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에 매화꽃은 피었더라만,
봄 같지 않으매...
두루 건안하시고요... 코로나19 관련하여 처용가 이야기를
삼국유사TV에 올렸으니 틈나실 때 보실 수도...
행운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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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환란에 얼마나 걱정이 많으십니까. 하루 빨리 이 어려움이 가라앉아 일상으로 되돌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삼국유사에 실려 전하는 향가 처용가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풀이를 하고자 합니다. 언어와 문학, 그리고 모든 예술은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문학은 시대의 열매라고 보는 관점이지요. 처용가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이 많은 줄 압니다만... 저는 삼국사기에 나타난 사료를 바탕으로 살펴보았답니다. 제49대 헌강왕이 즉위하던 해(857)이면서 경문왕이 돌아가던 때의 기록입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빗자루별 -혜성 (패성)이 20일 동안 사라지지 않고 궁안의 우물에 용이 나타나더니 갑자기 안개와 구름으로 뒤덮여 앞이 보이지 않다가 사라지는 등 이상한 징후들이 보였습니다. 바로 전 해 헌강왕이 태자 시절 이찬 근종이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궁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미리 정보를 알았던지 궁을 지키던 금군으로 막고 도망치던 근종을 붙잡아 사지를 줄로 매어 네 마리의 말에다 매어 달리게 함으로써 찢어죽이는 거열형을 집행하였습니다. 나머지 많은 군사들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즉위하던 해 다 풀어 사면 곧 용서를 했습니다. 마치 신문왕이 즉위하던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 이전에도 기근과 병마가 뒤덮고 반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때 당나라의 무종이 불교 탄압을 하여 아라비아인들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이 밖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어서 특히 아라비아 사람들이 신라로 들어왔다는 겁니다. 원성왕이 묻힌 괘릉 앞에 석물을 보더라도 아라비아 사람들 같이 처용 탈과 같은 모습을 한 것이 그런 실례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겐 알로에 같은 병을 고치는 약품을 사용하는 의술을 지닌 사람들이 상당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신의 경우도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여성 편력이 많은 헌강왕이 처용의 아내와 간통한 사건인데 임금을 직접 올릴 수 없으니까 에둘러 표현한 상징적인 표현이며 이는 간부가와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언어와 문학은 시대와 문화를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처용이란 처단하고 용서하는 양면적인 명명입니다. 지금도 처단과 용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처용가는 헌강왕 시대의 사회상을 문학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In short, language and literature, in terms of reflecting the times and cultures, is a two-sided punishment and forgiving, that is Cheoyong(처용). Cheoyong(처용) means a literary manifestation of the social image of the King Hengang(헌강) era.
첫댓글 처용가에서 보듯 코로나19도 처단과 용서를 통해 하루라도 빨리 평소의 편안했던 일상생활로 되돌아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