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덱스(ADEX)라고, 서울공항에서 열리는 국제 방위산업 전시회가 있어요. 세계 10위권 업체를 비롯한 국내외 거대 무기업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 전투기, 장갑차 같은 각종 무기 전시, 비즈니스 미팅도 하고 실제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대요. 방귀 뿜으면서 날아다니는 전투기 에어쑈가 유명해요.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전쟁으로 난리가 나고 있는데도 버젓이 열리고 있더군요.
그래서 나온 게 <아덱스 저항행동>. 반군사주의 단체랑 평화운동 조직들이 연대체 구성해서 올해도 나왔어요. 아덱스를 방해하고 사람들한테 "이곳은 살인무기 거래 및 전시장입니다"하고 알리는 게 목표. 박람회장 들어가서 기습 시위도 하고, 화장실 가서 "여기서 거래되는 무기가 사람을 죽입니다" 같은 내용의 포스트잇 붙이기도 해요. 작년엔 탱크 위에 올라가서 벌금을 크게 물게 생겼대요.
이번에도 일주일 내내 했는데, 주최측의 재빠른 대응으로 큰 마찰은 없었다네요. 엊그제 박람회장 내부에서 했더니 2분만에 쫓겨나서 그랬다고.
오늘(21일)은 집회허가 받은 곳에서만 했고, 비교적 온건한 방식으로 진행됐어요. 전쟁희생자 장례식도 하고, 플래시몹 비슷한 것도 했네요. 추모행사 할 때는 눈물 흘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평화 얘기하는 노래도 부르고(역시나 이런 노래는 별로). 저는 밖에서 선전을 도와줬네요. 피켓 들고 있기도 하고 퍼포먼스도 같이 했어요.
뭔 넘의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그 길다란 기지 외벽이 차량으로 뒤덮였어요. 그야말로 엄청난 인파였는데, 그날 하루에 3만 명 가까이 왔다네요.
가는 길에, 관람객들이랑 버스타고 가는데 괜히 나만 불온분자일 거라는 생각에 야릇한 기분. 미쳤나 봐요. 다들 포스타라도 된 것마냥 선글라스 쓰고 있더군요. 그 짧은 사이에 버스에서 놀러온 탑승객이랑 기사랑 요금 가지고 한판 붙었습니다. 무기 보러 간다는 생각이 사람을 호전적으로 만드는?
군사기지 바로 옆은 농사짓는 시골 마을. 아이들 데리고 소풍 나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비행기에서 폭탄 투하하는 쇼가 있었어요. 굉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더군요. 핵심 이벤트는 에어쑈. 저공비행하는 전투비행기가 귀가 찢어지는 굉음을 내면서 날아다니는데, 그래도 사진 찍고 난리예요. 오락이 된 거죠. 그 와중에 귀마개 파는 사람도 한몫 단단히 챙깁니다.
아무튼 하루 내내 이런 것들 보면서 고생 좀 했지요. 직접행동이 어떤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으쌰으쌰 하는 곳을 조금 가봤는데, 갈 때마다 느끼는 건 사람들 시선이예요. 특히나 이번 행동은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걸 목표로 했으니, 손가락질을 얼마나 많이 받았던지요.
기억나는 것만 해도,
"저런 거 다 간첩이야"
"살려면 무기장사 해야지"
"군인들이 지켜주고 있는데"
"미친년들이네"
"얘네들 다 지령 받은 거야"
"선동에 속으면 안돼"
"이런 애들 안보가 뭔지 알겠어?"
들으라고 바로 옆에서 내뱉어요. 이것도 유형별로 특징이 있어요. 중고생쯤 되는 아이들은 주로 간첩이랑 지령 얘기를 많이 하고, 원숙한(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3~40대는 눈으로 노골적인 비웃음을 보내고 갑니다. 이 표정 다들 공유하는데, 정말 신기해요. 선전물 들고 같이 있었던 사람들도 완죤 똑같이 "더러운 표정" 짓고 간다고 하구.
5~70대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일단 참지 않아요. 숨기지 않고 눈을 부라리면서 이야기합니다. 물건들 발로 차고 소리지르는 할배도 있었어요. 부부가 동시에 "쓰레기들" 하고 가기도 하구.
나눠준 종이(아덱스 안내문을 가장한 유인물)를 눈앞에서 찢어버리는 경우도 꽤나 있었어요. 종교인들은 이렇게 핍박받는 경험으로 결속력을 다진다고 하는데, 이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계속 그러니까 아무 감흥도 없어요. 그래도 덕분에 온 세상과 싸우는 느낌을 받았네요. 삼만 명 대 스무 명?
아무나 와서 참여할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해서, 이따금 놀러온 할아버지들 몇몇 와서 같이 피켓도 들어주고 그랬어요. 효심 깊은 활동가들이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그랬겠지요. 가끔 엄지 치켜들고 가는 사람도, 관심 가지고 오래 있다 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사정이 있어 사진은 찍지 않았어요. 올린 건 전부 퍼온 것.
말로만 군사주의 어쩌구 하던 거랑은 영판 다르더군요. 애국심이나 사명감 이런 건 거의 안 나오고 첨단과학, 정보기술 같은 취향(?)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요. 대체 어디서 매력을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데모하는 데 가보면 보통은 경찰이랑 대립하기만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번 행동에서는 경찰이 아니라 박람회 구경 온 사람들이랑 싸워야 했어요. 대중들이 알아서 진압해 주는 거지요. 군사주의가 무슨 사람을 죽이고 억지력을 갖추는 데 환장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겠더군요. 오히려 논리나 '사실'들은 나중에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항상 이 운동은 어쩌구 저 운동은 어쩌구 했는데, 활동가들의 삶은 정말 고달픕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매체나 글로 접하는 거랑 완전히 달라요. 신체를 써야지만 느낄 수 있는 역동성이 있어요. 여러분들도 한번 들고 일어나 보셔요. 힘들긴 해도 척추가 쫙 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