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2005년도에 한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성경일독 과제를 수행 하던 중, 좀 더 빨리 성경을 읽을 요량으로 쉬운 성경으로 통독을 했는데 그때 저는 아래 구절을 새로운 시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일 4:17, 쉬운성경)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완전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그 날에 아무 두려움 없이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두려움도 있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 정체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후로 3년 뒤, 인터넷에서 우연히(?) 앤드류 워맥 목사님을 발견하면서지만 그때 통독 당시에 그 깊은 뜻은 몰랐어도 이 말씀은 저에게 혁명과도 같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내가 천국도 아닌,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같아지다니...”
같아지는 부분이 '영'이라는 것까지는 몰랐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은 나를 보실 때 예수님을 보시듯 한다.’ 정도로 깨달았었고, 그래도 그것은 당시의 저에겐 너무나도 놀라운 계시였습니다.
(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저는 이 구절을 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님이 참 부러웠었는데(우리는 보통 하나님이 나를 못 마땅해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이제 내가 예수님과 같아졌다면 하나님은 나도 기뻐하신다는 얘기니까 정말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이 좋았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엄한 사랑’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에는 별 이견이 없지만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는 것은 잘 모르지 않았습니까?
당시 저에게는 갓 태어난 조카가 있었는데 세상에서 제가 유일하게 조건 없이 기뻐하던 대상은 그 조카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내가 내 조카를 보듯 하신다는 것은 저에게 까무러 칠만한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그 진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못했지만 "나를 보실 때 예수님을 보시듯 한다."라고 깨달은 것은 저의 영적 정체성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인데, 그때 영으로, 진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만날 때는 진리의 말씀에 나타난 나의 영적 정체성으로만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 영적 정체성의 성경적 진리는, 나의 정체성이 예수님의 정체성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러한 구체적 성경의 진리를 제가 조목조목 말로 묘사하지는 못했더라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 즉 나에게 만족하셨다, 나를 좋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신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우리는 세상에게 용납 받으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혹시라도 그 일에 성공한다 해도 거기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내면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위에 인용한 단 몇 개의 성경구절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 우주만물의 주인, 인류 역사의 끝에 심판자로 오실 그 절대자에게 용납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분이 나에게 만족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인간이 깨달을 수 있는 최고의 계시입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의 근거가 나의 어떠함이었다면 항상 불안하고 초초했을 텐데 이 모든 것의 근거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 그분 자체(본체, 빌 2:6)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계시에 대한 흔들릴 수 없는 근거, 절대적으로 견고한 반석을 제공합니다(고전 10:4)!
이것이야 말로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이 바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 1:16). 이 말인즉슨, 나의 행위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믿어야만 구원의 능력이 우리 삶에 파워풀하게 풀어진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이 은혜의 계시를 더욱 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