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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
나그네여!
생각 해 보소!
(아득히 먼) 옛날에 길을 연
고구려(인)의 발자취를...
고려사 주지 김정소(金晶昭-나라현에 세워진 한국 조계종 사찰의 주지)
카나가와현(神奈川縣)의 고구려 사찰
고구려인들의 처음 정착지는 고구려 멸망 전에 일본 지역에 표류 해 왔던 쿄-토 지역 이었다. 이후 고구려 멸망과 함께 왕족인 약광왕(若光王)이 7세기 후반에 오늘날의 동경만 근처인 '스가모(相模-현재의 神奈川縣 中郡 大磯町)지역에 정착하니, 그곳에 고구려산(高(句)麗山)이란 호칭이 생겼고 고구려 산성이 만들어진 연유이다. 이곳에 '코마지(高麗寺)'가 세워 진 연유이다. 이 사찰은 근대까지도 매우 유명한 사찰로서 관리들이 에도를 오 갈 때는 이곳 사찰 앞에서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예의를 갖추고 들렸다고 한다. 이 사찰의 운명은 에도막부 멸망 시에 폐사(廢寺)가 되었고, 메이지 원년(1868년)에 행해진 신불 분리령에 따라 '코마신사(高麗神社)'가 되었다가 1930년 이후 '타까꾸(高來) 코라이(高麗)‘라고 읽히는 게 일반적)'신사로 개칭되었다.
(타까꾸(高來-高麗)신사)
사이타마의 고(구)려 신사
카나가와에 정착했던 약광왕의 고구려 세력이 야마토 정권에 의해서 신라인들과 함게 동북지역으로 옮겨졌다. 일본의 개척 시대로 아이누 민족을 북쪽으로 밀어내고 사이타마(埼玉縣 日高市<옛날의 武藏國 高麗鄕 高麗村>지역으로 약광왕을 비롯한 고구려인들이 본거지를 옮기면서 유래한다. 이는 일본의 사서인<속일본기>에 ‘716년 5월에 무사시에'코마군(高麗郡-고구려인들을 위해 세운 군)'을 신설하기 위해 스가모(카나가와현)슈ㄴ가(시즈오카현),시모노,무사시 등 7개소의 고구려인 1799명을 옮기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코마신사(高麗神社) 전경)
수렵민인 아이누 지역의 넓은 토지를 농사꾼인 한반도인들을 투입하여 쌀 증산을 꾀하려 했던 결과로 보인다.
일본열도에 또 하나의 ‘코마지‘가 탄생하게 된 연유이며 고구려 왕손인 약광왕의 59대손인 코마스미오(高麗澄雄)씨가 궁사(宮司)로 있다. 신사 주위의 산을 코마산(高麗山), 강을 코마센(高麗川), 기차역을 코마에끼(高麗驛)로 부르고 있으니 고구려 유민의 새로운 정착지이며 일본열도에 명맥을 이어간 ’리틀 고구려‘라 볼 수 있다.
시가현의(滋賀縣)고구려 사찰
이밖에도 시가현의 요까이찌시(八日市神田町)에 '코마지'가 있으니 현(縣) 내에 있는 백제사와도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임제종으로 739년에 도자(道慈)스님이 창건 한 것으로 나와있다. 지도상에도 '코마지(高麗寺)“라는 지명까지 보이고 '코마이(駒井)"코마(駒)“는 "高(句)麗”의 의미)라는 우편함도 보인다.
(코라이지(高麗寺-고구려 사찰) )
오카야마현의(岡山縣)의 고구려 사찰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에도 '코마지'라는 유적지 간판이 있다. 다만 이곳은 '하나쯔까(鼻塚)’라고 임진왜란 시 토요토미의 잔인한 명령으로 조선인의 코를 베어가 만든 무덤 옆에 위치한다.
아마도 이들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중세에 지어진 사찰이 아닌가한다. 이 때의 '코마’는 중세의 고려가 아니라 ‘조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되었건 일본에는 총 다섯 곳에 고구려 명칭의 사찰이나 신사가 있는 셈이다.
(코마지 간판 옆의 코마지 건축물)
이처럼 일본 내에는 고구려 유적지가 상당수 존재한다.
나라, 쿄-토, 오사까 지역에도 코마마치(高麗町), 코마바시(高麗橋)라는 지명이 존재하며 큐-슈-지방에도 코마마치(高麗町), 코마바시(高麗橋), 코마도오리(高麗通) 등이 산재한다.
이밖에도 '코마카에리’라는 지명이 보이는바 이는 '코마카에리(高句麗歸り)’의 의미로도 풀어 볼 수 있는바, 즉, 고구려군이 되돌아갔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보이는 고구려군의 남하가 한반도 내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좌, 우군으로 나뉘어 일본열도까지 진격했다는 일부 학자들의 설이 전혀 낭설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열도의 혼슈(本州)는 물론 큐슈 지역에도 같은 지명이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코마지(高麗寺)는 '고구려 사찰'을 의미하고 '코마데라' 또는 '코라이지'라고도 읽는다.
**일본인들은 '고구려'와 '고려'를 매우 혼동하여 사용함으로 문맥에 따라 '고구려'인가 '고려왕조'인가를 알 수 있다.
가끔 조선시대나 한국을 '고려,고려인'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예,'까치'를 현재도 '고려까치'라 부르고, 인삼을 '코라이닌징(고려인삼)이라 부름.
*** 쿄토에 '귀무덤'이 있고 오카야마에 '코무덤'이 있다. 둘을 혼용해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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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하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첫댓글 일본에 고구려 관련 유적이라........... 중요한 사적이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