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
1831년 잉글랜드 데번 플리머스에서 처음 조직되었다.
이 운동은 원래 그보다 수년 전에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에서
기도와 교제를 위해 모인 그리스도교도들의 모임에서 시작되었는데, 성서적인 예언과 그리스도의 재림이 강조되었다.
아일랜드 교회(성공회)의 전직 목사이던 존 넬슨 다비(1800-1882)가 운동의 중심인물이 되었는데,
그는 영국의 섬들과 유럽 대륙의 많은 지역, 특히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스위스 지방에서 형제단을 결성했다.
그는 1838~45년의 대부분을 스위스 지방에 머물렀다.
1845년 다비가 영국으로 돌아온 후 교리와 교회 행정에 관한 논쟁으로 형제회가 분열되었다. 다비의 추종자들은 교회들의 밀착된 연합체를 형성했기 때문에 '배타적인 형제단'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다른 이들은 '개방적인 형제단'으로 불렸고, 교회 행정에서 회중적 형태와 덜 엄격한 가입 자격 기준을 유지했다. 배타적인 형제단은 여러 차례 더 분열되었다. 모든 파의 형제단은 평신도와 구별되는 어떠한 성직자 또는 목사의 지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성찬식은 매주일 행해진다.
다비의 관례를 따른 몇몇 배타적인 형제단은 회원의 자녀들에게도 세례를 주나 실제로 모든 형제회 단체는 신자의 세례를 원칙으로 한다. 플리머스 형제단은 주로 중앙아프리카, 인도, 라틴아메리카 등 외국 선교 사업에 적극적이다. 영어권 세계 전역과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 형제회가 설립되어 있다.
1860년대 초 그들이 도착한 미국에는 통계상의 목적으로 로마 숫자(Ⅰ~Ⅷ)로 구별되는 8개 단체가 있다.
(자료출처 에듀넷-브리태니커학습백과)
기원
교회사적으로 볼 때 ‘형제단 운동'의 기원은 주후 1825년부터 시작됩니다. 물론 형제들이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그 교회의 기원은 사도 시대부터 시작됩니다. 실상 이들의 목적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단순하면서도 융통성 있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려는데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세기 초 무렵 여러 기독교 교단들에서 분리되는 일들은 오늘날 형제단 교회들이 직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형제운동의 개척자는 일단의 젊은 사람들로서 대부분 영국 더블린에 소재한 트리니티 대학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반 교파의 장벽을 뛰어 넘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배와 교제를 위해 함께 모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 같은 모임이 장차 큰 운동의 시발점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실상 그들은 결코 새로운 교단을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 같은 시도야말로 그들이 함께 모이는 순수한 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동안 그들 중 일부는 전에 소속된 구성원으로 남아 있었고 그중 극소수만이 성직자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같은 성직 수여 관행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이 형제단 운동의 초기 인도자 중의 하나가 바로 존 넬슨 다비(J. N. Darby, 1800-1882)로 아일랜드 교회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비상한 지적 능력과 성품의 소유자로서 각 교단 소속 교회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는 시기에 그리스도 교회의 연합을 증거 하는 전 세계적 협력을 꿈꾸었습니다. 이 같은 형제단 운동은 더블린에서 시작하여 영국 전역으로 그 세력이 확장되었습니다.
영국의 첫 번째 ‘형제단' 모임은 1831년 플리머스에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그 지명을 따라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이란 낯익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플리머스에 세워진 ‘형제단'의 두 인도자는 사무엘 트레겔레스(Samuel P. Tregelles, 1813-1875)와 그의 친척이 되는 벤자민 뉴톤(Benjamin W. Newton, 1807-1899)이었습니다. 뉴톤은 19세기 당시 영국에서 출간된 헬라어 신약성경역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책의 주편집자였습니다.
또 다른 모임 가운데 중요한 교회는 브리스톨에 위치한 베데스다 예배당(Bethesda Chapel)으로써 스코틀랜드 태생 유대인 목회자인 헨리 크레이크(Henry Craik, 1805-1866)와 독일계 죠지 뮐러(George Muller, 1806-1898)가 공동으로 사역한 곳입니다. 특히 죠지 뮐러는 1836년에 브리스톨에 고아원을 세워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만 고아원을 운영한 사람으로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가 시작한 고아원들이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또한 바네이도 박사(Dr. T. J. Barnado, 1845-1905)도 ‘형제단'의 일원으로서 1870년에 영국에 죠지 뮐러처럼 고아원을 세워 운영한 인물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하나님께 쓰임 받은 선배들로는 모세오경을 주해한 매킨토쉬(C. H. Mackintosh, 1820-1896), 수많은 주해를 썼고 다비의 저작 전집을 발행한 윌리암 켈리(William Kelly, 1821-1906), 다니엘서를 주해하여 예언의 기초를 확립시켰던 앤더슨 경(Sir Robert Anderson, 1841-1918), 원어에 뛰어난 학자인 트레겔레스(S. P. Tregelles, 1813-1875), 예언적 입장에서 교회사를 쓴 밀러(Andrew Miller, 1810-1883), 주해 성경의 저자인 뉴베리(Thomas Newberry, 1811-1901), 스코필드(C. I. Scofield, 1843-1921), 탁월한 교사요 저술가였던 에릭 사우어(Erich Sauer), 하나님의 사랑을 정열적으로 전했던 무어하우스(Henry Moorhouse, 1840-1880), 완벽한 신구약 성구사전을 출판한 위그람(George Vice Simus Wigram, 1805-1879) 등등 천여 명의 교계 석학과 지도자들이 기성교회를 떠나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앙 양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모이게 됨으로써 당시의 기독교계에 커다란 감동과 영향을 끼쳤습니다.
토마스 그리피스(Thomas Griffith, 1861-1924)는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 진리를 가장 바르게 해석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으며, 학자요 저술가였던 아이언사이드(H. A. Ironside, 1876-1951)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알든 모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형제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일에 전력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형제단(Brethren), 그리스도인 형제단(Christian Brethren),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 등으로 불렸으나 그들 스스로는 교파명을 사용한 적이 없었고 어떤 계급적 호칭도 배격했습니다. 거룩해졌으니 성도로, 믿음을 가졌으니 신자로, 사랑을 인하여 형제와 자매로, 순종을 인하여 제자로, 경배를 인하여 제사장으로, 증거를 인하여 증인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했으니 그리스도인으로 불렀습니다.
해외선교
죠지 뮐러의 매제인 안토니 그로브스(Anthony Norris Groves, 1795-1853)는 ‘그리스도인 형제단'의 최초의 해외 파송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엑스터에서 운영하던 치과병원을 그만두고 개척 선교사가 되어 먼저는 바그다드로 나갔고, 후에 다시 인도에 가서 선교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이 그들을 분열시키는 어떤 일들 보다 더 중차대한 일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자신과 심각한 불일치를 보이는 몇몇 사람들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소유한 선한 것에서 분리되느니 보다 차라리 그들의 제반 악행을 감내하겠네.” 그가 생각한 악행이 어느 정도 실제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그의 고백을 통해서 형제교회가 추구하는 태도가 무엇인지는 감지할 수 있습니다.
안토니 그로브스로부터 시작된 ‘형제단' 선교 운동은 전 세계 6대륙에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으며, 각국의 ‘형제단'들이 파송한 선교사의 숫자는 1,200여명이 넘고 있습니다. 어떤 선교사들은 여러 곳에서 개척 선교사의 역할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중 특출한 인물로는 스코들랜드 출신의 프레드릭 아르놋(Frederick Stanley Arnot, 1858-1914)과 단 크로포드(Dan Craford, 1870-1926)로서 이들은 복음의 볼모지인 중앙아프리카 지역에 복음을 증거하면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실상 아르놋은 1880년경 카탕가(Katanga)에 최초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진리를 선포한 개척자입니다. 일반적으로 영어권 ‘형제단' 선교사들은 주로 중앙아프리카와 인도,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 체류하면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아시아권에서 나간 선교사들은 주로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선교하고 있습니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 출신 선교사들은 실제 선교 현장에 있는 다른 선교사 단체들과 협력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선교 사역과 활동은 선교사 후원 단체인 CMML(Christian Missions in Many Lands)과 그 기도 잡지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230여 지역교회가 세워졌으며, 해외에는 12개국에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15개의 현지인 지역교회를 세워 세계 선교를 수행하고, 또한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여러 나라에 한인 지역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선교 기관들로는 엠마오성경학교, 그리스도인훈련원(Christian Training Institute), 구도자전도협회, 군복음선교회, 열린문선교후원회(Open-door Missionary Service Committee), 도서출판 열린문, 전도출판사, 도서출판 미션하우스, 새생명의 사람들, 인터넷 Christian TV 등이 있으며, 극동방송과 아세아방송을 통하여 25여년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교리와 신조
사실상 성경 교리에 관한한 ‘형제단'들은 교회사에서 정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교리를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을 확고히 붙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믿는 바로는 ‘믿음과 실천의 기반이 되는 절대 무오한 성경'에서 그 같은 교리와 믿음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복음주의적인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타락한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로 믿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복음 전파의 열망 때문에 그들은 교파를 초월해서 순수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무리들과 기꺼이 합력해서 일하기도 합니다. 실례로, 미국의 빌리 그래함 전도팀이 영국의 여러 섬에서 전도사역을 할 때 형제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그들과 합류해서 일하였습니다.
성경 예언 성취는 ‘형제단 운동'의 시초부터 상당한 관심사였습니다. 실상 ‘형제단'의 많은 설교자들이 지금도 주님의 재림과 종말에 상당한 관심과 식견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은 찬송가 곡 중에서도 주님의 재림에 비중을 둔 내용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들은 특정하게 주님의 재림 시기를 정하거나, 현실 생활의 도피를 가르치는 극단적 종말론주의자들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경건한 삶의 필요를 강조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이 형제 교회들에서 발견하는 매력은 형제 사랑을 기반으로 한 풍성한 교제와 지적인 자유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실행
모임의 특징적인 요소는 교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실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형제단'에서 침례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에 한해서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침례의 방법도 물에 담그는 침수(浸水)를 지지합니다. 이들은 주일마다 만찬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으되, 이 같은 주의 만찬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위해 주님이 베푸신 것으로 믿습니다.
분명 이같이 매주일 드리는 성만찬이 ‘형제단'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떡과 잔을 떼기 위해 모일 때 그들은 예배 참여자들을 미리 선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자발적이고 질서에 따른 참여로 인해 만찬 시간은 경건하게 실행되고 있습니다. 이때 여러 형제들이 찬송가를 선택하여 부를 것을 제안하고, 기도와 감사로 회중을 인도하며, 성경 본문을 읽거나 문맥을 간단히 해석하면서 주님의 성품과 그분의 구속 사역을 찬송하면서 떡과 잔을 대합니다. 교회의 질서를 가르치고 있는 말씀을 따라 공적인 집회에서 남자들은 머리에 너울을 쓰지 않고, 여자들은 머리에 너울을 쓰라는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다(고전11장).
‘형제단'에는 교단 등에서 위임한 성직자로써의 목사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교회 내에는 성직자 개념으로서의 목사가 아닌, 은사로써의 목사인 장로들(혹은 감독들)을 두고 있으며, 이 은사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해고시키거나 좌지우지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교회의 필요를 따라 친히 세우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실상 각국의 교회마다 복음 전도와 성경을 가르치는 상당히 많은 수의 전임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각 지역 교회는 장로들 혹은 감독들로 불리는 책임 있는 인도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나, 이들이 자신이 속한 교회를 벗어나서 타 교회에서도 동일한 역할을 감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장로들은 직분이나 권위보다는 본이 되는 삶을 통하여 성도들을 인도하기에 힘씁니다.
오해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약 2000년 정도를 지나오면서 순례하는 교회로써 모진 형극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때로 참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 이단으로 정죄되어 박해를 받아 왔는가 하면, 역으로 거짓된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 정통 신앙의 고수자로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교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도는 한국 기독교계를 제외하면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국의 경우 교인끼리 만나면 최초로 던지는 질문이 “무슨 교파에 속한 교회에 출석하느냐”입니다. 이는 물론 쉽게 이단 집단에 속해 있는지를 구별하는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라고 긍정적으로 보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중생한 그리스도인인가에 대한 교제가 어느 교파 소속 교인인가보다 훨씬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 출석이 구원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느 교파에 소속되었으며, 그가 오늘날 이곳에 있다면 무슨 교파를 지지했을 것 같습니까? 일찍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분파주의로 전락할 위험성을 감지하고 책망한 일이 있습니다.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베드로)에게 속한 자라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고전 1:12-13).
요컨대, 기존 교단에 소속된 교회가 아니면 무조건 잘못된 교회로 생각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실 미국 기독교계의 경우 기존 교단에 속하지 않아도 정통 신앙을 고수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이 같은 교회를 일컬어 ‘독립 교회(Independent Church)'라 부릅니다. 요즘 미국의 유명한 방송 설교자, 강해 설교자 중의 한 분으로서 <두란노 서원>과 <생명의 말씀사>의 번역서를 통해 한국 교회에서도 널리 알려진 바 있는 존 맥아더(John Macarthur, 1939-)가 목회하는 ‘은혜 공동체 교회(Grace Community Church)'의 경우를 봅시다. 그 교회는 어떤 특정 교파에 소속 되지 않으나 2만 가량의 교인을 둔 교회로 미국에서 여타 교회의 귀감을 손꼽히는 교회 중의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또한 이와 비슷하게 독립 교회를 하면서 미국 기독교계, 그리고 한국에도 ‘영적싸움', ‘그리스도의 지체' 등의 역서로 잘 알려진 레이 스테더만(Ray Stedman, 1917-1992)이 목회하는 ‘반도 성서 교회(Peninsula Bible Church)'를 봅시다. 이 교회 역시 기존 교파와 무관하게 성경을 중심으로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교파를 초월해서 모이고 있는 수많은 독립교회가 결코 이단의 시비를 받아본 적이 없음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여기서 한국 교계에 잘 알려진 전도자요 선교 학자로서, 교인 한 가정에 한 사람 꼴로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바 있는 캐나다의 '민중 교회'(People's Church)의 목회자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Smith, 1889-1986)의 글을 되새겨 봅시다.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면 거기서는 장로교인, 감리교인, 침례교인, 오순절교인, 플리머스 형제단, 성결교인 등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만 상봉하게 될 것이다."(오스왈드 스미스의 저서 '나의 가장 사랑하는 나라'중에서)
오스 기니스(Os Guinness, 1941-)는 교파주의가 현대의 임의적인 개인주의 성향에 기초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스 기니스는 기독교 출판물의 베스트셀러인 [소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 기독교 백과사전]에 의하면 20세기 초에는 약 1,900개의 기독교 교파가 있었는데 20세기말에 와서는 22,000개로 추정된다고 한다. 역사적인 ‘돌발사건'인 교파가 현대 세계의 영향력 아래서 하나님의 교회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신학적인 재난이 되어 버렸다. 이에 비해 존 번연(John Bunyan)의 관대한 정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바라는대로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싶다. 그러나 재침례파, 독립교파, 장로교파 등과 같은 파당적인 호칭에 대하여 나는 그들이 예루살렘이나 안디옥이 아니라 지옥이나 바벨론에서 왔다고 결론 내린다.”(오스 기니스의 [소명], 한국기독학생 출판부(IVP))
교파는 성경적이지도 않고 출발기원도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형제단 교회들은 스스로 어떠한 교파명을 쓰지 않고 성경을 따라 지역의 그리스도인의 모임인 지역교회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파명칭을 쓰지 않는다고 하여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사려 깊지 않은 비성경적인 행동은 없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의 평가
오늘날 기독교계에서는 금세기 최고의 복음주의자들로 존 스토트(John Robert Walmsley Stott, 1921-)
, 제임스 패커(James Innel Packer, 1926-) 그리고 프레드릭 부루스(Frederick Fyvie Bruce, 1910-1990)
를 꼽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섬기는 세칭 그리스도인 형제교회에 대한 평가를 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독교 세계사에 대한 서적들이 우리나라에서 발간되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평가가 대동소이하므로 그중에 몇 권만을 택하여 교회에 대한 내용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이렇게 회중차원의 지속적인 복음 전도를 하는 교회에 나타나는 세 번째 특징은 ‘손님 초청 집회'이다. 물론 이것은 많은 교회의 전통이 되어 있는데, 특히 독립 교회 같은 경우는 저녁집회를 항상 복음 전도를 위한 집회로 모이고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인 형제교회의 많은 모임도 매주 주일 아침에 함께 ‘떡을 떼고', 매주 주일 저녁에는 항상 복음집회를 연다. 이런 방식에도 좋은 점이 많이 있고, 그들이 보여주는 복음 전도에 대한 열정은 가히 존경할 만한 것이다.”
- 존 스토트(John Stott), 복음전도, IVP -
현재의 복음주의를 평가해 달라는 [빛과 소금]지의 인터뷰에서 금세기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로 불리는 제임스 패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교단의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어떤 수십 개의 교단의 경우에는 그 안에 복음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수십 개의 교단은 전체가 다 복음주의자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 형제교회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항상 복음주의였습니다. 자유주의적 침례교도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침례교는 늘 복음주의였습니다. ........ 전세계의 장로교, 전세계의 영국 국교회에서 복음주의자가 소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어떤 작은 장로교 교단들은 완전히 복음주의적이기도 합니다.”
- 제임스 패커(James Packer), 빛과 소금 2000년 7월호 -
“사실상 성경 교리에 관한한 ‘형제단'들은 교회사에서 정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교리를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을 확고히 붙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믿는 바로는 ‘믿음과 실천의 기반이 되는 절대 무오한 성경'에서 그 같은 교리와 믿음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복음주의적인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타락한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로 믿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 프레드릭 부루스(F. F. Bruce), 그리스도인 형제단은 누구인가? 크리스챤지, 2001 -
“설교자는 강단에......, 평신도는 좌석에........ 이 둘은 1848년 당시 주류를 이루던 그리스도인의 정서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자는 누구나 영원히 수동적으로 살도록 계획하지 않으셨음을 교회도 깨닫기 시작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사역에로 부름 받았다. 누구나 일종의 섬기는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나님이 구비시키셨다. 우리는 이미 이천년 전에 바울이 쓴 내용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 셈이다.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엡4:11-16).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각각의 지체가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해서 사역을 감당한다는 바울의 비전은, 그의 시대 직후에 곧 실종되었다가 1세기 반전에 그리스도인 형제단(Christian Brethren)에 의해 재발견되었으며 , 최근에 와서야 세계적인 은사 운동을 통해 기독 공동체에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
- 폴 스티븐스(Paul Stevens), 평신도가 사라진 교회, IVP) -
“이 교회에도 인간이 안수하는 교역자는 없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역자는 목자(목회자), 전도자 및 교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자는 설교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들은 조직된 교회는 없고, 우호단체 곧 회를 조직한다. 인간적인 감독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 회를 주관하며, 그들의 모든 계획과 활동을 인도하신다. 전도자나 선교사에게 일정한 봉급이 없다. 어떠한 직업을 갖거나 또는 주님께 직접 의지함으로써 자신들과 자기들의 가족을 자급적으로 부양한다. 예배 때에 연보를 걷지 않는다. 이 형제단은 다른 교파와 같이 확실한 교회 조직이 없고, 선교회나 분명한 선교부도 없으며, 신학교가 없지만 복음을 멀리 또한 널리 전파하고 있다. 이 형제단은 현재 전 세계를 통하여 56개국에서 약 1000명의 대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 파에서 배출된 몇 사람의 저명한 성서학자와 설교가를 말하면 넬슨 다비(J. N. Darby), 죠지 뮐러(George Muller), 벤자민 뉴톤(B. W. Newton), 윌리암 켈리(William Kelly), 맥킨토쉬(C. H. Mackintosh), 트레겔레스(S. P. Tregelles), 그란트(S. W. Grant), 윌리암 린콜른(William Lincoln) 및 헨리 무어하우스(Henry Moorhouse)등이다. 맨 마지막으로 말한 헨리 무어하우스는 수백만 명의 심령을 흔들어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한 무디(D. L. Moody)의 심령을 움직이게 한 사람이었다. 알버트 뉴만이 말하기를 "저 유명한 무디 선생을 위시하여 많은 부흥 전도가들이 대부분 형제단 신자들의 저서와 또는 그들과의 개인적 접촉에 의하여 받은 감화로 전도가로 일생을 바칠 포부를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죠지 뮐러는 영국 브리스톨에서 난 위대한 신앙가였으며, 동시에 고아원 사업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 E. S. 모이어, 인물 중심의 교회사, 대한기독교서회 -
“1827년에 그리스도인 형제단으로 알려진 종교 단체가 발생하였다. 이 단체가 후에 영국과 미국의 영적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처음에는 더불린(Dublin)에서 출발하여 곧 잉글랜드로 넘어갔다. 초기에는 이전에 선교사였던 안토니 노리스 그로브스 (Antongy Norris Groves), 법률가 벨레트 (J. G. Bellett), 더불린의 허칭손 (W. F. Hutchinson), 존 파넬 (John V. Parnell)등이 지도했고 후에는 콩글튼(Congleton)경과 크로닌(Cronin)박사 등이 지도하였다. 여기에 당시 아일랜드에서 성공회의 목사로 수고하던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가 가담하였다. 그는 지적 능력이 대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생활이 경건하여 형제회의 가장 특출한 지도자가 되었다.
이 운동은 초기에 주로 중상(中上)계층의 지원을 받았으나 불원간 근로 계층의 사람들에게까지 지지 폭을 확대시켰다. 안토니 노리스 그로브스는 선언하여 말하기를 “누구의 설교나 봉사를 기다리지 말고 주님께서 당신이 선히 여기시는 대로 우리 자신들 중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심으로써 우리 모두의 덕을 세워 주실 것을 믿고 그저 단순하게 우리 모두가 주님의 제자로서 함께 모이자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들이 어떤 목적을 줄곧 지녀 왔는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교권주의를 거부하였으며 그들의 집회는 성령에 의하여 인도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과 참된 그리스도인은 모두 제사장이란 점을 강조하였다. 그들이 볼 때 모든 교회는 세속적이며 죽어 있거나 혹은 정통적이지만 너무 냉랭하였다. 그들은 예수 재림의 교리를 전파하는데 있어서도 특별한 강조를 하고 있었는데 이 문제는 당시 런던의 레전트 스퀘어에서 스코틀랜드 교회를 섬기고 있던 널리 이름이 알려진 웅변적인 목사 에드와드 어빙(Edward Irving)에 의하여 대중화되었다.
오늘날의 형제단은 절대로 확실한 성경에 기초한 단순한 신앙을 가진 하나의 살아 있는 힘이다. 그들은 죄에 의하여 인류는 잃어버린바 되었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만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내세의 생활이 훨씬 더 중요한 만큼 그들에게 있어서는 영혼의 구원이 사회 개혁이나 정치 철학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대학이나 기업 활동에서 뚜렷이 구별되는 사람들이었고 영국, 영연방, 유럽, 미국의 어디에서나 적은 숫자로 조용하지만 효과적인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또 강력한 선교적 관심이 있다.“
- A. M. 렌위크, 세계기독교교회사, 보이스사 -
19세기에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
역사(歷史=History)는 하나님(His)의 역사(役事)를 말해줍니다(Story).
2000년의 기독교 역사에는 자랑스러운 일만 아니라 부끄러운 일도 많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에 여기에서는 19세기에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교회사는 끊임없는 개혁의 역사입니다. 루터, 칼빈, 웨슬러를 통한 부흥이나 이와 유사한 개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초엽 대다수의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금 냉냉한 형식주의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나폴레옹이 일으켰던 전쟁으로 성도들은 성경의 예언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주님의 오심이 가깝다는 진리가 새롭게 주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고학적 발견은 고등비평을 궁지로 몰아 넣었고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켜 갔습니다. 이에따라 3대 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선교열의 고조, 성경의 대대적 보급, 그리고 이제 말씀 드리려는 형제운동의 시작을 들 수 있습니다.
1825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성경을 연구 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더블린 대학교의 트리니티 대학 동창생으로 성경을 상고하면 상고할수록, 당시의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형식과 전통에 얽매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827년, 마침내 7명의 신앙 동지들이 국교를 떠나 따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은 아일랜드를 비롯한 영국 전역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스페인 등 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국, 인도, 아라비아 등 세계 전역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후세의 역사는 이를 가리켜 형제 운동(Brethren Movement)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로 근세의 터툴리안이라 불리우는 다비(J.N.Darby), 고아원의 설립자 로 일생을 통해서 무수한 기도의 응답을 받았던 뮐러(George Muller), 모세오경을 주해한 메킨토쉬(C.H.Mackintosh), 수많은 주해를 썼고 다비의 저작 전집을 발행한 켈리(William Kelly), 다니엘서를 주해하여 예언의 기초를 확립시켰던 앤더슨 경(Sir Robert Anderson), 원어에 뛰어난 학자인 트레겔레스(S.P.Tregelles), 예언적 입장에서 교회사를 쓴 밀러(Andrew Miller), 주해 성경의 저자인 뉴베리(Thomas Newberry), 탁월한 교사요 저술가였던 에릭 사우어(Erich Sauer), 하나님의 사랑을 정열적으로 전했던 무어하우스 (Henry Moorhouse), 완벽한 신구약 성구사전을 출판한 위그람(George Vice Simus Wigram), 인도에서 주님만 의지하고 선교에 헌신했던 그로우브 (Anthony Norris Groves), 리빙스턴을이어 아프리카에서 초교파적 선교에 헌신했던 아르놋(Frederick Stanley Arnot), 수많은 찬송가의 저자인 데크(J.G.Deck), '구원의 확신과 기쁨'의 저자로 잘 알려진 커팅(George Cutting), 그 밖에도 채프만(R.C.Chap man), 스텐리(Charles Stanley), 그랜트(F.W.Grant) 등등 천 여며의 교계 석학과 지도자들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앙양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모이게 됨으로써 당시의 기독교계에 커다란 감동과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피스(Thomas Griffith)는 '이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자녀 주에서 진리를 가장 바르게 해석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으며, 학자요 저술가였던 아이언사이드(H.A.Ironside)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알든 모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형제교회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으며, 무디(D.L.Moody)는 '전세계의 책이 다 타 버릴지라도 나에게 한 권의 성경과 매킨토쉬의 모세오경 주해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스펄젼(C.H.Spurgeon)은 켈리에 대해 '그의 생각은 우주처럼 크다'고 말했으며, 판톤(Panton)은 '형제운동의 영향력은 종교 개혁보다 훨씬 켰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일에 전력했습니다(스 7:10). 세상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다비교회(Darbyites), 형제교회(Brethren), 기독교 형제교회(Christian Brethren), 플리머스 형제교회(Plymouth Brethren)등으로 불렀으나 그들 스스로는 파명을 사용한 적이 없었고 어떤 계급적 호칭도 배격했습니다. 거룩해졌으니 성도로, 믿음을 가졌으니 신자로, 사랑을 인하여 형제로, 순종을 인하여 제자로, 경배를 인하여 제사장으로, 증거를 인하여 증인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했으니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했습니다. 우리는 앞서간 이들을 주 안에서 본 받아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로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2.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모든 신구약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오류가 없습니다. 성경은 인생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이 완전하게 계시되어 있는, 신앙생활의 최종적 권위입니다. 성경의 권위는 어떤 신조나 헌법이나 전통에 우선하는 것입니다(벧후 3:21).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하심이니라"(딤후 3:15-17).
▶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만유의 창조주로서 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한 분이신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계십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비밀이기에 만물가운데 그 유비를 찾아볼 수는 없으나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을 수 있습니다(고후 13:13).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곧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 몸으로 십자가에서 우리죄를 위하여 완전하고 영원한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히 10:10).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24).
▶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으며, 지금은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대언자로 계십니다(고전 15:20).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 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4, 15)
▶ 성령님의 인도
성령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시며 사람으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믿음으로 죄인들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성도의 심령에 내주 하셔서 예배하도록 인도하시며, 기도하도록 감동하시며, 전도하도록 힘을 주시며, 봉사하도록 은사를 주시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니다. 교회는 모든 활동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복종해야 합니다(고전12:13).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범죄로 인하여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가 되었습니다(롬 3:23). 오직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에 의하여 중생하게 되며 영적 생명을 얻게 됩니다. 선행은 구원의 열매이지 조건이 아닙니다(딛 3:5-7).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 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 영원한 구원
참으로 거듭난 사람은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아무 피조물이라도 구원 받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8,3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는니라"(요 10:28,29)
▶ 성도는 곧 성전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무리들이 하나님의 교회이며 성전입니다. 따라서 집회 장소는 성도들의 신앙활동을 위해 아주 중요하지만 구약 시대의 성전처럼 신성시할 대상은 아닙니다(고전 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 교회는 주의 몸
교회는 한 몸이며 모든 성도는 그 몸의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나 민족 이나 신조에 의해 파명을 달리하고 분열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고전12:12).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뇨"(고전 1:12,13)
▶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각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받들고 자주' 자급' 자립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도간 교회간에 사랑으로 서로 도와야 하지만, 타교회를 간섭하거나 다스리는 조직과 제도는 합당치 않습니다(엡 1:22).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2,23)
▶ 모든 성도는 제사장
모든 성도에게는 제사장으로서 다양한 은사를 따라 전도' 기도' 교육' 교제' 예배' 헌신' 봉사해야 할 의무와 특권이 있습니다(마 23:8-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 교회의 직임
교회의 직임에는 감독(장로와) 집사가 있습니다. 감독이나 장로는 동일한 직임으로 성도들을 보살피고 돌보는 사람이며(행 20:17,28), 집사는 은사와 믿음의 분량대로 섬기는 일에 힘쓰는 사람입니다. 요컨대 감독과 집사는 사회적 신분이나 직위에 상관없이 성숙된 인격을 필요로 하는 봉사의 직분입니다(딤전 3:1-10).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2-4)
▶ 침례는 최초의 순종
중생을 체험한 사람만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침례는 주님이 명하셨고(마 28:19), 바울이 상세히 교훈했으며(롬 6:1-4), 제자들이 순종했던 예식입니다(행 2:41; 10:47; 16:33; 18:8). 침례가 결코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 받은 성도에게는 순종의 첫 발자욱이 됩니다. 또한 침례는 어원적으로나 문맥적으로나 교훈적으로 보아 잠기는 것이 합당합니다(행 8:38,3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 만찬을 통한 예배
주의 만찬은 주님의 분부와 사도들의 본을 좇아 매주일 시행하면서 주님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마 26:26-29; 행 20:7). 예배는 죄를 위한 제사도 구원의 방편도 은혜나 상급의 조건도 아닙니다. 또한 설교를 듣거나 복음을 전하거나 기도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고, 다만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드리는 우리의 심령은 주님께만 향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 교회에서의 여성의 위치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합니다(고전 14:34). 또한 여자는 교회에서 너울을 쓰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는 시대적 풍조나 지역적 풍속이 아니고 모든 성도의 교회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또한 주 안에서는 신분상 남녀의 차별은 없지만 질서상 구분이 있어야 합니다(갈 3:28).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고전 11:7-10)
▶ 교회의 재정
교회의 재정은 감동을 받아 은밀하게 자원하여 드리는 연보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따라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헌신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강요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고후 9:6,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 교회의 휴거
예수님이 오실 때 주님을 믿고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있던 성도들은 변화를 받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요, 성전인 교회는 모두 휴거될 것입니다(고전 15:51,52).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 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 전무후무한 환난
성도들이 휴거된 후에는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이 후에도 없을 환난으로, 온 세상에 임할 것입니다(마 24:21). 그래서 휴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자들은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막 13:19)
▶ 주님의 지상재림
큰 환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 재림하실 것이며 열방을 심판하신 후, 천 년동안 다스리 실 것입니다(막 13:24-2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6)
▶ 최후의 심판
크고 흰 보좌에서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들의 행실대로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 곧 불못에서 세세토록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계 21:8).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니라"(계 20:11,13,15)
▶ 성도의 소망
성도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새 하늘과 새 땅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중에 참으며 슬픔 중에 위로를 받으며,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며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길 수 있습니다(계 21:1).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3,14)
◈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에도,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이신 식양대로 준행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성경에서 가르치신 대로, 초대교회가 순종했던 바를 유의하여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듯이 우리는 성경에서 깨닫는 대로 신약교회의 진리대로 따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과 교제해야 할 것인가를 분별함에 있어서 혈연이나 지연이나 물연에 좌우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유일무이한 지침으로 삼아 성경이 지시하는 대로 결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시고 올바른 교훈을 굳게 잡으시기 바랍니다.
|
첫댓글
제가 직접 경험한 바는 그래도 전세계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를 가장 잘 설명하고 실행하는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 신약교회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여전히 신약교회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는 그리스도인들과 연합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