 열매를 맺을 수는 없겠지요.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해는 잘 안 되지만 믿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막 4: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막 4: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막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내가 아버지께 농사일을 배운다고 해 봅시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이렇게 농사를 지으라고 말씀하셔서 그 말에 순종하여 씨를 뿌립니다. 그 씨가 어떻게 싹을 틔우고 이삭이 되고 나중에는 어떻게 충실한 열매를 맺는지 그 과정은 이해가 안 되지만 아버지께서 시키는 대로 그 말씀에 순종하니 결국 싹이 트고 이삭이 발아한 뒤 곡식이 충실한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어제 설명한 새 마음에 믿음으로 말씀을 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4장 3절부터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길가를 설명하신 뒤 26절부터 싹, 이삭, 충실한 곡식의 비유를 드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길가는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데도 지적으로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단에게 바로 빼앗긴다.’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시려고 바로 이어서 이 ‘싹, 이삭, 충실한 곡식’의 비유를 설명해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경우, 길가는 듣긴 들었으나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고 내 삶에 적용하지 않는 그런 말씀들이 아닐까 합니다.
마음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 이해가 안 되더라도 (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 생각과 달라서)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내 생각을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또 듣긴 들었고 깨닫기도 했으나 내 삶에 적용하지 않을 때 그것은 마치 말씀을 마음에 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재정의 원칙을 듣고 깨달았으나 실천하지 않는 것이 이런 경우가 되겠습니다. 적용을 안 하니까 당연히 열매가 없겠지요.
(약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복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그래서 말씀을 내 마음에 심는다는 것은 일단 1) 내 생각으로 동의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받아들이는 것과 2) 마음에 받아들인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안은 감정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이미 받은 선물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면(요 14:27) 말씀을 내 마음에 받아들인 것입니다. 또 그것을 삶에 적용한다는 것은 감정적인 평안이 없을 때, 그 말씀을 믿으며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나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나는 감정과 상관없이 성령의 열매인 이 평안을 누리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종류의 평안이 내 삶 가운데 30배, 60배, 100배로 열매를 맺는 것이지요. 또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경우에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적용입니다. 예를 들어, 헌금이나 봉사 같은 경우가 있겠습니다. 그 외 다른 말씀들도 이런 식으로 적용하면 됩니다.
오늘은 다소 애매하게 느껴질 수 있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조금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