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완 이야기)
발해(渤海)
통전(通典)에 이렇게 말했다.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이다. 추장 조영(祚榮)에 이르러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스스로 진단(震旦)이라고 했다. 선천 연간(현종 임자년)에 비로소 말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오로지 발해라고 일컬었다. 개원 7년(己未, 719)에 조영이 죽고 시호를 고왕이라 하였으며 세자가 대를 이었다.
(출전) 通典云, 渤海本粟末靺鞨, 至其酋祚榮立國, 自號震旦, 先天中(玄宗王子)始去靺鞨號, 專稱渤海. 開元七年(己未)祚榮死, 諡爲高王. 世子襲立(권1 기이1 발해)
(새김)
발해(渤海)는 지리적으로 요동반도와 산동 반도의 사이에 있는 바다를 말한다. 나라로서는 발해의 전신이 진국(震國)이고 그 전신은 말갈이었다. 대조영(大祚榮)이 698년에 세운 나라로서 15대 임금의 세계를 이루었다. 그 개략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고왕 대조영(698-719), 2. 무왕 대무예(719-737), 3. 문왕 대흠무(737-793), 4. □왕 대원의(793-793), 5. 성왕 대화여(793-794), 6. 강왕 대승린(794-809), 7. 정왕 대원유(809-812), 8. 희왕 대언의(812-817), 9. 간왕 대명충(817-818), 10. 선왕 대인수(818-830), 11. □왕 대이진(831-857), 12. □왕 대건황(858-871), 13. □왕 대현석(872-894), 14. □왕 대위해(895-906), 15. □왕 대인선(907-926)으로 이어져 왔다.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그 후손으로는 현재 협계 태씨와 영순(永順) 태씨가 있다. 영순 태씨는 경산시 남천면에 집성하여 살고 있다. 예천의 옥천서원에서 태두남을 비롯한 선조들을 배향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약 4천에 이르는 종친들이 살고 있다. 동사통감(東史通鑑)에서 대씨(大氏)를 태씨(太氏)로 고쳐 썼다고 한다. 백산 말갈족이 발해를 세웠다. 맥국의 말갈과 발해는 한 겨레이다(삼국지 위서 물길전). 맥국의 맥(貊)도 백산의 백(白)도 모두가 곰이란 의미소를 갖고 있다. 백산은 백두산인데 백두산은 달리 웅신산(熊神山)이라고도 말한다. 백(白)이 방맥(傍陌)의 반절이니 여기서 맥(陌)이 힘쓸 맥이라 하여 맥국의 맥과 같은 맥락으로 본 것이다. 신당서(新唐書) 발해전을 따르면, 발해가 건국 이후 말갈이라 하였다. 당에서 대조영을 좌효위대장군발해군왕(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과 홀한주도독(忽汗州都督)을 겸임, 비로소 말갈이란 이름을 버리고 발해로만 불렀다고 적고 있다. 마침내 말갈과 발해는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말갈이 세운 맥국도 발해와 그 맥을 함께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보면 말갈은 일명 물길(勿吉)이라고도 한다. 물길은 송화강 연안을 따라서 웅거하였던 여러 겨레들이다. 하면 물길의 물(勿)은 물(群) 곧 여럿이란 말이요, 길(吉)은 물길이며 더러 길리약 민족이 이동하여 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강길운 참조). 문자의 문화투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발해(渤海)의 ‘발(渤)’을 살펴보면, 형성글자로 핵심은 발(孛)이다. 여기에 물 수(水)와 힘 력(力)을 더한 형성글자이다. 발(孛)을 전문(篆文)으로 보면, 열매의 받침 꼭지 부분이 불룩 나온 모양을 이른 것이다. 달리 초목이 무성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발해만이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를 싸고 있는 바다로 그 모양새가 열매의 받침 모양으로 생겼다. 발생론적으로 보면, 물(水)의 힘(力)으로 이루어졌으니 황하와 요하에서 내려오는 토사의 퇴적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열매가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로 보인다. 이두로 읽자면 발(渤)-발/벌(뻘):벋/받으로 물로 인하여 이루어진 벌판 혹은 뻘이라고 읽을 수 있다. 한편, 발(孛)은 이두로 ‘불’의 변이형으로도 보인다. 말하자면 요하문명의 요(遼)가 횃불을 피워놓고 하늘에 제사를 모시는 천단이 최근 홍산문화(紅山文化)에서 밝혀진 바 있다. 불 곧 태양이 핵심이다. 제 때에 비를 오게 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그런 제의문화의 맥락으로 보면 발해-요하의 상관성이 가늠되기도 한다(정호완). 중국에서는 발해의 10대 선왕(宣王) 대인수(大仁秀) 시기를 해동성국이라 하였다(新唐書 北狄 渤海).
<삼국유사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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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수 이야기)
예, 여러분들이 지적한 것처럼 발해는 세가지 국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후고구려 - 대진국 - 발해죠. 하나하나 차근히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의문점 몇가지를 나열해보면......발해는 요동반도와 산동반도에 싸인 바다의 명칭이면서 당나라에서 책봉한 국호라는 점 (당나라는 대조영을 좌해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으로 책봉함.) 그리고 발해는 삼국시대에는 남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기주 발해군 소속의 지명이라는 점입니다.
먼저 지나 왕조에서 왕위 봉작의 형태를 살펴보면......조조는 헌제에게서 위왕으로 봉해지자 위군에 왕부를 만들게 되고 유비는 성도가 주도였지만 한중을 차지한 후에 한중왕에 즉위합니다. 손권도 수도는 말릉, 건업이었지만 오왕으로 봉해졌습니다. 따라서 원래는 왕작을 받게 되면 조조처럼 봉작된 영지에 가는 것이 상례이지만 예외인 경우도 있었죠. 따라서 당나라로부터 발해왕으로 봉작되었어도 대조영은 남피에 왕부를 건설할 필요성은 없었고 이 경우는 극히 관례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한가지 의문점은.......일반적으로 이민족에게 지나 왕조가 자신들의 영토 내에서 봉작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고구려의 경우도 낙랑왕, 고구려왕, 백제의 경우도 백제왕으로 봉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경우도 전형적인 지나의 대외 관계였습니다. 명분을 얻고 이민족에게 해당 지역의 통치권을 인정한다는 실리와 명분의 역학관게였죠.
그런데 당은 당시의 대진국이 남피로 알려진 발해군보다도 엄청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대조영에게 발해왕을 봉작합니다. 상식적으로는 고구려왕이나 낙랑왕, 요동왕 정도가 무난했음에도 왜 발해왕이라고 봉작을 했을까요? 그것도 자신들의 확고한 통치 영역에 속하는 기주 땅을.......
두번째, 역사적으로 보면 지명은 왕조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지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요나라는 건국 후에 오늘날 난하를 요하라고 부르게 됩니다. 자신들의 영내에 있는 난하를 요하라고 부른 것이죠. 즉 고구려시대의 요하와 요나라 건국시대의 요하는 각각 다른 강입니다. 따라서 요하를 경계로 동쪽은 요동, 서쪽은 요서라고 칭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요나라 시대의 지명을 가지고 고구려 시대의 영역을 규명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죠. 실제로 고구려가 팽창하면서 지나의 요동군은 점차 서쪽으로 밀리게 됩니다. 그렇다면.......발해만이라는 지명이 발해라는 나라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보는 관점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번째, 지나쪽 지명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고 현재 발해에 대한 국내 연구가 매우 미진하기 때문에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분이 언급한 삼국지, 후한의 기주에는 발해군이라는 이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 쉽게 말하기가 어렵군요. 언제 발해군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것인지......만약 발해의 등장 이후 발해만이 이름지어지고 그 이후에 발해만과 인접한 지역이라는 뜻에서 지나 지역에 발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남피가 바닷가에 접한 지역인가요? 왜 바다이름 발, 바다 해, 즉 바다를 뜻하는 한자어를 썼을까요?
위에 언급한 세가지 의문점을 보아도 발해라는 국호를 봉작한 이유는 남피라는 도시 이름에서 기인했다고 보기엔 의문점이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진국에서 발해라는 국호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대진국에서 먼저 우리나라의 국호를 발해로 고치려하니 인정해달라는 사신 파견이 있지는 않았을까요? 실제로 대조영은 자신의 아들을 당에 보낸 후 발해왕이라는 봉작을 받아냅니다. 그렇다면 대진국에서 "발해"라는 국호의 승인을 인정해 달라고 했다면 왜 대진국은 "발해"라는 국호를 선정했을까요? 현재의 뽀하이만(발해만)으로의 확장을 위해서? 발해는 고구려의 고토 회복을 내걸은 국가입니다. 게다가 당시의 발해의 정세상 바다보다는 육지에서의 영역 확충이 더욱 절실했죠. 따라서 발해만으로의 진출은 근거가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발해왕이라는 봉작에 대한 몇가지 의문점을 나열했지만 본격적으로 우리말에서 어떻게 풀이되는지 음운언어학적으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발해의 원 국호는 大震國입니다. 한자음을 보면 "큰 벼락 나라"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우리민족은 하늘을 경배하는 민족이었죠. 부여에서는 대천교, 고구려에서는 경천교, 신라는 숭천교, 백제는 효천교, 만주지역의 금이나 요는 주신교를 믿었습니다. 모두 하늘을 숭상하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발해의 종교는? 바로 대신교였습니다. 여러분들은 汝眞(여진)을 어떻게 읽으십니까? 만주어로는 누우신, 지나어로는 쑤우신입니다. 震은 새벽을 나타내는 신(晨)과 의미가 통하며 그 뜻은 동방, 새벽, 아침 등을 나타냅니다. 즉 당나라보다 동쪽에 있다 하여 해뜨는 나라를 뜻한 것이죠. 즉 眞, 震, 晨 모두 神과 광명, 태양을 뜻하는 음차어인 것입니다. 즉 대진국이란 원 음은 대신국으로서 "큰 하늘나라"라는 뜻입니다.
순수 우리말로는 "한밝뫼"라고 하는 백두산을 뜻하는 말은 다음과 같이 아주 다양합니다. 太白山, 大發山, 大朴山, 大博山 등이죠. 여기서도 뭔가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太나 大는 모두 "크다"는 뜻이므로 우리말의 "한"과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發(발), 朴(박),博(박)이죠. 분석력이 높으신 분들이라면 이것들의 공통점을 찾아낼 겁니다. 바로 "밝"의 이두식 음차 표현이라는 것을......마찬가지로 태백산의 白은 "밝"의 의미를 차용한 이두식 표현으로 모두 밝음, 광명, 태양, 하늘을 상징함을 알 수 있습니다.
강원도 산골마을 중에는 海底마을이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한자 뜻 그대로라면 "바다 밑"마을이라는 뜻인데......해발 고도 500m가 넘는 고지대 마을의 이름으로는 뭔가 이상하죠. 그런데.......가만히 이두식으로 풀어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海는 "바다"가 아닌 "해(태양)"의 음차어라는 것이죠. 즉 해저마을이란 "바다밑" 마을이 아니라 "해밑"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고지대 동네를 달동네(높은 고지대 동네라 달과 더 가깝다는 의미)라고 부르듯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해에 보다 가깝다는 뜻에서 그런 지명이 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밝" 과 "해"의 음차 표현이 이 정도 밖에 없을까요? 팰릭스님께서는 발해라는 지명이 넓은 벌판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하셨는데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벌판"이라는 말은 원래 "불판"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불판"의 원뜻은 "밝판"이었는데 끝없이 펼쳐지는 만주 들녘에 태양이 떠오르게 되면 온통 불이 붙은 듯 벌개진다는 의미에서 "밝 + 판", "불 + 판"이 벌판으로 바뀐 것입니다. 경주의 옛 이름인 서라벌의 한문표기를 보시면 伐(칠벌)자를 썼는데 이제까지 제 글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것도 이두식 표현임을 아실 것입니다. 대구의 옛지명 달구벌, 창녕의 옛이름 비사벌, 오늘날에도 빈번하게 쓰이는 갯벌에까지......
동부여의 첫째 임금의 이름은 해부루입니다. 이 이름도 뭔가 수상하지 않으십니까? 解(풀해? 뭘 풀어? -_-) 이것도 해(태양)의 음차어임을 이제는 쉽게 아실 것입니다. 게다가 부루란 역시 "부르"의 음차 표현으로 불(火)의 다른 표현입니다. 즉 해부루란 "태양불"이란 뜻입니다. 고대 한국 지명이나 왕족의 가문으로는 유난히 "해"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우리 민족이 태양을 숭상한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여의 왕족, 고구려의 왕족, 백제의 귀족 가문에 "해"씨 성이 많은 이유입니다.
여기서 한번 고구려의 역대 왕들의 이름을 한번 풀이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고구려의 1대왕인 동명왕은 뜻 그대로 "동쪽의 밝은 왕"입니다. 2대왕인 유리명왕도 " 유리알처럼 밝은 왕"이란 뜻이고 3대 대무신왕의 삼국사기 표현은 大解朱留王인데 여기서도 "해=태양"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뜻은 "태양의 붉은 기운이 머무르고 있는 왕"이라는 뜻이죠. 4대 모본왕은 解色朱王(태양같이 붉은 색이 도는 왕), 5대 해아루왕은 (태양의 알=卵)이란 뜻입니다. 11대부터 東川王, 中川王, 西川王, 烽上王, 美川王의 이름들을 보면 약간 의문이 듭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능을 강의 동쪽, 가운데, 서쪽에 만들어서 그렇게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뭔가 의심스럽지 않으십니까? 이것은 天의 음을 딴 이두 표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고구려의 역대왕들의 이름을 보면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등 마치 태양에 대한 세세한 기록을 남긴 듯 합니다. 즉 동천왕부터 서천왕까지는 태양이 동쪽 하늘에서 떠서 정오의 하늘의 정 가운데(중천), 서쪽으로 지는 광경을 왕호로 표현한 것이고 그래야 烽上王(태양이 서쪽으로 질 무렵 서쪽 하늘 끝부분에 걸려 마치 봉화연기가 피는듯한 모습)이 이해되고 美川王(태양이 서쪽하늘 밑으로 떨어져 노을이 비치는 아름다운 모습)도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김부식의 오기인지 아니면 일제시대 의도적인 날조인지는 좀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쩝 이상과 같이 대략이나마 "발"과 "해"가 가지는 뜻을 언급했습니다. 음운비교학은 역사적 인물이나 지명을 판독해 내는 데에 더없이 훌륭한 방법입니다. 다만 언어의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지요. 그런 면에서 고대 한국어의 원형을 찾는 노력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국어는 상당한 음운적 변화를 많이 겪었기 때문이지요. 다만 다행스러운 점은 일본이라는 나라는 섬나라 고유의 특색으로 외부 언어의 유입이 극도로 적어 언어의 변질이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 고대어의 원형이 한국어의 원형과 가까운 이상 일본 고대어를 추적하는 연구도 진척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연개소문에 관련된 이야기를 보면 그의 부친이 50세에 얻은 아들이라는 뜻에서 연나갓쉰동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연나는 고구려의 귀족 가문이름입니다. 연나부 - 5부) 이러한 표현은 오늘날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본인 중에 X五十六은 나이 56에 낳은 자식이라는 뜻이니까요. 다만 안타깝게도......아직 일본고대어와 한국고대어에 대한 연구 논문이 전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발해사에 대한 연구마저도 너무나 미진합니다.
흑룡강의 다른 이름인 아무르강(아물거리다:강폭이 넓어 끝이 아물거리다는 뜻)을 러시아 식 발음으로 생각하는 이상 어떻게 발해사가 우리 역사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발해에 대한 연구가 가장 뒤쳐지는 나라가 한국인 이상 발해사를 잃어버리게 될까 심히 우려됩니다.......
첫댓글 많이 배웠습니다. 갑내형님! 태씨가 대조영의 후손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