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사이버 사찰과 인권침해 묵과한 헌법재판소
- 4/26 통신비밀보호법 제9조의3 위헌확인 기각 결정에 부쳐
지난 4월 26일 헌법재판소는 당사자에게 통지하지 않고 카카오톡 서버에서 대화 내용을 압수수색한 이른바 “카카오톡 단톡방 압수수색 사건”에 대한 헌법소원을 기각하였다.
이 사건은 정진우 노동당 전 부대표에 대한 무차별적 과잉수사로부터 비롯되었다. 지난 2014년 6월 정진우 노동당 전 부대표는 세월호 관련 집회 현장에서 연행돼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때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혐의와 무관한 카카오톡 단톡방과 대화 내용까지 들여다봤다. 그 과정에서 정진우 씨와 같은 단톡방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이용자의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와 대화 내용이 싹쓸이로 제공됐다.
대다수 이용자는 정진우 씨와 개인적으로 아는 관계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 참여자와 대화 내용에 대한 정보가 압수된 대화방들은 삼성, 철도, 유성, 밀양, 재능 등 우리 사회 다양한 투쟁의 현장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던 공간이었다. 따라서 본래의 수사나 공소제기를 위한 단순한 압수수색이 아니라 광범위한 사이버 감시·사찰 행위라는 우려가 커졌다. 이에 분노한 피해자들은 결국 지난 2014년 12월 헌법소원과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헌법소원의 내용은 수사기관이 단톡방 이용자에게 압수수색 사실에 대해 아무런 통지를 하지 않았던 데 대한 것으로, 통신비밀보호법 제9조의3(압수ㆍ수색ㆍ검증의 집행에 관한 통지)에 관한 위헌확인을 골자로 한다.
통신비밀보호법 제9조의3은 ‘수사대상이 된 가입자’에게 ‘압수ㆍ수색ㆍ검증을 집행한 사실’을 통지할 것만을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정진우 씨가 아닌 카카오톡 이용자들은 수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압수수색 사실을 통지받지 못했다. 또한, 자신들의 대화 내용이 수사기관에 제공되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의 감시를 받았다는 사실도 전혀 알 수 없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106조 제4항은 압수 사실을 ‘정보주체‘, 제107조 제3항은 ‘발신인이나 수신인’에게 통지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통신보호비밀법 제9조의3은 사후통지의 대상인 정보 주체를 ‘수사대상이 된 가입자’로 한정하여 ‘수사대상이 아닌 가입자’에 대한 압수에서의 통지절차 자체를 빠뜨리고 있다. 이는 적법 절차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입법의 불비이자, 이번 사건 피해자들의 평등권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통신비밀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그러나 4월 26일 헌재는 이러한 침해에 대해 매우 소극적으로 판단하였다. 단톡방 이용자에게 통지하여 피의자가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수사의 밀행성도 침해받게 되고 피의자의 개인정보 침해도 야기할 수 있다며 위헌확인 헌법소원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단톡방 압수수색에 대해 견제하기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사건 이후 법원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카카오톡 팩스영장에 대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로 결정하고 카카오톡의 편법적인 감청 협조에 대해서도 위법하다고 결정한 것에도 역행하는 퇴행적인 판결에 불과하다.
무고하게 개인정보가 제공된 단톡방 이용자들의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와 알 권리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당사자가 알 수도 없다면 문제 제기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권은 디지털 시대 국민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보인권이다. 통지받을 수 있는 권리, 자신의 개인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었는지 알 권리는 정보인권 보장의 첫 단추다.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감시와 인권침해를 묵과한다면, 사이버 사찰은 국민들의 일상 곳곳으로 파고들 것이며, 민주주의는 더욱 파괴될 것이다. 디지털 생활에서 정보인권을 보장받고 국가로부터 사찰받지 않을 권리를 위해 노동당도 함께 나설 것이다.
(2018.4.30. 월, 평등 생태 평화를 지향하는 노동당 대변인 류증희)