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일주일째 잠을 청하질 못하고 있습니다.
평소 저의 정신이나 체력상황을 본다면, 벌써 쓰러졌을 것입니다.
첫 시작의 긴장감 때문인듯 합니다.
지난 13일 강원도교육청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6월부터, 아니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 한장수 교육감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최고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숱한 안좋은 소문을 배제하고서라도, 따뜻한 교육적 배려를 공유할 수 있겠지라는 소박한 기대를 했기때문입니다. 몇차례의 면담요구를 거듭한 끝에, 8월초에 협상을 위한 협의체꾸리는 일까지 순조로와보였습니다. 결정권이 없는 장학사.장학관 두명을 협상단이라고 내세워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그러나 기대도 잠깐, 우리의 협상단이 교육청의 마음에 들지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논의할 수 있는 기회마저 주질 않았습니다. 분명한 조항이나 원칙에 입각한 납득할만한 이유가 아닌, 교육청의 관례로서의 이유를 말했습니다.
13일에 바라본 교육청 건물은 평소보다 높고 크고 두껍게 보였습니다.
마치 우리들과는 다른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1999년에 큰아이가 태어났습니다.
2kg저체중에 뇌출혈이 있었습니다.
어른팔 절반도 채되지않은 아이가 인큐베이터에서, 미세한 호흡을 하며, 눈을 뜨지못한 채, 한달이 흘러, 2.3kg의 체중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호흡을 하지않는 응급상황이 잦아, 거의 매일같이 대학병원을 전전했습니다. 2년동안 숱한 검사와 입원이 큰아이의 일상이 되고, 저는 숨한번 제대로 쉴 수 없는 긴장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재활치료를 빨리 시켜야겠다는 독한 마음이 생겨, 집안어른들을 설득하여, 2살때부터 2시간거리의 복지관으로, 3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치료와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일을 조금은 가볍게 이야기 할 수 있어 다행인데, 그 당시에 넘어야 할 벽이 또 하나 있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고속도로에 진입을 하면, 자고있는 아이가 어김없이, 팔다리가 꼬이고, 눈동자가 돌아가며, 숨을 쉬지않고 경직이 되어, 재활치료를 포기할 생각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고속도로 공포증이 생겼습니다. 고속도로와 터널이 저를 삼키는 웃지못할 상황을 짧지않은 세월동안 가지게 되었습니다.
30개월에 걷고, 한쪽눈이 현저히 감겨있어서, 2005년에 안검하수증수술(눈꺼풀올림 수술)을 하고, 경기를 완화시키는 진료와 치료를 받으며, 숙면이라는 것이 남의나라 언어처럼 느껴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바둥되어서인지, 불안한 걸음걸이가 조금은 나아졌고, 하지만 성장하면서 그 무게로 인해 발의 아치가 무너지는 현상도 일어났으며, 서서히 자아가 형성이 되기는 하나, 언어는 여전이 갓난아기수준에 머물러,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 학교갈 나이가 되었고, 특수학교를 보낼까 일반학교를 보낼까의 기로에 서고, 현재는 도움학급이 있는 일반학교에서의 1학년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학교를 보내기전에 정말 많이 긴장합니다.
아마도 학교에서의 교육시스템이나 시설, 교육인력등이 맘놓고 들어올 수 있는 조건이라면, 불필요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받지않을 것입니다.
경사로 하나 없는 학교, 턱없이 부족한 특수교사와 보조교사, 장애인에 관한 인식과 교육이 전혀 되어있지않은 학교분위기, 교재나 교구의 부족, 문제제기나 의견을 맘놓고 펼치지못하며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황들, 학교에 데려다주고 시간맞춰 데리러 가고, 행사에 언제든 동원되어야 하는 일상들이 점차 그렇게 사는것이 내 운명인것처럼, 오래전에 부모의 인생이라는 것은 사라진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살기위해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휴식처가 되지는 않을까하는 건강치못한 늪으로 빠져듭니다.
사방이 벽인 느낌.
눈을 감고 벼랑을 향해 조금씩 가고 있는 기분,
껍데기는 사람인데, 속은 오래전에 사람이 아닌...
말하기좋아하는 사람들은 쉽게 표현합니다.
장애아부모들은 급하다고, 집착한다고, 피해의식에 공격적이라고...
저는 묻고싶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비장애인들의 생리에 맞춰 죽지않고 따라가려니, 아이보다 먼저 죽기전에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야하겠기에, 몇배로 달리다보니, 고장이 나서 그렇다고 말해도 될까요?
세상을 한탄하며, 먼저 세상을 뜬 부모들의 넋을 달래고, 지금도 자포자기하고 있는 부모들을 바라보며, 우리도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기위해, 작은 시작을 해보려고 합니다.
분노를 보여주겠습니다.
교육청뿐만 아니라 모든 기관들이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뇨. 세상은 더불어 살고 있질않고 있더라구요.
그렇게 해야 하는 사람들조차 망각하고 있더군요.
우리는 외롭습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외로운사람들끼리 모여서 전진하겠습니다.
2007년 8월 21일(화) 오후 3시 강원도교육청 앞
"강원도 교육청 규탄 1차 결의대회"를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